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특별취재팀]

현장 취재 : 유창재 홍현진 박현숙  기자
사진 : 조정래 기자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러온 사람들이 손에 든 소형카메라에 게양 장면을 담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8일, 해가 떠오르며 날이 밝아오지만, 스모그의 영향으로 시야가 뿌옇게 보인다.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러온 많은 사람들이 손에 든 소형카메라에 게양 장면을 담고 있다. ⓒ 유창재


 오성홍기 게양식이 끝나자 중국인들이 "중꿔 짜이오!"를 외치고 있다.

오성홍기 게양식이 끝나자 중국인들이 "중궈 짜이요!"를 외치고 있다. ⓒ 유창재


"중궈 팅션! 중궈 팅션!(중국이여, 일어나라!)"

베이징올림픽 개막일인 8일 새벽,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러온 수많은 중국인들이 내지른 함성이었다.

이날 오성홍기 게양식은 여느 날과 다르게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백년만의 꿈'인 올림픽 열리는 날 아침에 열린 게양식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새벽 어둠을 뚫고 하늘로 향하는 오성홍기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에게서 비장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오성홍기 게양식' 볼 수 있다면 노숙도 좋아라

 중국인의 '백 년의 꿈'이 이뤄지는 8일 새벽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노숙을 한 중국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중국인의 '백 년의 꿈'이 이뤄지는 8일 새벽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노숙을 한 중국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 홍현진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우리는 숙소인 왕징에서 새벽 4시 10분경에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가니 택시기사가 손을 가리키며 "톈안먼광장에 다 왔다"고 일러준다.

철도박물관 인근에 내리자, 삼삼오오 가로등 불빛을 따라 넓은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가니 사방이 넓은 도로로 둘러싸인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올림픽 개막 시간을 표시하는 커다란 전광판이 어둠 속에 빛을 내고, 좀 더 먼 곳에 톈안먼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오쩌둥 기념당을 앞에 둔 톈안먼광장을 처음 찾은 일행 중 몇 명은 "아! 저 곳이야!"라고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드디어 '하늘 아래 유일한 수도(천하지도)'라 불리는 베이징 한복판에, 중국인들이 '세계의 배꼽 중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톈안문광장에 우리가 섰다.

톈안먼광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를 통과해야 했다. 테러 방지를 위해선지 X-레이 장비를 통해 가방 검사를 받고서야 들어갈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광장을 가로지르며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까만 띠가 보였다. 빈 대형 깃대 앞에 있는 이 줄은 바로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뒷모습이 대형 띠 같았다.

오성홍기 게양대는 인민혁명기념비와 톈안먼 사이에 있다. 오성홍기는 '공화국제일기'라고도 불리며, 길이 5m에 폭 3.3m의 크기다. 오성홍기 게양식은 마오쩌둥이 1949년 1월 1일 처음 게양한 이래로 아침마다 거행된다.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2분 7초 걸린다고 알려졌다.

오성홍기 게양시각은 늘 일출에 맞춰져 있다. 때문에 베이징을 여러 차례 다녀온 사람들도 보기 쉽지 않다. 특히 중국사람들도 평생에 한번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인다고 한다. 더구나 100년만의 꿈을 담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일의 오성홍기 게양식은 새해의 첫날 해돋이를 보는 듯 했다.

2년 전 베이징에 2명의 친구와 함께 왔다는 쓰촨 출신인 디옌(20·여·옷가게 종업원)은 "어젯밤(7일) 저녁 8시에 톈안먼광장에 도착해 좋은 자리에서 게양식을 보기 위해 밤을 샜다"며 "오늘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정말 흥분되고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이어 디옌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정말 강대한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개막식 시간에 냐오차오 메인스타디움 옆에 가서 관람하겠다"고 덧붙였다.

2분 7초의 숨죽임 뒤에 울려퍼진 함성

 8일 새벽 5시 20분경 오성홍기가 깃대 끝에 다다랐다. 이후 공안이 수많은 관람객을 광장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8일 새벽 5시 20분경 오성홍기가 깃대 끝에 다다랐다. 이후 공안이 수많은 관람객을 광장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 유창재


 대형 오성홍기를 들어보이는 중국인들. "중국 화이팅", "중국잉, 일어나라"를 외치고 있다.

대형 오성홍기를 들어보이는 중국인들. "중국 화이팅", "중국인, 일어나라"를 외치고 있다. ⓒ 유창재


새벽 5시 18분. 어둠이 걷히며 저 멀리 톈안먼에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게양대 앞에 도착하자, 모두 긴장된 모습으로 주시했다. 드디어 오성홍기가 걸리자 찰칵찰칵 일제히 카메라셔터 소리만이 들렸다.

오성홍기가 위로 음악에 맞춰 올라가는 동안 수많은 중국인들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사람은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동안 거수경례 자세로 서 있기도 했다. 2분 여가 지나 깃대 끝에 오성홍기가 다다르자 함성이 광장 전역에 울려 퍼졌다.

"쭝궈 찌아요! 쭝궈 찌아요!"

"중국 파이팅!"이란 함성이 어디선가 들리자, 그 울림이 옆으로 전달되면서 톈안먼 광장을 채웠다. 200여 명의 젊은 중국인들이 손에 작은 오성홍기를 들고 외치는 함성이었다. 10여 분 함성이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그 감동을 담기 위한 기념촬영도 이뤄졌다. 또 이들을 취재하는 취재진이 뒤엉켜졌다.

잠시 함성소리가 멈추는 듯 했더니, 또 한편에서 "쭝궈 팅션(중국이여, 일어나라)!" 소리가 밀려왔다. 대형 오성홍기를 펼쳐든 한 젊은이를 중심으로 또다시 사람들이 모여 함께 구호를 외쳤다.

