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머시 픽쳐스, 폴리그램필름 엔터테인먼트

<드레스트 투 킬>의 배우 케이스 고든이 1999년 연출한 <웨이킹 더 데드>(Waking the dead)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남녀가 우연히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어디 그렇게 잘 풀리기만 하면 재미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갈등을 조성시키기 마련이지요. 그 갈등 속에서 두 명은 행복 혹은 슬픔을 향해 달려갑니다. 끝도 없이 평행선을 달려가느냐, 아니면 극적으로 한 점에서 만나게 되느냐. 결국은 멜로영화의 관건은 그것 아니겠습니까.

 

<웨이킹 더 데드>의 세라(제니퍼 코넬리 분)와 필딩(빌리 크루덥 분)의 관계는 사뭇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킵니다. 서로 쉽게 섞일 수 없는 극과 극의 두 인물이 만났기 때문이에요. 필딩은 조합 간부 노동자 출신의 집안에서 자라나 하버드 법대를 다니고 현재(1972년)는 해안경비대 소속으로 군복무를 하는 인물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인맥, 줄 대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왜냐? 과정은 어떠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거든요.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타락한 정치인에게 역겨움을 느끼지만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이용해 정계에 진출하려고 하지요.

 

반면 세라는 신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열혈 사회운동가입니다. 1970년대 당시 미국 사회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고, 이를 역동적인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실천가였던 셈이지요. 다분히 좌파적인 성향의 세라는 부정을 저지르는 권력자들을 면전에다 두고 공격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둘이 만났으니 그들의 사랑이 평탄할 리 없습니다. 서로를 보고 한 눈에 반했지만, 가치관과 생각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첫 만남부터 사람들의 시위와 투쟁에 관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세라와 필딩.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르는 투쟁으로 삶을 허비하기는 싫어요." (필딩)

"무의미한 투쟁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때도 있어요."(세라)

 

세라는 필딩에게 야망은 감정의 호수에 떠 있는 얼음 같은 것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하지요.

 

"나는 당신이 그들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는 게 싫어요."

 

그런데 격렬한 논쟁도 두 사람의 감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둘은 돌아갈 수 없는 긴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인생을 바꾼 위대한 사랑

 

영화는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과거,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처음 시작에서부터 우린 세라의 죽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부들과 함께 칠레 좌파들에게 은신처(시카고)를 제공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던 세라는 우파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이 흘러 1982년, 미국 민주당 입당을 앞두고 있는 필딩의 모습을 비춥니다. 지역구 출마 계획 등 본격적인 정계 활동의 모든 준비를 끝낸 필딩,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혼란이 닥칩니다. 간신히 잊는가 싶었던 세라가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지요. 눈 내리를 길가에서 들리는 세라의 목소리,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중에도 보이는 세라의 모습. <웨이킹 더 데드>의 미스터리와 이야기 전개는 이때부터가 진짭니다.

 

왜 그녀는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요? 중요한 선거를 목전에 둔 필딩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세라는 필딩의 다니는 곳이 어디든 나타납니다. 공항에서도, 길가에서도, 침대에서도. 그의 시야 어디에든 세라가 나타나고 필딩은 매우 혼란스러워 하지요. 그는 이 고통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세라는 진짜일까요.

 

<웨이킹 더 데드>는 물론 사랑이야기의 기본 틀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코드가 많은 영화입니다. 예컨대 좌파들의 이상주의에 신물이 난다고 말하는 필딩과 타락한 정치인과 결탁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필딩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세라의 모습은 그 자체로 현실 세계의 보수와 진보 논쟁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세라가 죽고 기득권 세력이 타락한 정치를 해나가는 이후의 모습은 보수 정당이 권력을 쥔 현 모습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둘의 화합을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한 때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던 둘은 결국 다시 만날 기회를 갖습니다. 물론 그것이 꿈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요. 그 만남을 통해 필딩은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라의 진심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서로가 싸우거나 논쟁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사이임을 깨닫게 됩니다.

 

세라와 필딩의 사랑은 위대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송두리째 뽑아놓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갈 희망을 제시해 주지요. 서로를 갉아먹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믿고 아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논쟁을 하고, 싸울 때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게 정말 싫어요"라고 말했던 그들. 그럼에도 색다른 방식으로 조우하게 된 그들은 영원히 사랑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말입니다.

 

당신이 선택해야 할 똑똑하고 지적인 멜로영화

 

영화 말미에 필딩은 어딘가에 있을 세라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계속 투쟁하시오!(Keep Fighting)" <웨이킹 더 데드>는 세라와 필딩의 갈등을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점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세라가 했던 말처럼, "무의미한 투쟁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수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에요.

 

이 세상에 '사랑'을 화두로 한 예술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영화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정말 너무 많은 영화에서 남녀의 애절한 또는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지요. 매번 봐도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질렸다고 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슬픈 장면도 반복해서 보면 적응이 되는 법이니까요.

 

<웨이킹 더 데드>는 기존 멜로물에 실망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똑똑한 멜로영화입니다. 극과 극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성향을 가진 두 남녀의 극적인 사랑과, 그들이 나누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토론, 논쟁은 기존의 멜로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깊이있는 매력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생각없이 볼 수 있는 킬링타임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웨이킹 더 데드>는 멜로영화가 어떻게 똑똑하고 창조적인 장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8.07.15 13:57 ⓒ 2008 OhmyNews
웨이킹더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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