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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숲에 가면 아주 작은 꽃이 모이고 모여 꽃물결을 이룬 듯 피어나는 꽃이 있다. 겨울이 긴 강원도의 높은 산에서는 6월 초에도 여전히 싱싱하게 피어나는 풀솜대를 만날 수 있다. 식물은 정명이 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한방에서 사용되는 이름 등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풀솜대 역시도 다른 이름이 있는데 지장보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지장보살'이면 불교와 관련이 있을 터이다. 연꽃은 물론이려니와 식물이름에 아예 불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부처꽃, 불당화도 있으니 지장보살도 있을 만하다.
 
 
지장보살은 <지장삼륜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현실에서 중생을 구제하도록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받은 분이라고 전해진다.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알려졌으며, 자신의 안락은 뒷전으로 돌리고 지옥이든 천상이든 고통받는 중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구원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 꽃에 '지장보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꽃에서 절 냄새 혹은 스님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후각이 둔해서 그런지 풀솜대 특유의 꽃향기는 어떤지 기억이 없다. 그냥 풀향기만 났던 것 같은데 그 곳에서 절이나 스님을 떠올릴만한 향기를 맡았다니 누군가 상당한 후각을 가진 것 같다.
 
 
어릴 적 부처님오신날이면 동네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절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고기도 없는 밋밋한 절밥이었지만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 절밥은 참으로 맛났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야 푸성귀로 만들어진 절밥의 깔끔한 맛을 알았지만 나에게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진 않는다.
 
제주도에 살 때 봄이면 중산간에서 지촌으로 풀솜대를 만났고, 심지어는 텃밭 한 구석에서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기에 귀한 줄 몰랐다. 서울생활을 시작하고서야 그렇게 흔하던 풀솜대조차도 무척이나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런 것일까? 곁에서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인 것이다.
 
 
강원도의 제법 높은 산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도 다른 꽃에 눈이 팔려 그와 제대로 눈맞춤을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좀더 많이 담아올 것을 후회했지만 다시 가기에는 너무도 먼 곳이었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작은 촛불이 하나 둘 모여 거대한 불꽃을 만드는 것을 생각했다. 실개천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는 것처럼 작은 함성, 작은 불꽃 하나가 역사라는 커다란 바다와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요즘, 그 작은 꽃은 참으로 의미 있어 보였다.
 
 
이제 6월 중순, 완연한 여름이다. 이제 봄꽃들은 추억 속으로 보내고 내년을 기약한다. 이제 봄꽃을 넘어 여름, 청년의 꽃을 만날 것이다.
 
봄꽃이 겨울이라는 고난의 계절을 극복하며 피어났기에 그토록 애틋했다면, 여름꽃은 이른봄부터 싹을 내고도 오랜 기다림 끝에 꽃을 피우니 활기에 차 보인다. 저마다 피어날 시기에 피어나는 들꽃들을 보면서 우리내 역사도 그렇게 순리대로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내년에 풀솜대를 만나면 한번 그 작은 꽃에 코를 들이대고 그의 향기를 맡아봐야겠다. 절냄새, 스님냄새가 어떤 것인지 한 번 느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풀솜대, #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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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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