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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사람들은 거님길이 아닌 찻길로 달리기 마련입니다. 거님길에서 자전거를 달리면 이 길에서 걷는 사람을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거님길은 파인 데가 많고 울퉁불퉁하고 턱이 많습니다.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과 버스정류장과 갖가지 알림판이며 전봇대며 거치적거리지요. 이리하여 찻길에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는 찻길로 달려야 합니다. 또한 자전거는 찻길에서 달릴 권리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 때면 거님길로 지나고요.

 

그렇지만 찻길에서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자전거한테 찻길 달릴 권리가 없는 듯 여깁니다. 더욱이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은 자꾸만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고속화도로(또는 고속도로)'로만 뚫습니다. 처음부터 자전거가 다니도록 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니, 시골 국도나 지방도로에 시골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도록 하려는 데에는 조금도 마음을 안 기울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꿋꿋하게 자전거를 몹니다. 걷는 사람도 당차게 걷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자전거꾼과 걷는이는 '매캐한 자동차 방귀'와 '바퀴가 닳으며 날리는 고무먼지'와 '자동차에서 내뿜는 열기'를 옴팡 뒤집어씁니다. 찻길을 닦는 데 들어가는 돈은 우리가 낸 세금이건만, 찻길을 누리는 권리나 '나쁜 공기 안 마시고 안전하게 다니는' 권리를 자동차꾼만 누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군수 들이 되면 '관용차'가 나옵니다. 이들이 '서민을 만나거나 언제나 서민 삶과 부대끼'도록 '관용 자전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들한테 '전철 한 해치 정액권'이나 '버스 한 해치 삯'을 주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찻길을 닦고, 교통정책 세우고, 교통순경 두고, 찻길 정비를 하고, 자동차를 저마다 장만해서 다니는 데에는 얼마나 큰돈이 들까요.

 

우리들은 부자이건 부자가 아니건 어디이든 마음껏 움직이거나 찾아갈 권리를 누리면서 맑고 시원한 바람을 쐴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하지 않을는지요. 또한, '왜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하고 자전거꾼보고 '스스로 목숨 내놓고 다닌다'는 말이 아닌, '그래, 우리 모두 안전하고 아늑한 삶터에서 살도록 자전거를 타야겠구나'하는 말을 해야지 싶어요.

 

정치꾼과 공무원부터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장 노동자와 농사꾼도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운동, 진보운동, 정치운동, 통일운동, 교육운동, 문화운동을 하는 이들도 자전거를 타고다녀야 합니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만 자전거를 타서는 우리 삶터와 사회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글쟁이도 그림쟁이도 사진쟁이도 자전거를 타야지요. 종교를 믿는 분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두 다리와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에 매이는 사람한테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책을 읽어 세상을 더욱 넓게 부대끼려는 마음마저 줄어듭니다.

 

 

세상을 느끼고 껴안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로 느긋하게 달리는 사람은 책도 느긋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빠르게만 내달리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쥘 틈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알맞는 때에 알뜰하게 모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그저 자기가 맨앞에서 싱싱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삽니다.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더 빨리 가야만 하기에 타는 자동차가 아니요 자전거가 아닙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흐느적흐느적 걸어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운동 삼아서 자전거를 타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세상을 껴안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땅기운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우리 사는 둘레를 고이 보듬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겨울꽃을 보고 봄꽃을 기다리고 있기에 걷습니다. 겨울눈과 겨울바람, 봄비와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좋기에 걷습니다. 따순 햇볕에 얼굴이며 팔뚝이며 허벅지며 새까맣게 타는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어깨와 다리와 팔과 허리가 내 몸뚱이로구나 느끼기에 걷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처음에는 주르륵 흐르다가 그예 방울로 맺히며 똑똑 떨어지는 짭쪼름한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저는 요즈음 자전거를 통 못 타고 있습니다. 왼어깨와 오른팔꿈치가 꽤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힘겹습니다. 오른손목이 저리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뺑소니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1998년 9월,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때, 새벽일을 마치고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까맣고 큰 차가 뒤에서 제 짐자전거를 쳤습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하늘을 날았고 몇 초쯤 뒤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때 '아, 머리는 깨지면 안 돼'하고 생각하며 오른팔로 머리를 감싸서 머리는 안 깨지고 오른손목이 나갔습니다.

 

2004년 여름, 내리막길에서 짐차 한 대가 제 앞에 확 끼어들었습니다.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서둘러 멈추었다가 차와는 가까스로 안 부딪히고 길바닥에 어깨가 질질질 갈렸습니다. 여섯 달 뒤 비슷하게 들이미는 차 때문에 다시금 뒹굴며 오른팔꿈치가 나갔습니다.

 

한동안 그럭저럭 참으며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어깨를 쓰고 팔을 쓰고 손을 쓸 때마다 뜨끔뜨끔 아픔이. 책만 볼 때는 몰랐던 세상 마음씀이 몸뚱아리 깊숙히 배어듭니다.

 

자전거로 달리며 바라보고 느낀 삶터와 사람 매무새는 책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쉬게 되니 전철이나 버스를 탑니다. 어디 오갈 때 책읽는 시간이 늡니다. 그렇지만 답답합니다. 훌륭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먹으니 즐거웁지만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달별과 못 부대끼니 서운하면서 쓸쓸합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타던 자전거 두 대를 아는 분한테 빌려드렸습니다. 내 몸이 다 낫는 날을 맞이하면 돌려받기로 하고.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책읽기, #자전거, #자전거권, #자전거권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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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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