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 권우성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사흘째 지켜보면서 가슴 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뭉클뭉클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는 제가 천주교 신자여서라기보다는 저 역시 국민의 외침에 귀를 닫고, 폭력으로 대응하는 이명박 정부에 적지 않은 분노와 상처를 입은 한 사람으로서 신부님의 말씀과 사랑이 큰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평화롭던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과 이에 화답하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평화의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시민들 역시 폭력으로 맞서면서 촛불집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종교인들이 나서면서 촛불집회는 다시 평화의 기운을 찾았습니다. 저는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신부님의 말씀에서, 십자가를 들고 행렬의 맨 앞에서 시민들을 이끄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불현듯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1986년에 만들어진 영화 <미션>(롤랑 조페 감독).

 영화 <미션> 포스터

영화 <미션>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서정적인 오보에 연주곡인 '가브리엘 오보에(Gabriel's Oboe)'로 상징되는 영화 <미션>은 1750년 제국주의 열강들의 개척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남미의 과라니족과 그들과 함께 하는 신부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여러 모로 지금의 촛불 정국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영화에서 원주민들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노예상과 제국주의 관료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내주는 대신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벌어보려는 이명박 정부와 닮아 있습니다.

 

노예상과 제국주의 열강에게 상처 받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활과 칼을 든 과라니족은 천박한 시장논리에 사로잡힌 이명박 정부에 상처받고, 주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우리 국민들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과라니족을 음악과 사랑으로 치유해 주는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분)' 신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닮아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유성호

 가브리엘 신부가 노예상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상처받은 과라리족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신부가 노예상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상처받은 과라리족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에서 과라니족은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강물에 떠나보냅니다. 왜냐하면 노예상과 군인들이 나타나면 부모가 각자 아이 한 명씩을 업고 도망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관료들은 자식을 죽이는 미개인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며 죽이거나 사고팔아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이 역시 경찰의 폭력진압에 폭력으로 맞서는 일부 시위대를 두고 촛불집회 전체를 폭력집회로 규정하고, "불법 폭력시위는 공동체의 평화와 이익을 깎아내리는 해충"(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이라고 모독하는, 또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부모들을 "아기를 방패삼는 이런 사람들이 진짜 부모가 맞는 지 의문이 든다"(한나라당 권영세 의원)라고 비난하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노예상으로 자신들을 살육했던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 분)'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과라니족의 모습(영화에서 멘도자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신부가 됩니다)은 전경들에게 꽃과 초콜릿을 건네고, 낙오된 전경을 다시 돌려보내는 시민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서 신부님들이 촛불을 든 시민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2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서 신부님들이 촛불을 든 시민들 사이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 권우성

 가브리엘 신부가 촛불을 든 원주민 사이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신부가 촛불을 든 원주민 사이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 워너브라더스

또한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원주민들의 모습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해 촛불을 든 지금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국주의 군대의 학살에 맞서기 위해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들과 함께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장면은 시국미사를 마치고 신부님과 시민들이 함께 행진하는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든 신부님과 시민들이 함께 거리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든 신부님과 시민들이 함께 거리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 강기희

 성체를 든 가브리엘 신부와 십자가를 든 과라니 사람들이 제국주의 군대에 맞서 평화적인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성체를 든 가브리엘 신부와 십자가를 든 과라니 사람들이 제국주의 군대에 맞서 평화적인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 문동섭

이처럼 제국주의 논리에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했던 영화 <미션>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국민이 희생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 지금의 촛불정국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영화 <미션>은 단순히 지금의 촛불정국을 투영하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촛불정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미션>의 두 주인공인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 신부는 군대의 학살에 대항하는 방식이 각기 다릅니다. 멘도자 신부는 군대의 무력에 똑같은 무력으로 맞서는 반면에 가브리엘 신부는 예수님 성체와 십자가를 앞세우고 평화로운 행진으로 대항합니다.

 

안타깝게도 두 신부 모두 제국주의 군대의 총칼에 순교를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은 과라니족 아이들과 함께 행진하다 최후를 맞은 가브리엘 신부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가브리엘 신부가 제국주의 군대와 결전을 앞둔 멘도자 신부에게 "무력이 옳다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한 말은 그 울림이 참으로 큽니다.

 

이는 아마도 영국의 식민지배에 비폭력으로 저항했던 간디의 이념이 폭력으로 저항했던 무장단체의 이념보다 더 큰 가르침으로 와 닿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폭력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비폭력의 평화로 승화시키는 것이 더 값지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5장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이 말은 폭력에 단순히 인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촛불을 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몬다고 해서, 한나라당 대표가 시위참가자들을 '해충'이라고 한다고 해서, 또 경찰들이 폭력으로 진압한다고 해서 우리마저 그들과 똑같이 폭력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이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라는 성경구절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습니다.

신부님들이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라는 성경구절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습니다. ⓒ 유성호

 

영화 <미션>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 글귀는 <요한복음> 1장 5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국미사를 마치고 함께하는 거리행진에서 신부님들이 든 현수막에도 이 글귀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다고 해도 빛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촛불이라는 '빛'은 우리가 들고 있습니다. 그 빛을 계속 밝히고 있는 한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2008.07.03 17:11 ⓒ 2008 OhmyNews
미션 시국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촛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