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철 주심(맨 왼쪽) 지난 1월 목동운동장 K리그 전임심판들의 체력 테스트 현장에서 만난 권종철 심판. 그 옆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이상용, 최광보, 이영철 주심이 트랙을 돌고있다.

▲ 권종철 주심(맨 왼쪽) 지난 1월 목동운동장 K리그 전임심판들의 체력 테스트 현장에서 만난 권종철 심판. 그 옆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이상용, 최광보, 이영철 주심이 트랙을 돌고있다. ⓒ 이성필


"밥이요? 그런 것 할 줄 몰라요. 표현도 잘못하고 대단히 보수적이에요. 외국에도 자주 나가고 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개방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안 그래요. 그래도 애들은 뭐하는지 가게 일은 잘 되는지 먼 곳까지 가서도 전화해서 그런 거 신경 쓰는 것 보면 고맙기도 해요."(권종철 주심의 부인 김경숙씨)

"정말 좋은 심판이죠. 모든 심판들이 닮아야 할 사람이에요. 심판 생활하면서 고생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올해 후배들을 위해서 과감하게 은퇴를 했다는 점도 칭찬하고 싶네요."(김용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

"심판에 입문해서 닮고 싶은 선배들이 몇 분 계신 데 그 중에도 가장 닮고 싶은 선배입니다."(유소년 대회에서 만난 한 3급 심판)

심판을 업으로 삼았던 그는 직업적 특성상, 경기장에서 양 팀 팬들에게 '악당'으로 몰렸다. "정신 차려 심판!", 혹은 "눈떠라!"라는 등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남미의 한 철학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종족은 심판"이라고 했다. 1989년 초등학교 심판을 통해 입문해 19년 동안 생활했던 그는 이 말을 늘 가슴 속에 새기며 욕먹는 생활을 그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일종의 '독기'였던 셈이다.

이 독기가 발판이 됐는지 그는 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 주심으로 참여하며 국내 심판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구자가 됐다. 육상, 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을 했지만 선수로선 빛을 못 봐 뒤늦게 뛰어든 심판 분야에서 최고가 됐다. 이제는 은퇴를 해 욕먹는 생활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권종철(44) 국제심판이다.

인터뷰는 꽤 오래 전에 약속된 것이었지만 그는 너무나 바빴다. 올해도 K리그를 비롯해 AFC 챔피언스리그, 아시안컵, FIFA(국제축구연맹) U-17(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등 다양한 대회에 참가하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고 '은퇴선언'을 하고 나서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욕먹는 것은 심판의 숙명?

동네 아저씨 권종철 주심 심판복과 정장을 벗으면 그도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다.

▲ 동네 아저씨 권종철 주심 심판복과 정장을 벗으면 그도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다. ⓒ 이성필

지난 4일 서울지하철 7호선 증산역 앞에 있는 한 스포츠용품점. 권종철 주심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세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나눴다. 전날 한 스포츠용품업체의 새 축구공 발표 행사에서 정장차림의 그를 봤을 때만 해도 경기장에서 느꼈던 심판 특유의 권위와 깔끔함이 살아 있었지만 허름한 운동복 차림으로 만난 그는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였다.

자연스럽게 올 시즌 유난히 불거졌던 심판 판정에 대한 문제가 대화의 화두가 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헤드세트를 도입해 판정시비를 줄이려고 애쓰면서 서서히 나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아직까지 완벽하진 않다.

"올해가 유독 다른 해보다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1차적으로는 6강 플레이오프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고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올라오는 승강제도 있고요. 이런 이슈들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심판이 중심에 서게 돼 버린 것 같아요. 한 경기 결과에 따라 6강에 올라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돼서 그런 것 같아요."

심판 판정에 대한 문제는 권 주심의 말대로 하루 이틀 나온 문제가 아니다. 프로연맹에서는 심판들을 해외 연수 보내고 외부 강사를 초빙해 선진 축구와 접목시키는 데 노력을 하고 있지만 둘러싸고 있는 외부조건은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지난 9월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는 전광판에 에두-임중용 두 선수가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장면이 반복으로 상영되면서 경기장 분위기가 일순간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경기 뒤에 언론에서는 심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판에 대한 처우가 나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정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팬들 역시 흥분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경기를 봐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더불어 연맹 내에서 심판 조직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판이 선수만큼 보수를 받을 수는 없죠. 명예직이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처우개선은 안 해주고 무조건 잘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예요. 국내축구에서는 이제야 심판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 같더군요.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죠. 욕먹어야 할 때는 먹겠지만 경기가 잘 끝나면 별 얘기 없다가 못 할 때만 손가락질을 해요. 팬들도 생각을 한 단계만 올리셔서 심판을 이해해주려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수, 감독은 물론 심판, 협회, 팬, 언론 심지어는 운동장을 관리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한국 축구의 주인공입니다."

