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리노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가 백작의 아내인 정부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를 10년 동안 사랑하던 관계를 끝내고, 젊고 예쁘고 부유하고 정숙한 귀족 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와 결혼한다.

바람둥이 리노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가 백작의 아내인 정부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를 10년 동안 사랑하던 관계를 끝내고, 젊고 예쁘고 부유하고 정숙한 귀족 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와 결혼한다. ⓒ 카날


<미스트리스>는 여러 작품들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연상했다면, 만물의 근원인 생명에 대한 소홀함이 흠이다. 로렌스에게 있어 육체와 본능과 생명은 맞닿았다. <미스트리스>는 생명에 대한 미장센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따르지 못한다.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본능적 섹슈얼리티,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의 <데미지>와 닮았다고 하면, 관계를 청산한 후에도 끊을 수 없는 뒤틀린 섹스가 닮았다. 루이 말의 <연인들>도 개인적인 욕망에 솔직하고 도덕을 조롱하는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인상파의 기초를 놓은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를 연상케 한다는 비평가도 있는데, 그것은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린 시점이 그 그림을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뿐, 오늘날 시야로 본다면 그리 센세이셔널한 작품은 아니다. <미스트리스> 역시 시점이 1830년대라면 <올랭피아>와 같은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끝낼 수 없는 섹슈얼리티

이 영화는 19세기 탐미적인 당디(Dandy: 상류층) 소설가 ‘바르베 도르비이’의 < Une Vielle Maitresse >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만을 보고는 감독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신을 미장센하기로 유명한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야의 시대극이다.

1835년 프랑스 왕정시대 파리가 배경이다. 바람둥이 리노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가 백작의 아내인 정부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를 10년 동안 사랑하던 관계를 끝내고, 젊고 예쁘고 부유하고 정숙한 귀족 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와 결혼한다.

당시 사교계에 파다한 스캔들이었던 이야기를 에르망갸드의 할머니, 플레르 후작부인이 집요하게 캐물음으로써 이에 대한 대답이 플래시백 구도로 영화가 전개된다. 그러나 플래시백은 이내 현실이 된다. 결혼하고 모든 관계가 청산된 줄 알았는데 결코 놓아줄 수 없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정부 벨리니는 결혼식장에도 찾아왔고, 그들이 신혼살림을 차린 섬에도 찾아든다.

총구를 자신의 허리에 들이대며 방아쇠를 당기라고 애걸하지만 차마 마리니는 벨리니를 죽이지 못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녀와의 쾌락의 늪으로 다시 빠져든다. 그러나 영화는 그게 정신보다 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현대극에서 탈피하여 시대극을 영화로 담으면서도 브레야 특유의 섹슈얼리티는 녹슬지 않았다.

성의 도구화가 없는 안티페미니즘

브레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하여 페미니즘에 도전한다. 내가 페미니즘에 도전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여성 시각이 아니라 남성 시각이라는 점이다. 대개의 남성 감독들도 성의 도구화를 통하여 여성의 인권이니 해방이니 하는 골을 만드는 것이 통상적이다.

포스터 이 영화는 19세기 탐미적인 당디(Dandy: 상류층) 소설가 ‘바르베 도르비이’의 <Une Vielle Maitresse>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 포스터 이 영화는 19세기 탐미적인 당디(Dandy: 상류층) 소설가 ‘바르베 도르비이’의 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 카날

‘여성의 사회적·정치적·법률적 권리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라는 페미니즘의 정의에 동의한다면, 영화는 그런 것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아내가 결혼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않고, 정부(情婦)의 자기주장을 위한 섹슈얼리티 도구화도 없다. 차라리 고뇌하며 빠져드는 남성 리노 마리니에게 동정적이다.

이 영화는 2007년 칸영화제에 출품될 때 <늙은 정부>, <오래된 여인> 등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미스트리스>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도덕이나 금기 등을 깨며 달려드는 그만의 영화 스타일이 <미스트리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조금은 순화되었다는 게 영화계의 목소리다.

브레야 감독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 아니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도 그를 조롱하듯 이성애적 섹스에 천착함으로써 여성성을 뒤틀린 섹슈얼리티로 규정하려는 감독이라고 할 정도다. <미스트리스>는 차라리 가부장적 시선으로 여성을 다루지 않나 의심을 할 정도다.

