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뉴라인 시네마


30분 19초였다. 미국 드라마(미드)를 통해 그녀들을 만났던 시간은. 아쉬웠고 아쉬웠으며 아쉬웠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녀들과 함께 한 시간은 언제나 바빴고 언제나 모자랐다. 4년 전 시즌 6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던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 그녀들이 다시 돌아왔다.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에 어울리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사실 <섹스 앤 더 시티>가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들의 마니아는 두구두구두구 하며 카운트를 세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마지막 시즌쯤 붉어진 사라와 킴의 서먹한 관계로 한때 영화출연 섭외마저 미지수라는 소식이 나돌았지만 스크린 속의 그녀들은 충분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1998년 미국의 케이블에서 탄력받은 그녀들은 그 흐름을 타고 우리나라 케이블로 넘어 와 6년이라는 세월동안 지속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처음 우리나라에 방송을 탈 때만 해도 섹스로 시작하는 제목을 발음하는 입술은 어색했다. 하지만 섹스라는 단어가 주는 그 낯선 어색함 속을 성큼 성큼 파고들어 파격적인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것은 어쩌면 누구도 말하기 꺼려했던 그 낯선 곳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유쾌하게 그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늘진 야한 동영상(야동)으로 바라보는 섹스가 아닌 정면으로 마주보는 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 1998년의 사람들에게 파격적인 시도였다.

물론 2008년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케이블 방송은 어디에서건 섹스를 말하고 더 야한 것을 들추어내느라 혈안이 돼 있다. 세월은 어느 순간 의식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네 명의 여자는 각기 다른 취향이다. 칼럼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사랑을 생각하는 캐리, 사랑 없는 섹스만을 원하는 사만다와 사랑에도 감성보다는 이성이 더 많이 좌우하는 미란다 그리고 여성스럽고 보수적인 여자 샬롯.

그렇게 다른 취향의 여자 네 명이 자신의 사랑과 섹스담을 통해 일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그녀들의 우정이 어떤 모양인지 바라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는 흥미롭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 ⓒ 뉴라인 시네마



느긋한 표정의 여자들은 늦은 아침을 먹으며 지난 밤 자신의 섹스에 대해서 얘기한다. 거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대낮의 음식점에서 나눌 수 있는 수위의 번드르르한 감성표 사랑이 아니다. 오랄을 했으며 어떤 체위가 좋고 어떤 것은 싫다는 소리들은 달팽이관을 정조준 하며 귓가에 울린다. 그것은 숨기고 꺼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사람들에게 신선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또 하나, 그 어떤 사랑의 위기도 일과 우정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언제나 반듯하게 영글어진 우정은 그 누구도 우울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우정은 밝고 화사하며 깊기까지 하다. 김수현의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재치 있는 입담은 마치 탄산 음료에 레몬을 얹은 듯 경쾌하다.

30대에서 40대가 된 그녀들의 중심에는 자신의 일과 사랑과 그리고 우정이 있었다. 6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들은 몇 번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도 낳았다. 또 이혼도 했다.

물론 일반적이다. 하지만 언제나 다섯 살로 존재하는 만화 속 짱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 속 그녀들도 우리와 같은 세월을 살고 있다. 주름이 패고 흰머리가 나지만 거기에는 포스트 잇에 이별통보를 받는 참을 수 없는 실연의 경험 앞에서 같이 마리화나를 피우며 씹어 줄 우정이 존재한다.

영화는 그것을 이야기 한다. 지금 사랑에 무너지는 자신을 느낀다면 조용히 그녀들의 6년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나친 부르조아지만 사랑에 실패했다가 또다시 유쾌하게 웃으며 털고 일어나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뉴라인 시네마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걷는 그녀들에게 사랑은, 섹스는, 우정도 일도 뛰어 넘을 수 있는 인생의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기에 그녀들은 씩씩한 삶을 이어간다. 영화는 사랑을 시작하고 때로는 상처받으며 다시 일어서는 용기있는 그녀들을 보여준다.

가끔 우리에게는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보다 웃으며 잊을 수 있는 용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섹스 앤 더 시티> 는 사랑을 과감한 언어로 포장하고 있지만 여자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마침표를 찍어 준다.

다른 사랑을 해도 마음에서 밀어내지 못하는 빅과의 관계로 힘들어 했던 캐리, 엄마로 아내로 변호사로 너무나도 반듯하기에 힘든 미란다, 여자로서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아픔을 안고 살아왔던 샬롯, 10년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정착한 쿨한 여자 사만다. 그녀들이 또다른 이야기를 안고 돌아왔다. 그녀들의 유쾌한 사랑이야기에 빠질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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