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섭 기자는 아마추어 복서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입니다. 현재 한 기업의 인재개발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새벽 공기를 가르며…

새벽 공기를 가르며… ⓒ 이충섭



새벽 6시 30분, 3월이지만 눈이 내리기도 했던 쌀쌀한 새벽 공기를 헤치며 신입사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여느 교육 때 같으면 구보나 국민체조를 했겠지만, 이번 신입사원들의 아침 운동은 색다르다. 다름 아닌 '복싱'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부터 P 그룹사 신입사원교육 진행을 맡은 내게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겼다. 신입사원들의 아침운동으로 구보가 아닌 복싱을 가르치겠다고 자청했기 때문이다.

겨울철 아침의 어두운 도로를 달리자면 교통 통제도 해야 하고 살얼음이 있어서 미끄러질 염려도 있으니, 구보 대신 복싱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일단 허락을 받긴 했다. 하지만 과연 200명이 넘는 인원을 혼자서 통제해가며 효과적으로 복싱 훈련이 진행될 수 있을지, 괜히 나선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신입사원들에게 복싱을 가르친다... 성공할까?

새벽 6시부터 연수원 복도가 시끌시끌하더니 건물 앞 광장으로 신입사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안 나오면 벌점이 부여되니까 사실 나오기는 할 테지만, 마지못해 나와서 주먹 쥐는 시늉만 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원래대로 구보를 하리라는 마음도 먹었다.

구보가 아닌 복싱 수업을 하는 목적과 앞으로의 훈련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으로 첫 시간을 열었다. 마이크가 없어서 뒤편 인원들에겐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복싱에는 살기 위해 맨 주먹으로 싸워야만 했던 인간 본연의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리 없는 동작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난 그저 내가 믿는 확신과 열정만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가르쳤다.

교육 첫날부터 눈이 내리고 땅이 어는 등, 날이 예상보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인재개발원 원내에서 간단한 구보로 몸을 푸는 것으로 워밍업을 하자'는 교육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뛰느니 차라리 복싱이 낫겠다고 하던 교육생들이, 복싱을 위해서 뛰자고 하는 것으로 보아 첫날 복싱 수업의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복싱 훈련이 거듭될수록 이전의 구보와는 달리 사원들은 그간 배워온 잽과 원투 동작을 섞어가며 신나게 달렸다. 쌀쌀한 새벽기운도 이들의 열정과 패기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복싱 에어로빅'으로 시작하는 복싱훈련

 "어디를 보는거야? 내 '원투'를 받아랏!"

"어디를 보는거야? 내 '원투'를 받아랏!" ⓒ 이충섭


 붕대감는 법도 배웠지요

붕대감는 법도 배웠지요 ⓒ 이충섭



경쾌한 음악에 맞춰 복싱동작을 응용한 복싱 에어로빅으로 몸을 풀면서 본격적인 복싱훈련이 시작된다. 잽과 원투 스트레이트, 훅과 어퍼컷 등의 공격 기술은 물론 블로킹, 더킹, 위빙 등의 방어 기술까지 배워나갔다. 글러브 없이도 약속된 동작으로 신입사원 동기생과의 1대1 훈련도 가능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휴식 시간에는 복싱 이야기를 통해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복싱 동호인 선배로서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하루 교육 일과를 마친 종례 시간에는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 시합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그간 배웠던 공격과 방어기술이 어떻게 종합적으로 쓰여지는 가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은 물론, 그가 보여준 믿을 수 없는 불굴의 투지를 보면서 앞으로의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 결코 포기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졌다.

어느덧 3주간의 연수 기간이 끝나고, 복싱 수업도 무사히 마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진도가 나갔다. 정식 교육 커리큘럼이 아니어서 교육 효과에 대한 만족도조사 항목에도 빠졌지만, 교육생들은 아래와 같이 복싱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아침운동으로 구보대신 복싱을 배운다는 것 자체만으로 회사의 창의성과 배려심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인가 배우고 목표를 준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교육생 김태규)

"매일매일 식상한 구보가 아니라, 복싱이라는 신선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아침 체조를 통해서 복싱이라는 운동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육생 오래영)

"아침운동으로 했던 복싱이 해병대 훈련에서 아무런 체력부담도 느끼게 해주지 않았다. 요즘은 거울을 보며 잽을 날리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웃곤 한다." (교육생 안경진)

"챔피언은 되는 것보다 지켜내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각자의 회사로 배치를 받아 뿔뿔이 흩어진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회생활 하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 다운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다. 홍수환 선수처럼 바로 일어나서 반격하는 거다."

"뭔가 잘 안 풀릴 때는 '잽잽 원투'를 써라. 기본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챔피언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지켜내는 게 더 중요하다. 롱런하는 챔피언이 되어라."

 원투 시범을 보이고 있는 본인(오른쪽)

원투 시범을 보이고 있는 본인(오른쪽) ⓒ 이충섭


 챔피언이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챔피언이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 이충섭


복싱 신입사원연수 이충섭 인재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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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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