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한 표정의 야구인들 기자회견에 참석한 야구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8개 구단 운영을 간절히 호소했다.

▲ 침통한 표정의 야구인들 기자회견에 참석한 야구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8개 구단 운영을 간절히 호소했다. ⓒ 이호영


"현대를 살리기 위해 선수들이 10억원을 모으겠다. 그 이상도 가능하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www.kpbpa.net, 이하 선수협)가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를 위해 손을 걷어 붙였다. 선수협은 1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주빌딩 1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00만 야구팬 및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상우 총재와 7개 구단 사장단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은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선수협 회장과 나진균 사무총장, 현대 유니콘스 주장인 이숭용을 비롯, 김양경 일구회 회장, 장재철 아마야구지도자연합회 회장이 참석했다. 또한 네이버 카페 '유니콘스에게 희망의 뿔을(cafe.naver.com/again00unicorns)' 운영자 박정현(28)씨와 한국 프로야구 커뮤니티 '파울볼(www.foulball.co.kr)'의 회원 신희진(27)씨도 야구팬의 입장에서 함께 자리했다.

"현대 선수단 만의 문제 아니다"

"8개 구단, 간절히 원합니다." 현대 주장 이숭용은 '7개 구단 운영은 야구계의 위기'라며 이점을 팬들과 KBO 이사회가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8개 구단, 간절히 원합니다." 현대 주장 이숭용은 '7개 구단 운영은 야구계의 위기'라며 이점을 팬들과 KBO 이사회가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호영


프로야구는 지난해부터 경영난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현대 유니콘스 매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려던 KT가 지난 11일 전격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최악의 경우 18년 만에 구단 축소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선수협과 현대 선수단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나진균 총장은 "매각 협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선수협이 나서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팬들께 우리의 입장을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 총장의 간단한 인사로 시작된 기자회견은 곧바로 손민한, 이숭용의 호소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한국 프로야구는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위기를 시작으로 그 동안 쌓아온 야구 역사의 붕괴 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며 "만약 8개 구단에서 7개 구단으로 허리가 잘려나간다면 단순히 현대 선수들을 포함한 관계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문제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또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대량 실업사태도 우려되지만 보다 치명적인 점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땀 흘리는 유소년 선수들이 야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며 "이 경우 지금도 빈약한 아마추어 야구 저변의 붕괴로 야구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기존 구단들의 노력과 희생은 정말 감사하지만 각 구단 사장님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신생 참가기업을 동반자로 여기고 프로야구 창단을 조건 없이 지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으며 "1000만 야구팬들께도 한국 야구가 위기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셨으면 한다"는 말을 끝으로 호소문 낭독을 마쳤다.

"7개 구단 선수들도 10억원 모금으로 고통 나누겠다"

말을 잇지 못하는 손민한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손민한은 7개 구단 선수들이 나서서 현대 야구단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 말을 잇지 못하는 손민한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손민한은 7개 구단 선수들이 나서서 현대 야구단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 이호영

침통한 표정의 관계자들이 호소문을 낭독한 상황도 심금을 울렸지만 정작 기자회견장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선수협이 10억원의 돈을 내겠다는 부분.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손민한은 "선수들이 10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지원, 현대 선수단과 아픔을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금액이 10억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 주장 이숭용도 "지금까지의 저희들 연봉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KBO에 위임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더 많은 인수기업을 찾고 협상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렇게 선수들이 10억원을 추렴한다는 것과 현대 선수단 연봉 위임 선언은 큰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이는 선수들이 현재 프로야구가 맞이한 위기를 절감하고 있으며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도 10억원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KBO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현대를 제외한 7개 구단 선수 341명(신인, 외국인 선수 제외)의 총 연봉은 291억6375만원이었다. 10억원은 이에 약 3.4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07년 일반 근로자의 평균연봉은 3050만원이었다. 이 사람들이 아무 조건없이 105만원을 동료들을 위해 내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341명 중에는 모금 운동에 큰 보탬을 줄 수 없는 저액 연봉선수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7개 구단이 되더라도 실질적 피해는 거의 없는 고액 연봉선수들이 지는 부담은 더 큰 편이다. 30대 중후반부터 노후보장이 되지 않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이유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야구인들은 곧장 서울 강남구 양재동 야구회관에 위치한 KBO 사무실로 달려가 하일성 사무총장에게 선수협의 뜻을 전했다. 이 자리서 선수협은 "선수들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KBO를 적극 지지하며 8개 구단이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기자회견장 주요 질의응답.

