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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치'가 브랜드 김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족 맛'은 '외식 맛'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손맛 가짓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인간미(人間味)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다. 꺼벙이, 고인돌, 맹꽁이 서당 등 추억의 만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상도 그 중 한 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만화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인간미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맛'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기획시리즈 '만화미(味)담 오미공감'을 마련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최초 만화전문지 보물섬 창간호 cafe.naver.com/cloverco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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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까페 cloverco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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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한다. 요즘 만화를 보면서도 이 말을 실감할 때가 있다.

독하다. 그림도 독하고 풍선말도 독한 경우가 적지 않다. 꼭 인공조미료를 듬뿍 친 음식을 맛본 기분 그대로다. 쉽게 동하고 그만큼 빨리 질리는 그런 맛 말이다. 순한 맛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다.

몇년 전 '꺼벙이가 보고 싶다'는 글을 쓴 것도 이 때문인 듯 싶다. '순한 맛'이 그리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로봇 찌빠'나 '요철 발명왕'도 보고싶다는 댓글이 붙었다. 두심이 표류기, 검둥이 강가딘, 주먹대장 이야기도 나왔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카시오페아 별자리 이야기, 별똥탐험대를 그리워하는 분도 있었다.

그런가 보다. 작품 이름이 먼저 반짝인다. '떡볶이' 하면 신당동, '해장국'  하면 청진동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듯 싶다. 이어 자연스럽게 작가들 이름이 꼬리를 문다. 길창덕·이정문·윤승운·김삼·김원빈·박수동…물론 '독고탁' 이상무, '도깨비 감투' 신문수 선생도 빼놓을 수 없다.

보물섬, 그리고 요정 핑크를 아십니까

하지만 '김동화'란 이름은 낯설었다. 아니 이름은 귀에 익었지만, 그의 작품이 또렷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명작이 아니라서가 아니다. 편식 때문이었다. 그 두꺼운 만화전문잡지 <보물섬>에서도 한사코 순정만화풍은 빼고 먹은 결과였다. '요정 핑크(1985년, 김동화 작)'가 누군지도 전혀 몰랐다.

당혹스러웠다. "이웃나라 레인보우 왕자와의 정략 결혼을 피해 지구로 온 공주의 변신 이야기"를 구해보기 어려웠다. 후회했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이란 직함에 욕심이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최근작 '빨간자전거'를 미디어다음 속 만화세상에서 벼락치기로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빨간 자전거 44화 '피자'
 빨간 자전거 44화 '피자'
ⓒ cartoon.med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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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전거 "피자 한 쪽이면 오이 400개 아녀?"

그런데 얼마 만에 느끼는 '순한 맛'인지. "빈 우체통을 열 때마다 가슴속에 찬바람이 분다"는 한적한 시골 마을 우체부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만화 하나로 마음이 편해졌다" 또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와 사고, 생활에 찌든 마음을 정화 받는 기분" 그대로였다. 특히 부침개가 싫다는 손주에게 피자를, '오이 400개'를 먹이는 할머니 에피소드는 감동적이었다.

"물주고 약 치고 풀 뽑고 여름내 땅바닥을 기어서 키운 오이 한 개가 50원인데…부침개 한 장에 2만원…가만 있어 봐라, 이거 한 쪽이면 오이가 몇 개냐? 그래라 까짓 것, 밤새 땅바닥 기어서라도 우리 손주 먹고 싶은 거 하나 못 사주랴."

'뉴타운'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도 있다. 시골마을 재개발 사업을 욕심내는 이른바 '복부인들'은 이렇게 수근댄다. "몇 사람이 어울려 한 집씩 재개발하면, 헌 동네가 전원주택 단지가 되는 것"은 간단하다고. "그럼 땅값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이다. 대화를 듣게 된 주인공 우체부의 독백이다.

"저런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이 먼저 무너져 내립니다. 몇 대를 거쳐 수백 년 동안 손으로 다듬은 마을이 모래성처럼 허물어 질까봐…내 마음부터 모래성이 되어 허물어집니다."

빨간 자전거 62화 '야화리는 한국문학전집'
 빨간 자전거 62화 '야화리는 한국문학전집'
ⓒ cartoon.med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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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100주년…'인공조미료'보다 순한 맛 고집했던 만화가들

상당수 누리꾼들은 "멋지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편, 마음이 아프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감동에서 깨는 순간, 현실 또한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빨간 자전거'를 통해 오랜만에 한가지 진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돈맛이 오감까지 허물고 있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람 맛이다. '인간다운 따뜻한 맛', 인간미다.

'요정 핑크' 때문에 느낀 당혹스러움이 사라졌다. 만화가 김동화라면, 명작만화와 좋은 맛의 공통점을 잘 설명해줄 것 같았다. '인공조미료'보다 순한 맛을 고집한 만화가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독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도 얻게 되리라 생각했다. 아울러 한국만화 100주년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이야기기도 했다.


태그:#만화, #김동화, #인간미, #맛,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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