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0년 만에 식품으로 인정된 천일염이 염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100년 만에 식품으로 인정된 천일염이 염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김준

관련사진보기



하늘이 주셔야 얻을 수 있다는 천일염
 하늘이 주셔야 얻을 수 있다는 천일염
ⓒ 김준

관련사진보기


태초에 그 곳은 바다였다. 갯벌이었다. 바닷길이 열리는 갯골이었다. 숭어와 망둑어가 펄을 누비고 짱뚱이가 큰 눈망울을 굴리며 놀던 곳이었다. 칠게와 도요새가 숨바꼭질을 하고 농게는 붉은 발을 높이 쳐들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하던 자리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 유목 생활을 청산한 인간들이 하나둘 강과 바다에 모여들던 시절쯤이었을까. 인간은 물과 소금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물들의 뒤를 쫓았을 뿐이다. 본능적으로 소금을 먹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동물들은 소금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리고 물도 찾았을 것이다. 동물들의 자유는 소금과 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간디가 소금 길을 떠났던 것처럼.

인간도 동물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동물 본능을 상실해가던 인간은 매머드의 뒤를 쫓아 소금을 얻었을 것이다. 하나둘 모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물과 나누어 먹던 소금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제 소금을 얻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바닷물을 이용하는 방법, 불을 이용해 증발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방법들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염전이었다.

하늘의 도움을 받고, 땅에 기대어 얻은 선물이 소금이다. 인간의 땀이 약간 섞였을 뿐이다. 바닷물을 가두어 소금을 얻는데 걸리는 시간은 5일이 부족한 한 달이다. 그것도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 인간의 노력으로만 얻을 수 없어 붙여진 이름이 천일염(天日鹽, 굵은 소금)이다.

2008년 3월 28일, 소금이 식품으로 태어난 날

하늘과 땅과 바람이 주신 천일염, 첫 생산을 앞두고 준비 중이다.
 하늘과 땅과 바람이 주신 천일염, 첫 생산을 앞두고 준비 중이다.
ⓒ 김준

관련사진보기



작은 소금알갱이는 소금밭을 배회하다 지쳐 가라앉는다. 어떤 이는 바다를 향한 꿈의 좌절이 만들어낸 눈물이라 했다.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그러나 소금은 지난 40년 동안 철과 구리와 같은 광물이었다.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걸 배추와 섞어 김치를 만들고 오뉴월에 잡은 새우와 섞어 새우젓을 만들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들이다. 맛의 기본이다. 누가 이를 불법식품이라 할 것인가. 법이 그랬다. 늘 법과 현실은 이렇게 괴리되었다.

1907년 인천 주안에서 처음으로 염전을 조성해 천일염 생산에 성공했다. 그 뒤 소래(현 인천시 논현동)와 군자(현 시흥시 정왕동)에 일제강점기 염전이 조성되었다. 1940년대 후반 서남해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염소와 나트륨을 제외한 것들은 모두 불순물로 생각했다. 천일염의 염화나트륨 순도는 80%대로 나머지는 칼슘·마그네슘·칼륨 등 미네랄이다. 이러한 미네랄이 체내에 들어와 하는 역할을 모르던 시기였기에 이를 '불순물'이라 여겼다.

먹는 소금에 불순물이 섞여 있으니 식품이 아니라 '광물'이라 여겼다. 그리고 무려 100년 만에 광물로 규정한 관련법('염관리법')이 개정되었다. 그리하여 식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5일 동안 햇볕과 바람으로 만드는 소금

다행스럽게 3월 28일 천일염이 다시 태어났다. 섬마을에서 소금을 거두고, 청계천에서 자랑스럽게 식품으로 다시 태어남을 선언했다. 이 날을 기념해 전남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에서는 천일염 식품탄생을 기념한 작은 의식을 가졌다. '채렴식'이라는 이 의식은 사실 몇 년 전까지 염전에서 늘 행하던 의례였다.

좋은 소금을 많이 내게 해달고, 소금밭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소금밭에 저수지에 수문에 밥을 놓고 술잔을 올리기도 했다. 고기잡이 어부들이 풍어를 기원하듯 지내는 소금 고사였다. 이튿날 서울 청계천에서도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천일염 명품을 기원하는 축제였다.

