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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분노와 사랑의 교감이 일으키는 잔잔한 감동

이스라엘 출신 피아니스트이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과 아랍 여러 나라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East-Western Divan Orchestra 결성해 라말라(팔레스타인 행정수도) ”에서 연주를 하고 팔레스타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음악학교를 세운 다니엘 바렌보임. 그의 실황을 담은 DVD를 본 뒤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접경 '라말라'이라는 지명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 <레몬트리>는 라말라 서북부 지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지대에서 이웃으로 살게 된 이스라엘 국방장관 부인과 팔레스타인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에란 리클리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히암 압바스, 알리 슐리만, 로나 리파즈 마이클이 주연을 맡았다. 모두 국내엔 생소한 사람들이지만, 2008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오프닝, 관객상을 수상한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적이 다른 두 나라 여성이 레몬나무를 매개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극히 절제된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대에 사는 살마는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인 레몬 농장에서 레몬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살마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며 자신의 아버지와 다름없는 노인과 단 둘이 레몬농장을 돌보며 단조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녀에게 레몬나무는 단순한 나무를 넘어 아버지와 자신의 유년의 시간과 삶이 그대로 추억으로 담긴 영혼과 육체의 보호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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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정치적 야망이 뛰어난 이스라엘 신임 국방장관 나본과 그의 세련된 아내 미라가 살마의 이웃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국방장관이 이웃이 되면서 사람의 키를 넘는 철책이 설치되고  감시를 위해 높다란 망대를 세워 보초병을 상주시킨다. 이스라엘 정보국은 국방장관인 나본의 결정에 따라 살마의 레몬 농장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레몬농장으로 테러단이 침입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이다. 

레몬 농장을 없애는 대신 약간의 보상비가 지급된다는 말에 지인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우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전부인 레몬 농장을 지키기 위해 살마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무모해 보이는 기나긴 소송을 시작한다. 소송을 위해 변호사 지이드를 만나면서 살마는 여성으로서 따뜻한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지이드 역시 자존심 강하지만 용기 있는 내유외강형 살마에게 점차 마음이 열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남편의 야망과 출세욕에 맞추어 마음에 없는 미소를 지어가며 국방장관 부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사는 미라는 남편의 굴절된 정치적 욕망과 권력욕에 점차 실망감을 더하게 된다. 더구나 남편이 안위를 핑계로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는 팔레스타인 여성 살마의 레몬농장 나무를 베어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마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살마에게 레몬농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 된 미라는 친구인 기자와 남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조롱하는 인터뷰를 하게 되고 그 기사가 신문에 크게 실린다. 남편은 미라에게 그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가 나갈 수 있도록 친필서명을 보내라고 명령하지만 미라는 더 이상 남편의 명령을 따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살마는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패소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항소한다. 미라는 창문을 통해서 혹은 스치듯 살마와 지나친다. 심지어 살마의 집 앞과 대법원까지 달려가지만 결국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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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마의 법정 투쟁 과정은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알려지고 레몬농장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정치 관계와 두 나라간의 힘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나무로 떠오른다. 방송과 미라의 호의적인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살마의 레몬나무를 150그루를 뽑아내고 나머지 나무들도 50센티만 남기고 베어내도록 판결을 내린다. 법정 투쟁이 끝나고 미라는 독선적인 남편 곁을 떠나고, 살마는 자신의 키를 몇 배나 넘는 높다란 철책을 올려다보며 황량하게 잘려나간 레몬 나무 사이를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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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상황이 서로 다른 두 여성은 레몬나무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객관적으로 관조하기 시작한다. 살마는 자기 안에 갇혀있던 여성에서 자신의 생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사람으로, 미라는 남편을 내조하며 그 안에서 안위를 얻으려는 의존적 자아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독립적 자아로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국가와 관습의 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두 여성이 조금씩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모습, 정치와 사회 종교의 다름을 떠나 삶과 존재 자체를 인식하며 삶의 향방을 정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며 곱씹을 거리를 제공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힘겨루기를 남성들의 권력 전쟁이 아닌, 일상의 삶과 폭력을 통해 보여준 점 역시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2008년 7월 개봉. 2008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오프닝, 관객상 수상작
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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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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