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하다 대구FC 어려운 재정 때문에 선수들의 이름이 아닌 스폰서를 등번호 위 아래 새긴 대구FC 선수들. 한 관중은 "대구은행이 어시스트 하고 쉬메릭이 골 넣었네예!"라고 표현했다. 이름없는 이들의 공격축구는 홈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 화끈하다 대구FC 어려운 재정 때문에 선수들의 이름이 아닌 스폰서를 등번호 위 아래 새긴 대구FC 선수들. 한 관중은 "대구은행이 어시스트 하고 쉬메릭이 골 넣었네예!"라고 표현했다. 이름없는 이들의 공격축구는 홈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 이성필


"저기 명단을 보세요. 전부 국가대표급 아닙니까? 우리 선수들 중에 누가 있습니까? (이)근호도 인제야 대표에 들어가는데…."

현역시절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수비수들을 농락하며 그라운드를 누볐던 대구FC의 변병주 감독은 경기 전 선수 대기실 복도에서 울산 현대의 출전선수 명단을 가리키며 어려운 시민구단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들을 열거했다. 그의 말대로 열성 축구팬이 아닌 이상 대구에서 알 만한 선수는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오가는 이근호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름없는 선수들과 변병주 감독의 조화

팀에 유명한 선수가 있으면 그나마 관중 몰이의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수원 삼성에서 활약했던 공격수 안정환이 올 시즌 친정 부산 아이파크로 돌아가자마자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것은 시민구단 대구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일이다. 같은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가 수도권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대전시티즌이 고종수라는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구의 사정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의 질이 관중을 불러모으는 요인이 된다. 골이 많이 터지는 공격적인 색채의 축구를 보여주면 관전하러 오는 관중 입장에서는 신나서 더 자주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름값에서 상대에 밀리는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치르는 변병주 감독의 입장에서는 공격축구가 일종의 승부수다.

그는 "홈팬들을 상대로 하는 홈경기는 잔칫상을 차려놓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홈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해 팬들에게 감동을 주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K리그의 질적 향상은 물론 전체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변병주 감독의 생각이다.

변병주 감독의 말대로 대구는 6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4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2006년 신인왕 후보였던 장남석의 두 골을 포함, 폭풍 같은 공격력을 앞세워 3-1의 승리를 거두고 정규리그 6위로 올라섰다. 경기 전까지 인천, 광주 상무에 이어 최소실점 2위(2실점)를 달리고 있던 울산을 상대로 세 골을 퍼부은 대구의 공격력은 환상적이었다. 

화창한 날씨 속에 경기장에는 2만 1675명의 관중이 찾아 대구의 공격축구를 마음껏 즐겼다. 지난 16일 부산과의 홈 경기에서 2만 9785명이 찾아 3-2 역전승을 이래 두 번째 다섯 자릿수 관중을 기록한 것이다.

텅 빈 것 같지만... 대구는 전국에서 덥기로 소문난 동네다. 따가운 햇살은 관중을 본부석으로 피하게 한다. 덕분에 본부석 건너편 관중석은 텅 비어 보인다. 그래도 경기장에는 2만 1675명의 관중이 찾아 공격축구의 진수를 만끽했다.

▲ 텅 빈 것 같지만... 대구는 전국에서 덥기로 소문난 동네다. 따가운 햇살은 관중을 본부석으로 피하게 한다. 덕분에 본부석 건너편 관중석은 텅 비어 보인다. 그래도 경기장에는 2만 1675명의 관중이 찾아 공격축구의 진수를 만끽했다. ⓒ 이성필


짠물수비의 울산을 상대로 화끈한 세 골

공격축구라는 화끈한 명제를 내세운 것 답게 전반 40초 울산의 왼쪽 측면에서 이근호가 골문 쪽으로 낮게 깔아 연결한 것을 장남석이 달려들어 넣으며 올 시즌 최단시간 골을 기록했다. 그 전까지는 지난 3월 16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인천의 라돈치치가 기록한 41초였다.

경기장은 들썩였다. 너무나 큰 경기장이라 관중의 응원이 크게 울리지 못했지만 분위기는 대구의 역동적인 공격모드로 흘러갔고 전반 11분 문주원의 오른발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춰 탄식을 불러오기도 했다.

