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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치'가 브랜드 김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족 맛'은 '외식 맛'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손맛 가짓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인간미(人間味)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다. 꺼벙이, 고인돌, 맹꽁이 서당 등 추억의 만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상도 그 중 한 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만화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인간미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맛'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기획시리즈 '만화미(味)담 오미공감'을 마련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클로버 문고의 향수(cafe.naver.com/clovercomic)' 회원들이 신문수 선생에게 마음을 전한 원시소년 똘비 '편지지'
 '클로버 문고의 향수(cafe.naver.com/clovercomic)' 회원들이 신문수 선생에게 마음을 전한 원시소년 똘비 '편지지'
ⓒ 신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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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를 사면 제일 먼저 '도깨비감투'를 펼쳐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몸이 안 보이게 되는 감투가 내게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이런 저런 상상을 했었습니다. 시험 문제 내시는 선생님 옆에서 몰래 문제 훔쳐보기를 제일 많이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로봇 찌빠도, '아,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하면서 읽었었습니다. 선생님의 모든 만화는 어린이들의 꿈을 대변한 작품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클로버 문고의 향수', hanbi727)

정말 그랬다. '벼락치기'를 하다 도깨비 감투 꿈을 꾸는가 하면, 도깨비 감투를 쓰고 '여탕도 많이 들락거렸던 것' 같다. 가까이 하기 너무 만만한 찌빠는 정말 친구 같은 로봇이었고, '원시소년 똘비'는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쥬라기 공원' 그 자체였다. 70-80년대 '명랑 만화'하면 떠오르는 이름, 만화가 신문수(69) 선생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은 아직 많다. 인터넷 상에는 그의 이름이 넘쳐나고, 그리움은 오프라인으로 번질 때도 있다. 클로버문고를 추억하고 복간하려는 모임, 네이버 카페 '클로버 문고의 향수(cafe.naver.com/clovercomic)' 회원들과 신문수 선생과의 만남이 좋은 예다.

"내 나이 마흔, 왜 선생님 작품이 더 그리울까요?"

지난 달 23일, '클로버문고의 향수' 회원들과 신문수 선생이 만났다. 로봇 찌빠 그림과 함께 늘 건강하시라는 글이 써 있는 케익
 지난 달 23일, '클로버문고의 향수' 회원들과 신문수 선생이 만났다. 로봇 찌빠 그림과 함께 늘 건강하시라는 글이 써 있는 케익
ⓒ 클로버문고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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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카페 회원들은 대학로에서 '정모'를 통해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을 맘껏 풀어냈다. 선생에게 사인을 받고, '로봇 찌빠'가 그려진 케이크도 선물하고, 맥주도 한 잔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똘비 편지지'에 담아 선생에게 이렇게 전했다.

"이제 화백님을 만나 뵐 시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게 되어 꿈만 같습니다. 예전 연탄불도 넣지 않은 친구네 집 골방에서 언 손을 비벼가며 화백님의 '원시소년 똘비'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 화백님을 직접 뵙는다니…" (버즈컴)

"저는 어릴 적에 '로봇 찌빠'와 '도깨비 감투'를 재밌게 읽었답니다. 아이 엄마가 된 지금도, 신문수 선생님 성함만 들어도… 즐거움과 기쁨이 같이 떠오릅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편지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요.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있어주세요." (작은 아씨)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 한 켠에 쌓여있는 만화들 속에서 선생님 작품을 만났습니다. 친구들도 같이 즐겨 보았지요. 유머와 함께 그림과 이야기도 참 좋았던 따뜻한 만화라고 추억됩니다. 유년 시절이 지나고 이제 40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때 선생님 만화가 더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선생님 만화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 정감이 짙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ryooen)

마골피 족장, 새끼줄 택시... 기억나시나요?