 동북지방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는 광란(26·남)은 "어젯(7일)밤에 기차로 여자친구와 개막식을 보기 위해 베이징에 왔다"고 말했다.

동북지방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는 광란(26·남)은 "어젯(7일)밤에 기차로 여자친구와 개막식을 보기 위해 베이징에 왔다"고 말했다. ⓒ 조정래

오성홍기의 게양을 지켜본 중국인들의 소감을 물었더니, 모범답안을 듣는 듯 했다.

쎤전에서 택시를 운전한다는 쩡치옌(40·남)은 "지금 너무 너무 흥분돼서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짧게 소감을 전했다.

동북지방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는 광란(26·남)은 "어젯밤에 기차로 여자친구와 개막식을 보기 위해 베이징에 왔다"면서 "다른 날도 아닌 올림픽 개막일에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니 기분이 너무 너무 흥분되어 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광란은 이어 "개막식 때 여자친구와 함께 메인스타디움 옆에서 볼 계획"이라며 "중국이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아주 강한 국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30명의 중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혜이롱장성 타친에서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에 온 석유노동자들이었다. 그 중 웨이쓰하이(37·남)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30명이 일주일 전에 자전거로 흑룡강성 따친에서 베이징까지 왔다"면서 "지난 2001년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도 노동자 친구들하고 자전거로 와서 그 기쁨을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도 올림픽개막식을 보기 위해서, 특히 중국의 100년 꿈이 이뤄지는 것을 눈앞에 이뤄지는 것을 보기 위해 왔다"며 "개막식에 앞서 오성홍기 게양식을 보니 너무 감격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덧붙여 그는 "올림픽을 통해 세계가 보다 더 조화로운 세계가 됐으면 좋겠고,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서 더욱더 많이 발전하고 강대국 반열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오늘(8일) 밤 냐오차오 옆에서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고 전했다.

 혜이롱장 타친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성홍기 게양식과 개막식을 보러 베이징에 온 석유노동자들.

혜이롱장 타친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성홍기 게양식과 개막식을 보러 베이징에 온 석유노동자들. ⓒ 조정래


 코스타리카에서 온 살고 있는 화교도 부인과 함께 올림픽을 위해 베이징에 왔다. 그는 "부인이 코스타리카 인인데, 중국을 보여주고 싶어 왔고, 이렇게 직접 천안문광장에 와서 중국을 보여주면서 강한 국가가 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격앙된 심정을 밝혔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살고 있는 화교도 부인과 함께 올림픽을 위해 베이징에 왔다. 그는 "부인이 코스타리카 인인데, 중국을 보여주고 싶어 왔고, 이렇게 직접 톈안먼광장에 와서 중국을 보여주면서 강한 국가가 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격앙된 심정을 밝혔다, ⓒ 조정래


또 코스타리카에서 살고 있는 화교도 만났다. 37일 전 부인과 함께 올림픽 여행을 위해 베이징에 왔다는 그는 "중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왔다"며 "코스타리카인인 부인에게 중국을 보여주고 싶어 왔고, 이렇게 직접 천안문광장에 와서 중국을 보여주면서 강한 국가가 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격앙된 심정을 밝혔다.

새벽 5시 30분경, 날이 완전히 밝자 공안들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어둠 속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수가 1만여 명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끊임없이 광장을 빠져나오는 인파는 족히 2만여 명은 되는 듯했다. 대부분이 중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외국인들은 취재진과 일부 여행객뿐이었다.

톈안먼광장을 빠져나가는 중국인들은 상기된 얼굴 그대로였다. 못내 아쉬워 뒤돌아서서 광장 중심에서 펄럭이고 있는 오성홍기를 가리키며 "중국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톈안먼 중심에 높이 걸려 있는 대형 마오쩌둥 초상이 바라보고 있었다.

'100년의 꿈' 담은 오성홍기 보러온 파란 눈의 외국인들

 아일랜드에서 온 케빈과 스콧 부자.

아일랜드에서 온 케빈과 스콧 부자. ⓒ 홍현진


새벽 5시, 아직 오성홍기 게양식이 시작되기 전이다. 개막식 당일 아침에 있는 게양식이었지만 생각만큼 외국인 관광객들은 많지 않았다. 외국인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취재진이었다. 톈안먼광장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한 백인 소년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스콧, 아버지는 케빈.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왔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들 부자는 오성홍기 게양식을 볼 생각에 설레는 표정이었다. 케빈은 "어제도 오성홍기 계양식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는데 25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오늘은 4시에 이 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올 줄은 몰랐다"면서 "우리는 시차가 아니었으면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했다. 이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보기 위해 지난 6일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 있을 올림픽 개막식에도 참여하냐'고 묻자, 두 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은 "개막식 표를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며 "다행히 '아일랜드 올림픽 위원회'에서 티켓을 선물로 줘서 올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카운트다운 소리와 함께 오성홍기 게양식이 시작되었다. 아들 스콧은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약 2분 7초간의 오성홍기 게양식이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테츠너(Tezner)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놀라웠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알프레드(Alfred)와 케이(Kay)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유명한 과학박물관인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1일 중국 고비사막에서 일어났던 개기일식을 생중계하기 위해 중국에 왔으며 지금은 휴가기간이다.

'개막식 티켓은 구했냐'고 묻자, 케이는 "중국에는 일 때문에 와서, 올림픽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면서 "게다가 우리는 곧 시안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그래도 오늘 이렇게 멋진 게양식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테츠너 부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테츠너 부부. ⓒ 홍현진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오성홍기 게양식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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