- 기자회견까지 한 계기는?
"사실 선수협 내부에서도 고통분담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할 시기가 되었기에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이다. 선수협은 이런 계기를 통해서 야구인 전체가 어려움에 동참해서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곧 있을 이사회에서 8개 구단 체제가 단지 한 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생팀을 창단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작업인지는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 빙그레 이글스가 증명해 줬다. 아마도 과거라서 잊힌 것 같다." (나진균 선수협 사무총장)

- 선수협은 현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1차적인 목표는 8개 구단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KBO, 얼마 전에 포기한 KT 모두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야구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모두 노력하고 있기에 잘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손민한 선수협 회장)

- 10억원 추렴, 어떻게 결정한 것인가?
"전 선수들의 공감대가 있었다. 10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자발적으로도 충분히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10억원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며 그 이상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손민한 선수협 회장)

"지금도 괴롭습니다." 현대 주장 이숭용은 7개 구단 운영 만큼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선수단은 연봉과 관련한 사안을 모두 KBO에 위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지금도 괴롭습니다." 현대 주장 이숭용은 7개 구단 운영 만큼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 선수단은 연봉과 관련한 사안을 모두 KBO에 위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이호영



- 지금 현대 선수들의 심정은 어떤가?
"7개 구단으로 간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하루 빨리 이 일이 잘 마무리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마냥 가슴이 아프다. 1년을 넘게 오다보니 저도 그렇지만 코칭스태프, 프런트 모두 힘들다. (눈물) 팬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이숭용 현대 주장)

- 야구 원로들의 입장은?
"선배 입장에서 정말 착잡하다. 야구 원로들은 지금 야구 저변을 넓히기 위해 구장 인프라 확충 등에 힘쓰고 있다. 지금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프로야구가 가진 문제들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 할 말은 있겠지만 (눈물) 지금은 누구누구를 탓하기 전에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김양경 일구회 회장)

- 팬의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일단 18일에 있을 KBO 이사회에서 부정적인 결과나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야구는 8개 구단으로 유지되길 바란다. 팬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8개 구단 존속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기자 분들이 너무 앞서가는 것 같다. 언론에서 보다 신중한 보도를 통해 이번 문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 (네이버 카페 '유니콘스에게 희망의 뿔을' 운영자 박정현씨)

[미니인터뷰] 현대 유니콘스 외야수 전준호
"관심 가져주시는 팬들께 그저 감사할 뿐"

"후배들이 걱정됩니다." 현대 최고참 선수인 전준호는 후배들이 걱정된다며 8개 구단 유지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 "후배들이 걱정됩니다." 현대 최고참 선수인 전준호는 후배들이 걱정된다며 8개 구단 유지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 이호영



운동선수에게 나이 40은 환갑과 다름없다. 하지만 현대 유니콘스 외야수 전준호(39)에게는 그 말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해 전준호는 121경기에 출장해 3할에 가까운 높은 타율(.296)과 11도루 52득점 40볼넷(45삼진)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한 현대의 최고참 전준호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물론 자타가 공인하는 '백전노장' 전준호도 소속팀 현대가 처한 상황 앞에서는 결코 여유롭지 못했다.

- 선수단 분위기, 뒤숭숭하지 않나요?
"이 문제가 1년을 끌어오면서 선수들도 많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원당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제 고등학교 막 졸업한 후배들이 저를 보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사실 7개 구단으로 갈 경우 이제 곧 은퇴할 저야 괜찮지만 앞날이 창창한 친구들 수십 명이 야구를 그만둬야 합니다. 정말로 너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 이미 3번(농협, STX, KT)이나 야구단 창단이 실패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도 김시진 감독님이 항상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수들이 잘못해서 창단에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사실 이 시점에서 저희 현대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끝까지 KBO를 믿습니다. 그간 인수의사가 있던 기업이 철수한 것도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꼭 8개 구단이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다른 기업이 나서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점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야구팬들께서 현대 구단에 관심을 가지고 8개 구단 유지를 위해 하시는 어떤 방법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항상 팬들이 있기에 선수들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구팬 여러분들, 저희들에게 보여주신 관심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를 마친 전준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전준호는 의심할 것도 없이 "이번 일 잘 해결되면 꼭 다시 인터뷰 하러 가겠습니다"라는 기자의 말이 현실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만큼 지금 현대 선수들이 느끼는 감정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덧붙이는 글 현대 야구단에 대한 궁금증, 제보 받습니다.
http://aprealist.tistory.com
toberealist@nate.com
프로야구 선수협 현대 기자회견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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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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