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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꽃을 많이 볼 수 없는 이유는 봄에 피어났던 꽃들이 열매로 익어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름에 피어나는 꽃들도 있지만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대지에서 흙과 바위를 밀어내고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는 봄만큼은 아닙니다. 수중식물들을 제외하면 뜨거운 뙤약볕에 제 빛을 잃어 버리니 유혹의 빛도 잃어 버려서 여느 계절보다 꽃이 흔한 것 같으면서도 꽃이 없어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 어머님의 꽃밭에는 이파리만 무성하게 남아 열심히 씨앗을 퍼뜨리던 매발톱이 있었습니다. 무성한 이파리는 소낙비가 오면 물방울을 송글송글 맺어 물방울 보석을 만들곤 하지요. 물방울 보석을 잘 만드는 이파리는 연이나 토란의 이파리입니다. 매발톱의 이파리도 그 중 하나죠. 그래서 꽃은 없지만 내년에 피어날 씨앗들과 물방울 보석을 보는 재미, 초록의 이파리를 보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전에 꽃몽우리가 생기는 듯하더니만 매발톱꽃 한 송이가 화들짝 피어났습니다. 바보꽃은 한 겨울 추위에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여름에도 피어나는군요. 제 철에 피어나지 못하면 다 '바보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바보꽃이라도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은 봄에 만난 매발톱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색깔은 야생의 매발톱보다 화사한데 매발톱꽃의 포인트가 되는 발톱이 죽 늘어져 뭐하나 쥘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를 보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반가워, 늦게 피어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여!"
 
그렇습니다. 대기만성, 늦게 피어났어도, 사람들이 바보꽃이라고 불러도, 야생의 꽃처럼 야무진 발톱이 없어도 그는 그대로 활짝 웃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활짝 피어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마냥 행복해하는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럴 때면 내가 그동안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는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의 끄나풀에 연연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죠.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놈들과 한패가 될 수는 없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는 나대로 살자고 해도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나는 바보다."
 
그렇게 푸념하면서 '바보꽃'을 생각하지요. 바보꽃도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보꽃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고 싶은데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오호라,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미친 것 같은 세상에서는 정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바보가 됩니다. 바보꽃으로 피어난 매발톱을 보며, 그냥 바보로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물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매발톱, #바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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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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