식품으로 인정된 첫소금을 내던 달, 염전도 장인도 활짝 웃었다.
 식품으로 인정된 첫소금을 내던 달, 염전도 장인도 활짝 웃었다.
ⓒ 김준

관련사진보기


증도의 소금밭에 장인들이 모였다. 소금이라면 한 마디씩 할 만한 사람들이다. 평생을 소금밭에 묻어온 사람들이다. 새삼스레 '식품이네' '광물이네' 야단법석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성껏 바닷물을 받고 하늘에 빌고 바람을 기다려 소금을 내었던 사람들이다.

욕심 같아서는 '소금 고사'라도 지냈으면 했다. 첫 소금을 거두며 일 년 내내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좋은 소금을 많이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빌고 바람에게 빌 길 원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람들이지만 천직으로 알고 한 눈 팔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장인'이었다. 소금을 만드는 일의 핵심은 '물'이다. 한 달 전부터 바닷물을 갈무리해 물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25일 동안 햇볕과 바람을 기다려야 비로소 작은 소금 알갱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검은색 장판 위에 그림을 그리듯 짠물이 자리를 잡는다. 녀석들은 점심을 먹고 새참을 기다릴 무렵 소금밭에 기학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소금이 오고 있다. 밥상에 오를 소금이 오는 것이다.

100년만에 식품으로 인정받은 천일염

천일염의 생일을 전라남도는 '소금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고 작은 잔치상을 서울 청계천에 마련했다. 천일염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광물에서 식품으로 품격이 달라진 천일염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소금을 찾는 본능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공장에서 소금을 찾고 있다. 미네랄을 모두 거세시킨 '가는 소금'으로 소금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그것이 정말 깨끗하고 몸에 좋은 소금이라고 착각하며 자연이 준 선물을 발로 내차고 자만에 빠진 인간들. 그들을 반기는 것은 현대병, 미네랄 결핍뿐이다.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에 찌든 인간들에게 천일염은 본능을 회복하는 약이다.

광물로 서자 취급을 받던 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되던 3월 28일 태평염전(전남 신안 증도)에서 조촐한 생일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수확한 소금은 옹기에 담겨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금박물관에 전시된다.
 광물로 서자 취급을 받던 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되던 3월 28일 태평염전(전남 신안 증도)에서 조촐한 생일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수확한 소금은 옹기에 담겨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금박물관에 전시된다.
ⓒ 김준

관련사진보기



이제 천일염이 밥상에 오른다. 더 이상 헛간에 숨겨두고 가져올 일이 아니다. 당당하게 부엌 한 켠에 쌓아두고 소중하게 다루며 먹을 일이다. 피자 반 조각의 값을 치르면 몇 년은 잊어버리고 먹을 수 있는 천일염, 이제 좋은 소금을 찾아 제 값주고 먹을 일이다.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은 공짜로 나누어 주는 소금을 봉지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웬 소금인가. 마치 소금이 팔리지 않아 홍보차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품격 높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면 스스로 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얼굴로 서울 시민들을 만나고 싶다면 가치에 맞게 포장도 해야 했다. 그저 폭죽을 올리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천일염이 밥상에 오르지는 않는다.

섬사람들이 여러 대의 버스를 타고 올라와 마련한 자리였다. 귀하다는 '섬초'도 나누어 주고, 함초 소금 등 정성스럽게 만든 기능성 소금들도 선보였다. 대기업의 판촉행사가 아니라 작은 염전을 일구며 평생을 소금을 내며 살아온 사람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도시민들에게 바라노니 부디 그 정성 헤아려 주시길 바랄 뿐이다.

소금이 식품으로 인정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천일염이 3월 29일 서울 청계천으로 나들이 나왔다.
 소금이 식품으로 인정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천일염이 3월 29일 서울 청계천으로 나들이 나왔다.
ⓒ 김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100년 만에 가치를 인정받은 천일염을 찾아 '소금여행'을 떠납니다. 몇 회가 될지 모르지만 사라져가는 염전과 소금명장들을 찾아 나섭니다. 갯벌염전에서 생산하는 천일염(굵은 소금)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시길 바랍니다.



태그:#천일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