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나는> 한 장면

<전장에서 나는>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대한민국 남자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간다(물론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면제를 받는 사람도 있고, 양심적 병영거부로 감옥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국가에게 2년여의 시간을 맡기는 일이자,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 강제라는 데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며 군사교육을 시킨다.

 

군대에서 자행되는 주입식 세뇌 교육의 위력은 상당하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다, 절대로 욕하지 말자',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레드 콤플렉스'와 '미국 찬양' 환자들이 득실거리는 수컷의 세계에서 다른 의견은 존중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국가와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 성추행이나 폭력적 지시 같은 범죄행위를 거부할 때에도 군대는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 그 곳에서는, '집단'과 '희생', 그리고 '명령 복종'이 최우선 덕목이다.

 

파병 군인이 전하는 전장의 비극적 현실

 

"군대 다녀와야 남자가 철이 들고 세상을 알 수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며 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휴전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나라가 약하기 때문에 강력한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분명 전쟁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다. 현역은 물론이거니와 예비역조차 전쟁이 나면 총을 들 수밖에 없다는 중압감과 공포에 시달리기 일쑤다.

 

공미연 감독의 2007년 작 <전장에서 나는>은 바로 그런 '전장'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의 진술이 담긴 문제적 다큐다. 영화는 자이툰 부대에 파병되어 생활했던 예비역들의 이야기와 실제 전장에 놓인 이라크 사람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고통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던 파병 군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단연코 이 영화의 존재이유를 말해주는 점이기도 하다. 파병에 지원했을 때의 심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그리고 50도에 달하는 뙤약볕의 전장에 놓였던 이들의 심정을 카메라는 그저 담담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그 어떤 정치적 개입이나 딴죽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미디어나 언론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던 파병 군인들의 솔직한 심경을 대단히 꼼꼼하게 그린다. 덕분에 관객들은 하나의 이미지로만 각인되었던 이라크 파병의 진실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예컨대 몇몇 파병 체험자는 전장이라서 위험했을 거라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더위 빼고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보통 일반 내무생활이나 식사 등에서 일반 군인들보다 많은 자유를 누려 아주 편했다는 것. 하지만 이라크 시내를 차로 이동할 때마다 그들은 항상 공포감과 두려움이 가득했다고 한다.

 

서로 웃으며 대화했던 이라크 현지인과 불가피하게 총을 겨눌 수도 있고, 영화나 다큐에서나 보던 끔찍한 전장 상황에 스스로가 놓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증언자들은 이라크가 겉으로는 평온해 '여기가 진정 전장인가?'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이라크인들 삶의 곳곳에 놓인 전쟁과 폭력의 상흔을 목격하게 되면 금세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라크 말고도 또 다른 전장을 방문한다. 그 곳에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매일 고통 속에서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일 이동할 때마다 이스라엘 군의 치욕적인 검문(옷을 벗으라고 강요하는)과 마주하며, 밤마다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고향에 갈 수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도 없는 그들의 선택은 오직 그 공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한없이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비뚤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하는 모습은 강대국의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적 논리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절묘한 교차편집...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전장에서 나는>의 가장 영리한 점은 바로 교차편집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위험성을 더욱 절실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자이툰 부대 파병 군인들과 이라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증언은 특별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장'이라는 차가운 현실의 이미지로 모이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파병 군인 중 누군가는 희생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느끼는 죄의식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파병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일관한다. 교차되는 영상에서 감독은 우리가 말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폭력의 희생물로 전락한 전장의 사람들을 비춘다.

 

그들은 겉으로는 웃고 즐겁지만,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침해받아야 하는 현실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그 중 한 이라크인은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한국의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하지만 이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들의 파병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잠자지도, 먹지도, 생활하지도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항상 그렇듯, 국제사회에 필요한 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상호 이해관계'라고 말한다. 이라크 파병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소고기 파동도 결국 모든 걸 같은 관점에서만 파악해 실행했다. 물 밑에서 수없이 울부짖는 일반 서민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면피성 정책으로 당장의 비난을 감수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북한에 대한 대응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무조건 퍼준다는 비난과 강력하게 대응하자는 살벌한 선전포고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사람과 인권의 중요성은 소멸된 지 오래다. 현 이명박 정부는 중국의 재난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북한 어린이 문제 등에는 차갑게 대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상호 이해관계’ 때문이다. 미국(한미 FTA, 쇠고기 협상)이나 중국(대지진, 올림픽 관련 중국인 시위에 대한 대응), 일본(독도, 역사 청산 문제) 등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며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은 당연하다고 외친다.

 

반면 대북정책은 한없이 냉정하고 살벌하다. 핫라인이나 나들섬 구상 등의 실현 가능성 제로의 정책을 무책임하게 내놓고는 무조건 '비핵, 개방'만을 내세운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남한이 주도적으로 북한 경제를 이끌겠단다. 이 말을 긍정적으로 들을 나라, 국민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식민지나 속국에 대한 대응정책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철저하게 기업CEO 마인드를 가진 현 정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장에서 나는>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전쟁위협과 인식은 결국 북한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 대단히 처참한 폭력의 중심에 선다. 타깃을 세워(대개 북한군 옷을 입고 있는) 총을 쏘고, 좀 더 잘 '죽인' 병사들은 칭찬을 받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그 곳에는 정작 중요한 '사람'이 없다. 뜨거운 피가 흐르지 않는다. 인권과 도덕성을 장애물 정도로 취급하는 국가에게 '사람'은 그저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모양이다. 본질까지 호도시키면서 국가를 위해, 집단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가도, 집단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구성원은 사람이고, 인권은 그 사람들의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다. 이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닌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전쟁 위험성의 인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폭력에 저항하기'다. 나와 내 동료,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인식하고 행동하며 저항한다는 것. 개개인의 그 작은 인식과 실천이 군사적 습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바꾸고, 강력한 연대로 힘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른 세상'은 생각만 바꾼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영화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되었고, 곧 DVD로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서울영상집단'으로 하면 된다.

2008.06.12 18:0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영화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되었고, 곧 DVD로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서울영상집단'으로 하면 된다.
전장에서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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