정교한 터치의 정사신

여성 감독이지만 여권주장이나 여성의 섹스를 내세운 도구화가 없는 영화, <미스트리스>는 그림을 그리듯 접근하는 스크린 접근방식에서만 여성성이 잘 드러난다. 격렬한 정사신을 버리고 음미하듯, 물 흐르듯한 정사신을 택한다. 브레야 자신의 말에서 이 점이 잘 나타난다.

“나는 나 자신이 화가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색을 만들고 나만의 색상을 선택할 뿐이다. 북유럽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고, 1900년대 글래머스타 리타 헤이워드에게 영감을 받아 준비했다.”

그의 말대로 스크린 터치가 정교한 한 폭의 그림이다. 특히 해안과 옛 성곽, 물결치는 바다의 놀과 외딴 오두막, 그리고 뇌쇄적인 정사신, 모두 수준급이다. 격렬함이 없다. 잔잔하다. 그래서 더욱 고혹적이다. 카메라는 남성의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여성 벨리니의 오르가즘의 표정을 담는 데 부심하다. 비평가들이 <미스트리스>를 ‘예술 포르노’라고 찬양하는데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성적 상상의 노골적인 이미지를 영상에 담은 1975년작 <정말 어린 소녀>보다는 훨씬 정겹다. 1999년작 <로망스>보다도 더 포로노 논란에서 자유롭다. 그가 “검열은 남성들의 이슈다. X등급과 X염색체는 짝패다”라는 말을 남겼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격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움과 고결함에 가린 사랑

 총구를 자신의 허리에 들이대며 방아쇠를 당기라고 애걸하지만 차마 마리니는 벨리니를 죽이지 못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녀와의 쾌락의 늪으로 다시 빠져든다.

총구를 자신의 허리에 들이대며 방아쇠를 당기라고 애걸하지만 차마 마리니는 벨리니를 죽이지 못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녀와의 쾌락의 늪으로 다시 빠져든다. ⓒ 카날


파티에서 악마로 분장한 벨리니에게 사로잡힌 마리니는 벨리니의 남편과 결투를 해 중상을 입는다. 이 결투사건을 통하여 벨리니는 남편을 떠나고 둘의 섹슈얼리티 환상여행과 귀족사회의 입방아는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본능적 사랑에만 충실하다.

마리니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결국 벨리니와 결별을 선언하고 사랑하는 에르망갸드와 결혼한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충동적이고 격렬한 섹스가 진정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결혼 후에 깨닫는다. 그것도 아주 피동적으로.

에르망갸드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고결하며 정숙한 여자다. 또한 둘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다. 에르망갸드 역을 맡은 록산느 메스키다는 아름다움과 고결함, 그리고 고혹함까지 완벽히 연기한다. 그러나 그녀의 절제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이 돼 버려 눈물을 흘리고 만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여성의 성적 욕구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스트리스>는 남성과 여성 둘 다에게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벨리니의 끈적거리는 섹슈얼리티, 좀 특이한 카사노바 마리니의 피동적인 섹슈얼리티, 둘은 역할이 바뀐 것 같지만 그런 방식으로 브레야 감독은 안티페미니즘에 접근한다.

에르망갸드와 벨라니는 비교할 수 없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에르망갸드가 고결하면 할수록 거칠고 시끄럽고 꿈틀대고 끈질긴 벨라니가 더 전면에 부상한다. 이 당찬 여감독은 당시 변할 수 없고 겉보기에 그럴싸한 귀족사회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피맛을 본 사자의 야성과 고결함이 물씬 풍기는 귀족사회, 둘 중에서 감독은 누구의 손을 들까 고민하지 않는다. 당연히 야성의 사자를 택한다. 벨라니가 칼로 마리니의 이마를 긋고 흘리는 피를 입술에 묻히는 장면에서 그것을 노골화한다.

브레야는 영화를 통하여 현대를 지배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고결한 사랑일까? 뒤틀린 섹슈얼리티일까?

 마리니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결국 벨리니와 결별을 선언하고 사랑하는 에르망갸드와 결혼한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러나

마리니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결국 벨리니와 결별을 선언하고 사랑하는 에르망갸드와 결혼한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러나 ⓒ 카날


덧붙이는 글 <미스트리스>, 카트린 브레야 감독, 슈트디오 카날 작품, 아시아 아르젠토, 후아드 에이트 아투 주연, 109분

이 기사는 http://blog.godpeople.com/kimh2, http://blog.daum.net/kimh2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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