대구의 집중력 있는 공격에 울산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국가대표 염기훈의 예리한 왼발도 대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전반 36분 장남석이 두 번째 골을 기록하자 모든 관중은 "대~구~. 대~구~"를 외치며 대구스타디움을 흔들었다. 변병주 감독은 골이 터질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대구의 화끈한 공격에 맞불이라도 놓으려는 심산이었을까. 울산의 변병주 감독은 전반 부진했던 페레이라와 브라질리아 등 외국인 선수를 국내 선수로 교체하는 강수를 보여줬다. 대구에도 세 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지만 에닝요를 제외한 두 선수는 부상 중이라 울산에 유리했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못한 것이 화가 났는지 김정남 감독의 강수는 의외였다.

김정남 감독의 큰 결단에도 변병주 감독은 쉼없는 공격을 명령했다. 주중 광주 상무와의 컵대회가 광주의 집단 식중독 증세로 취소되면서 체력에 자신 있었던 터라 선수들의 움직임은 한결 가벼웠다. 후반 15분 이근호가 왼쪽 측면으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한 뒤 슈팅한 것이 골포스트를 맞고 반대편 페널티지역으로 흘러간 것은 너무나 아쉬운 장면이었다.

이근호의 아쉬움을 달래 준 것은 '플레잉코치'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진경선의 도움을 받은 문주원의 골이었다. 팀 내 체력왕인 왼쪽 측면 미드필더 진경선의 돌파는 현역시절 변병주 감독의 드리블 돌파가 환생한 것처럼 보였고 문주원의 감각적인 왼발 슈팅은 공격축구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과 같았다.

대구 팬 "없는 살림에 이 정도의 경기력은 큰 감동"

"홈 경기는 잔치다" 변병주 감독은 "홈 경기는 잔칫상을 차려 놓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 "홈 경기는 잔치다" 변병주 감독은 "홈 경기는 잔칫상을 차려 놓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 이성필

살짝 긴장이 풀렸는지 대구는 후반 24분 지난해 11월 광주 상무에서 전역해 올 시즌 초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울산의 이진호에 실점했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어 공격에 나섰고 후반 39분 이근호가 다시 한 번 골포스트를 맞춰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3-1의 완승을 했다.

경기 종료 뒤 대구 서포터들로부터 양동이에 담긴 물을 뒤집어쓰며 승리의 주역으로 인정받은 장남석은 "감독님이 홈 경기는 잔치라고 생각하고 부담감 없이하고 싶은 대로 경기하라고 주문했다"며 변병주식 공격축구에 따른 부담이 전혀 없음을 표현했다.

대기실로 들어가는 선수들에게 본부석의 대구팬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여기저기서 "이런 식으로 계속 경기해달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40대 중반의 대구팬 김영한씨는 "없는 살림에 이 정도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도 너무나 큰 감동이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경기장을 찾았는데 스트레스가 제대로 풀린다"며 "한 골 넣고 걸어잠그는 축구보다 훨씬 좋다"고 변병주 감독의 공격축구를 극찬했다.

김씨는 "부자구단을 상대로 이길 때는 더 기특하다. 무명 집합체의 대구가 6강 플레이오프라도 간다면 정만 큰일"이라고 감탄했다. 경기 전 변병주 감독이 "6강 PO 진입은 우리에게 우승과도 같다"고 표현한 것과 일맥상통한 말이었다. 올 가을 대구가 큰 일을 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경기결과 FROM. 대구스타디움

대구FC 3-1울산 현대(득점-전40초, 36분, 장남석 후18, 문주원 도움:진경선<이상 대구FC>후25, 이진호 도움:우성용<이상 울산 현대>)

대구FC

골키퍼-백민철
수비수-조홍규, 황지윤, 황선필(후35, 양승원)
미드필더-진경선, 문주원(후36, 조형익), 하대성, 백영철
공격수-장남석, 에닝요(후46, 장상원), 이근호

울산 현대

골키퍼-최무림
수비수-김영삼, 유경렬, 박동혁, 현영민(후43, 유호준)
미드필더-염기훈, 오장은, 이상호, 브라질리아(HT, 이세환)
공격수-우성용, 페레이라(HT, 이진우)
대구FC 대구스타디움 변병주 감독 이근호 장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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