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보브찬친(35·우크라이나)은 프라이드의 전설적인 스타들을 논함에 있어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이름 중 하나이다. '북방의 최종병기', '양어깨에 대포를 매단 사나이' 등으로 불렸던 그는 무시무시한 닉네임만큼이나 화끈하고 파괴력 넘치는 경기를 선보였던 파이터로 팬들 사이에서 기억되고 있다.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4·크로아티아)이 '전율'과도 같은 발차기로 프라이드 무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보브찬친은 마치 핵폭탄 같은 무시무시한 펀치력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비록 신장은 173cm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람한 체구에 굵은 팔다리에서 나오는 타격파워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순간적인 움직임이 워낙 좋아 많은 상대들이 잠깐의 빈틈으로 링바닥에 나가떨어지기 다반사였다.

 

그와 맞붙게된 상대들에게는 이른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맞고 쓰러진다', '맞기 전에 그를 제압한다!' 일단 이고르의 주먹이 나오기 시작하면 방어는 지극히 어려웠기 때문에 이고르의 대포가 슬슬 달궈지는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마이너 무대를 휩쓸었던 ‘고화력 전투병기’

 

이고르 보브찬친 그는 프라이드 진출전부터 이미 마이너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강자였다

▲ 이고르 보브찬친 그는 프라이드 진출전부터 이미 마이너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던 강자였다 ⓒ 프라이드

비록 유명세는 높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프라이드 진출전 이고르의 마이너무대 성적은 입을 쩍 벌어지게 할 정도로 엄청났다.

 

IAFC, IFC, WVC, DNRF, MSG 등에서 22경기를 뛰었던 그의 당시 성적은 20승 1무 1패, 18경기 무패행진이 포함된 기록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중에서 판정경기는 단 1경기 밖에 없었고 모두 1라운드 안에 결판을 냈다는 사실이다.

 

화끈하게 때려눕히던가 서브미션으로 상대를 제압하던가 둘 중의 하나였다. 그야말로 '고화력 전투병기'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이고르의 가공할 무패행진은 프라이드에 입성해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터주대감' 게리 굿리지를 2번이나 넉아웃 시킨 것을 비롯 주짓떼로 프렌시스코 부에노를 1라운드 초반에 잠재워버렸으며 당시 최고스타였던 사쿠라바 카즈시마저 엄청난 타격으로 때려잡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 기간 동안에 패배는 1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프라이드가 아닌 'K-1 - Dreams 1999'에서였고 상대 또한 입식타격의 최강자 중 한 명인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였다.

 

보브찬친과 후스트의 경기는 2002년 'K-1 후쿠오카'에서 있었던 퀸튼 잭슨과 시릴 아비디의 경기와 많은 면에서 대조가 된다. 당시 잭슨은 입식능력이 훨씬 앞서는 아비디를 상대로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난타전을 유도했는데, 냉정하지 못한 아비디는 같이 맞불을 놓다가 페이스를 잊어버리고 참패를 당한 바 있다.

 

하지만 후스트는 달랐다. 신장에서 한참 밀리던 보브찬친은 거리를 좁히며 펀치공방전으로 승부를 몰아가려 했지만 노련한 후스트는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전매특허인 로킥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자칫 보브찬친에게 펀치거리를 허용하거나 근접전이 되었다 싶은 순간에는 차라리 넘어져버리거나(?) 악착같이 클린치를 하며 심판의 떨어지라는 사인을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로킥 데미지는 쌓여만 갔고 견디지 못한 보브찬친은 3라운드에 무너지고 말았다. 만약 당시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팬들은 보브찬친을 MMA가 아닌 다른 무대에서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맞으면 끝! 공포의 러시안 훅(Russian Hook)

 

이고르 보브찬친 누구도 그의 러시안 훅(Russian Hook)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했다

▲ 이고르 보브찬친 누구도 그의 러시안 훅(Russian Hook)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했다 ⓒ 프라이드

 

입식무대의 최강자 조차 펀치난타전을 꺼렸을 정도로 보브찬친의 펀치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안 훅은 보브찬친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데 그만큼 당시에 보여주었던 임팩트는 엄청났다.

 

허리와 무릎을 돌려서 치는 일반적인 훅과 달리 러시안 훅은 어깨와 팔꿈치를 중심으로 주먹을 안쪽에서 비틀어 스트레이트로 명중되는 펀치. 어깨에서 반원을 그리며 팔꿈치를 되돌리는 식으로 각을 이뤄 펀치가 나가는데 어떤 면에서는 훅과 스트레이트의 장점이 혼합된 공격기술로도 볼 수 있다.

 

한방을 노리는 펀치스타일상 K-1 등 입식무대서 큰 위력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공격 후 밸런스 유지가 용이하고 상대의 태클을 피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종합 링에서 더욱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하이킥이 아닌 크로캅의 하이킥이 두려운 것처럼 러시안 훅 역시 단순히 그 기술의 존재여부가 아닌 보브찬친이 구사하는 러시안 훅이기에 더욱 무섭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강한 어깨와 굵은 팔에서 힘차게 휘둘러지는 보브찬친의 러시안 훅은 오픈핑거 글러브의 특성상 일단 사정거리에만 들어오면 웬만한 가드 정도는 간단하게 꿰뚫어버리는데 거기에 일반적인 펀치와는 전혀 다른 스텝과 궤도까지 가지고 있어 정상적인 거리에서는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극찬까지 받고 있다.

 

때문에 많은 파이터들은 경기 시작 종이 울린 후부터 끝날 때까지 온몸의 신경을 보브찬친의 주먹에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안 훅을 알고도 피하지 못해 나가떨어진 선수가 부지기수이다. 이는 링 무대 뿐만 아니라 옥타곤에서도 고르게 해당되었다.

 

보브찬친의 러시안 훅은 어찌나 위력이 강력한지 상대를 바닥에 넘어지기도 전에 기절시켜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이는 MMA 무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지금도 종종 프라이드 명장면의 하이라이트에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신의 한계 때문인지 보브찬친의 수비력은 공격력에 비해 많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같은 타격가인 크로캅에게 하이킥을 얻어맞으며 되려 자신이 실신을 당하는가하면 힘을 앞세운 마크 콜먼의 그래플링에 변변한 반격을 해내지 못하는 등 어느 한쪽에 특화된 상대에게 종종 발목을 잡히며 정상권으로 확실히 치고 나가질 못했다.

 

심지어 프라이드 활동 막판에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오브레임의 길로틴에 먹잇감이 되고 말았으며 나카무라 카즈히로에게 마저 경기 내내 굴러다니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보브찬친은 2005년 8월 이후 공식적인 경기를 가지지 않고 있다. 그래플링 대회 출전, 반더레이 실바와의 매치업설 등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상 결과로 보여주는 것은 별반 없었으며 조금씩 격투계의 관심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사업에 전념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사실상 은퇴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의 강렬했던 러시안 훅 만큼은 프라이드와 함께 팬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2008.06.29 19:27 ⓒ 2008 OhmyNews
러시안 훅 북방의 최종병기 이고르 보브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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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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