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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꽃밭에는 한련화가 한창이다.
▲ 한련화 어머님의 꽃밭에는 한련화가 한창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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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님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꽃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내 어딘가에 들어 있다가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겉으로 드러난 것일 게다.

그러나 어머님은 크고 화사한 원예종 꽃들을 좋아하시고, 나는 야생화 중에서도 작고 화사하지 않은 꽃들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보시면서 "그것도 꽃이냐?" 하시고, 나는 "이게 정말 꽃이에요" 한다.

한번 피면 백일을 간다하여 붙여진 이름을 가진 백일홍도 어머님의 꽃밭에 피어났다.
▲ 백일홍 한번 피면 백일을 간다하여 붙여진 이름을 가진 백일홍도 어머님의 꽃밭에 피어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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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치이고, 시국이 어수선하여 평정심을 잃어버린 데다가 일 년 사시사철 중에서 꽃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덜한 여름, 가을꽃이 피어나기 전까지는 겨울을 빼고는 가장 꽃이 적은 계절을 살다 보니 꽃을 담는 일이 심드렁해졌다.

시골에 살면서 들꽃을 담는 것은 일상이라해도 좋았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야생화를 담는다는 것은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 문득,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원에서 이런저런 원예종을 사오시는 어머니가 사치한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야생화를 담으려고 외곽으로 나가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가는 내가 오히려 더 큰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씨앗을 받아두었다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니 철저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의 흙과 바람과 햇살로 꽃을 피우는 것이니 차라리 더 소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님은 크고 화사한 꽃들을 좋아하신다.
▲ 자주색달개비 어머님은 크고 화사한 꽃들을 좋아하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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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종 꽃은 어지간해서는 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오늘(10일) 아침에도 그랬다. 어머니는 막 잠에서 깨어난 자주색달개비가 예쁘다고 극찬을 하셨지만, 나는 꽃이 너무 큰데다가 자기밖에 모르는 듯 무성하게 피어난 자주색달개비가 별로였다.

문득, 야생화와 원예종 나누고 차별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내가 꽃을 정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꽃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매일 아침저녁 물을 주고, 눈맞춤을 하고, 포기를 나눠 화분에 심어 지인들과 나누고 싶어하시는 어머니가 꽃을 더 사랑하시는 것이다.

때늦게 피어난 금낭화, 아직도 이파리는 싱싱하다.
▲ 금낭화 때늦게 피어난 금낭화, 아직도 이파리는 싱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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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가꾸시는 꽃들을 작은 화분에 심어 지인들과 실컷 나누고도 꽃들이 넘쳐났다. 어머니는 길에 좌판을 깔고 꽃을 팔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냥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걸 막기 위해 꽃집에서는 그보다 더 예쁜 것이 얼만데, 어머님 것은 그냥 주면 모를까 돈 내고는 누구도 안 사갈 것이라며 천원짜리 화원에서 파는 꽃이 얼마나 예쁜지 증명하기 위해 원예종 꽃을 사오기도 했다.

그제서야 한풀 꺾인 어머니는 그냥 가꾸고, 보는 것으로 꽃살림을 정리하셨다.

어머니는 꽃을 분양하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 외래종 채송화 어머니는 꽃을 분양하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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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조경해놓은 꽃 중 흔히 볼 수 있는 외래종 채송화도 어머니의 꽃밭에는 한창이다. 작년에 작은 화분 하나 사오셨는데 올해는 작년의 열 배 이상의 면적을 차지했다.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어머니의 꽃밭에서 절로 씨앗을 퍼뜨려 자랄 것이다. 솎아내지 않으면 다른 꽃들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죽어가는 꽃도 살리는 어머니는 늘 입에 '꽃이 잘 되면 집안이 잘된다'는 말을 달고 사신다. 워낙 꽃이 잘 되기 때문에 나도 그 말이 속설이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하고 산다.

어머님의 꽃밭 한 켠, 하루 외출 하신 사이 폭염에 동자꽃이 말라버렸다.
▲ 동자꽃 어머님의 꽃밭 한 켠, 하루 외출 하신 사이 폭염에 동자꽃이 말라버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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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이 생겼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 어머님이 1박 2일의 외출을 하신 사이 시름시름 더위에 몸살을 앓던 동자꽃이 기어이 말라버린 것이다. 작년에는 무척이나 많았는데 올해 동자꽃 농사는 사실 별로였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자 어머니는 "올해는 동자꽃한테 별로 관심을 못 줬네, 씨 받아서 내년에는 많이 피게 해야지. 미안해서 어쩌나…." 하셨다. 과연 남은 동자꽃에서 씨앗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예종이긴 하되 어머니의 꽃밭은 늘 자연이 만든 꽃밭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나는 일상에 치여 만나지 못하는 야생화에 대한 갈증을 여기서 풀면서도 여전히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문득, 말라비틀어진 동자꽃을 보면서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떠올렸다. 자식새끼들과 내 삶에만 연연하느라 부모님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지니 뜨끔하다. 오늘은 퇴근해서 어머님의 꽃밭에서 사진이라도 찍어 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야생화, #원예종,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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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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