정말 왜일까. 세월이 지나도 '도깨비 감투'나 '로봇 찌빠'에 대한 그리움이 퇴색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물론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졌고, 그래서 더욱 사람 맛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인간미가 진하게 배어나는 것은 여타 다른 '추억의 만화가'들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신문수 선생은 2001년 복간됐던 '로봇 찌빠'를 통해 "만화의 소재란 것은 단순히 낄낄거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면서 "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만화가의 역할"이라고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적인' 도깨비 감투 발견 장면(왼쪽) 실선으로 묘사한 도깨비 감투 '착용 후'(오른쪽)
 '역사적인' 도깨비 감투 발견 장면(왼쪽) 실선으로 묘사한 도깨비 감투 '착용 후'(오른쪽)
ⓒ 신문수(2001,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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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상상의 세계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원시소년 똘비'부터 보자. 우연히 동굴에서 탱구 아빠가 원시세계 똘비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는데, 그 동굴은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그래서 탱구와 똘비가 동굴을 통해 양쪽 세계를 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마골피 족장이나 새끼줄 택시를 기억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도깨비 감투' 역시 마찬가지다. "이백 서른 여덟 가지 귀신의 수염과 머리털을 뽑아 만든 감투"를 우연히 발견하는 주인공 혁이, 머리에 쓰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신기한 감투다. 단, 조건이 있다. 착한 일이나 정의를 위해서만 사용해야지, 그렇지 않은 목적이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어린이만화다운 '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시절 로봇 찌빠는 '디지털 카메라'이기도 했다
 그 시절 로봇 찌빠는 '디지털 카메라'이기도 했다
ⓒ 신문수(2001,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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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탄생한 로봇 찌빠의 놀라운 미덕

'로봇 찌빠' 역시 '어린이다운 단순함'에서 출발한다. 두뇌 부분의 설계 미스로 아주 엉뚱한 짓을 하는 로봇이 미국에서 도망쳤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린다. 그리고 주인공 팔팔이 집에 나타나자마자 마당에 숨겨놓은 빵점 시험지를 귀신같이 찾아내 팔팔이 아버지에게 '폭로'하는 괴짜 로봇 찌빠.

특히 '로봇 찌빠'는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요즘이야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그리 새롭게 들리지 않지만, 그때는 마징가제트나 로봇태권브이처럼 '전투로봇'이 주름잡던 시절이었다. 1974년에 탄생한 '로봇 찌빠'가 더욱 빛나는 이유다.

"만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상상력인 것 같아요. 만화는 상상력의 창고니까요. 아이들이 만화를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만화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 달에 가거나 우주에 가는 것 모두 옛날 만화에서 다 보던 거였잖아요. 그땐 만화로만 가능한 얘기였지만, 요즘은 그게 현실이 됐잖아요." (2001년 복간된 '도깨비 감투' 인터뷰 중에)

아직까지 신문수 선생의 작품이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 '딱' 어린이다운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 선생은 작품을 통해 원시시대, 투명인간, 로봇친구, 친구끼리 떠나는 세계 여행 등 어린이라면 한 번쯤 꿈꿨을 상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마치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피터팬처럼.

어느덧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팔팔이를 위하여...

신문수 선생
 신문수 선생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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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로봇 찌빠'가 애니메이션으로 컴백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애니메이션 '로봇 찌빠'는 내년 하반기에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52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으로 현재 고구미 프로덕션에서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1994년까지 <소년중앙>에 연재됐으니, 15년 만에 대중 앞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다만 아쉬움은 하나 남는다. 어느덧 사십대에 접어들었을 '팔팔이'를 위해 대리운전도 해주고, 못된 직장 상사 대신 골려 주기도 하고, 운동하지 않으면 달달 볶기도 하는, '어른용 로봇 찌빠'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이다. 왜 우리 만화는 독자들과 함께 성장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동안 '로봇 찌빠'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덧붙이는 글 | '로봇 찌빠' 신문수 만화가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태그:#만화, #신문수, #찌빠, #도깨비, #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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