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만 관중 시대를 연 K리그 K리그는 지난해 5만 5천의 관중을 기록하는 등 프로스포츠 신기원을 열었다. 방송 중계, 팬, 선수들의 조화가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이후 불미스런 일들이 폭발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수원 삼성과의 경기. 이날 55,397명이 입장했다.

▲ 지난해 5만 관중 시대를 연 K리그 K리그는 지난해 5만 5천의 관중을 기록하는 등 프로스포츠 신기원을 열었다. 방송 중계, 팬, 선수들의 조화가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이후 불미스런 일들이 폭발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수원 삼성과의 경기. 이날 55,397명이 입장했다. ⓒ 이성필


지난해 10월 2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20라운드 대전 시티즌-성남 일화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유성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마침 버스의 출발시각인 세 시에는 오랜만에 지상파를 통해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수원 삼성의 경기 중계가 계획되어 있었다. 일부러 맨 앞자리 표를 구매한 뒤 차에 올라타 승객들의 동정을 살핀 뒤 기사에 한마디 던졌다.

"기사님 3시에 축구중계 하는데 볼 수 있을까요?"
"몇 번에서 하는데요?"
"KBS1입니다."
"국가대표 경기인가 보네."
"…"

드라마가 방영되던 채널에서 축구 중계로 넘어갔다. 괜스레 다른 승객에 미안했지만 여전히 국가대표 중계와 소위 'FC 코리아'에 관심이 몰린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프로축구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터미널을 미끄러지듯이 나가는 동시에 중계가 시작됐다. 경기장 밖의 한라산과 어우러진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의 아름다운 배경은 시청하는 입장에서 직접 가고 싶은 감정이 들 만큼 유혹적이었다.  

살짝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몇 남성 승객이 관심 있게 보고 있었고 한 중년 여성도 TV를 보더니 '김남일', '이운재' 등 국가대표로 익히 알아온 이름과 얼굴이 나오자 관심을 보였다. 이를 감안했는지 중계진은 친절하게 일반 팬들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했다. 카메라 앵글도 일반 팬들이 알 만한 주요 선수를 중심으로 잡아갔다. 축구팬 입장에서는 분명 불만 있는 해설과 화면이었겠지만 지상파 입장에서는 최선의 중계였다. 

그러나 서울 요금소를 지나자 이내 대부분의 승객은 잠이 들었다. 혼자서 양 팀의 슈팅에 소리죽여 감탄사를 날리다 무안해진 나머지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모두 눈이 감겨 있었다.

관람 예절 정착 원년 지난해 K리그는 선수가 TV중계 카메라에 욕설을 하고 관중석에 물병을 던지는 등 어수선함을 겪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런 장면을 다시는 TV중계에 나오지 않기 위해 올해부터 강력한 정책을 펼치기로했다. 물론 일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책도 있지만 개선된 관람 문화가 한 명의 팬을 더 경기장에 그러모을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 관람 예절 정착 원년 지난해 K리그는 선수가 TV중계 카메라에 욕설을 하고 관중석에 물병을 던지는 등 어수선함을 겪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런 장면을 다시는 TV중계에 나오지 않기 위해 올해부터 강력한 정책을 펼치기로했다. 물론 일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책도 있지만 개선된 관람 문화가 한 명의 팬을 더 경기장에 그러모을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 이성필

지난해 7월 피스컵에서 만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튼 원더러스의 팬 다니엘 헤즈먼드씨는 "원정 응원을 갈 때 버스 안에서 종종 다른 팀의 중계를 라디오로 듣고는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 팀의 성적이 좌우되는 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동 중 축구중계 시청(혹은 청취)이 일상적인 일 중 하나임을 설명했다.

헤즈먼드씨의 발언과 버스 안의 풍경이 겹치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직 한국에서 프로축구의 인식도는 26명의 승객 중 한 사람만 관심을 가지고 나머지는 잠드는 구조인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물론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저절로 잠이 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국가대표 경기 중계였다면 과연 모두 잠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금호고속 서울-익산 구간을 운행했던 버스기사 김영식씨는 200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월드컵 때는 대단했다. 승객들 모두 버스 안에서 응원하는 열기로 뜨거웠다. 운전중이라 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참느라 혼났다"고 털어놨다. 국가대표팀 경기 중계에 대한 관심도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례다.

경기종료 5분을 남겨놓고 버스는 유성 터미널에 도착했다. 앉아서 더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야할 곳이 있기에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중계 시작 때 관심을 보였던 중년 여성이 어깨를 쳤다. 그는 "그렇게 재밌어요? 뒤에서 보니깐 막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난리도 아니던데"라며 축구 중계에 빠져들었던 기자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대전에도 프로 축구팀이 있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잘 알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과 월드컵경기장을 갔지만 요즘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축구를 즐길 것 같지 않은 중년 여성이 경기장에 '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나머지 왜 안가냐고 따져(?) 물었다. 흥분한 기자와 달리 차분한 그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경기장에 가서 '욕설'을 배워와 교육차원에서 발길을 끊었다고 말한 뒤 제 갈 길을 갔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경기장에서의 욕설이라면 흥분한 팬들의 고성과 심판을 향한 선수들의 항의에서 터져나오는 것들이 주류인데 제어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자신의 팀이 불리하면 끓어오르는 감정의 폭발을 말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축구팬들은 지상파를 통해 프로축구 중계를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방송사에 요구한다. 그러나 한 자릿수에 머무는 시청률은 '지상파'에서의 중계를 주저하게 한다. 실제 당시 제주-수원 경기의 시청률은 AGB 닐슨 코리아의 조사 기준으로 수도권 지역 3.7%, 전국권 4.3%를 기록했다. AGB 관계자는 "휴일 시청률이 가장 저조한 시간대에서 나름대로 선전한 수치"라고 분석했다.

시청률이 광고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수치라 절대적인 믿음은 금물이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은 프로축구에는 뼈 아프다. 물론 최근 들어 모든 프로스포츠 시청률이 하락세를 겪고 있지만 그동안 외면당해오다 인제야 관심 받고 있는 프로축구의 처지를 생각하면 쓰린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올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관람 문화 향상과 매끄러운 경기를 위해 '경기장 안전 캠페인'과 '페어플레이'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뒤늦은 결정이지만 지난해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보인다. 이 두 문제가 방송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을 생각하면 때로는 유연성을 발휘하더라도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연맹, 팬, 방송사 모두 이익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잘 만들어진 중계 하나가 수천의 팬을 경기장에 모아오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발선에 서 있는 프로축구가 올해는 어떤 장면들로 모두의 기억에 남을지 주목해 볼 일이다. 앞서 만났던 중년의 여성이 다시 자녀와 경기장에 와서 감동을 받고 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2008 K리그 프로축구연맹 방송중계 시청률 서울 월드컵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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