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북한의 맞대결이 결정된 날부터 기대해왔던 평양에서의 '역사적 승부'는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국제축구연맹은 오는 26일 북한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국과 북한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경기를,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중재안을 양측에 보내왔다.

평양에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북한 측 입장에 한국은 이는 정당한 권리라며 맞섰지만, FIFA는 결국 경기 장소를 제3국으로 옮기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편의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FIFA는 경기규정 22조에서 '경기에 앞서 페어플레이기와 양국의 국기가 게양되어야 하고 선수들이 입장하고 나서는 양국의 국가가 연주되어야 한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남북한의 축구 맞대결이 성사되자 축구팬들은 이번 경기를 통해 승리는 물론이고 이른바 '스포츠외교'를 통한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 조성이라는 더 큰 성과물도 함께 기대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FIFA 규정을 무시했다.

한국은 "단순한 친선경기도 아닌데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서로를 인정하고 국기와 국가를 허용하자"고 설득했지만, 북한은 "아리랑을 연주하고 한반도기를 걸자"면서 "왜 갈등을 조장하려고 하느냐"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06 독일월드컵 본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축구팬들

2006 독일월드컵 본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축구팬들 ⓒ 윤현

한국 정부 대표단이 하늘이 아닌 육로로 북한을 방문하고, '문화외교'에 나선 미국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에서는 성조기가 걸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졌지만 북한은 끝내 태극기와 애국가를 거부했다.

FIFA의 문제해결 방식에도 문제점이 많다. FIFA는 제3국 개최라는 중재안만 내놓았을 뿐 규정을 어긴 북한에 대해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그동안 '스포츠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쉴 새 없이 외쳐온 FIFA가 자신들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중간에서 난처해진 FIFA로서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보려는 의도였겠지만 북한에게 불이익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또 다시 스포츠의 순수성이 정치적 논리에 희생되는 일이 일어날 경우 막아낼 방도가 없다.

북한 역시 상대팀의 국기와 국가라는 정당한 권리와 기본적인 규정과 스포츠를 스포츠로 바라보는 순수성마저 인정해주지 못할 바에는 애초에 월드컵 예선 불참은 물론이고 FIFA에 가입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결국 이번 남북한 축구 대결의 평양 경기 무산은 점점 따뜻해져가던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에 다시 찬물을 끼얹고 다가가기 힘든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혹시나'했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상하이에서 경기를 하면 한국 축구팬들의 대규모 원정 응원이 가능해지고 선수들이 열악한 인조잔디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만으로는 '역시나'의 아쉬움을 달래기가 무척 힘들다.

남아공월드컵 태극기 FIFA 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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