권 주심의 말은 언론과 팬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알려준다. 조금만 잘못해도 심판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자연스럽게 독자인 팬들에게 '국내 심판은 저질'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이는 축구팬들이 경기장에서 심판에 내뱉는 독설로 귀결된다. 예전에 만난 한 심판은 "잘하고 있는데도 나를 향해 욕을 하면 분통이 터져서 깃발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억울할 때도 있죠. 판정이 잘 됐는데 아니라고 한 적도 있으니 말이에요. 심판에 입문했던 초창기에는 상당했죠. 심판 전문가라면 이야기하기 힘든데 말이에요. 그래도 저 개인적으로는 무난하게 넘어간 것 같아요. 심판 생활을 하면서 상벌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네 번 갔는데 내 판정이 전부 맞더군요. 불평불만이나 상대 배려하지 못하는 심판이 출세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자기 자신부터 이겨야죠."

'할리우드 액션'과 심판감독관 부활의 함수관계

권종철 주심과 마케렐레  2005년 수원 삼성-첼시FC의 친선경기에 주심을 봤던 권종철 주심. 그의 가게 탈의실 앞에는 당시 경기 사진이 붙어있다. 그동안 그가 치른 경기 경력을 설명하기도 한다.

▲ 권종철 주심과 마케렐레 2005년 수원 삼성-첼시FC의 친선경기에 주심을 봤던 권종철 주심. 그의 가게 탈의실 앞에는 당시 경기 사진이 붙어있다. 그동안 그가 치른 경기 경력을 설명하기도 한다. ⓒ 이성필

K리그 심판판정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심판을 감독하는 감독관이 없는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기 전체를 감독하는 경기감독관은 있지만 현재 심판감독관은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 감독관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특정 경기에서 논란이 일어나 심판 판정에 무게가 실리면 그것을 책임질 대표자는 없다.

심판감독관이 없어지면서 경기감독관은 모든 것을 전부 봐야 한다. 경기장이 분란에 휩싸이면 직접 그라운드에 내려가서 관장하느라 모든 것을 살피지 못한다. 진행 요원이 있어도 경기 실행, 중단의 권한은 경기감독관의 판단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축구인은 "한 경기에서 경기감독관이 판단한 것과 심판감독관이 판단한 내용이 전혀 다르게 나왔다. 이는 심판감독관이 심판을 감싸고 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위에서 이것을 좋게 봤겠느냐?"라며 "'제 식구 감싸기'가 심판감독 권한을 경기감독관에 흡수당하는 '굴욕'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견해 차이라고 생각해요. 심판 감독관이 없어진 것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부활 못 시키는지 선배들이나 다른 심판들 모두 고심해야 할 부분이고요. 없애기는 쉬운데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아시아 축구연맹에서는 심판 출신 5분의 2, 경기인 출신 5분의 3이 경기감독관을 하고 있어요. 챔피언스리그는 8강부터 심판 감독관을 투입합니다. 모든 경기에 심판 감독관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세세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부활이 필요하다면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북한 못 가본 게 아쉽네요"

권종철 주심은 지난 2일 FA(축구협회)컵 포항 스틸러스-전남 드래곤즈 결승 2차전 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다. 이날 경기 종료 뒤 그는 은퇴 소회를 밝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2002년 남북통일축구대회를 꼽았다. 남과 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르는 경기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조추첨에서 한국은 북한과 만났다.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난 뒤 14년만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예민해요. 북한 심판하고 같이 봐서 알죠. 아직도 생각이 사회구조랑 비슷한 것 같아요. 남한 심판이 보면 우리가 손해 볼 거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0-0으로 비기고 한반도기 흔들고 분위기는 예전에 치렀던 경기들보다는 훨씬 좋았죠."

북한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지난 8월 한국에서 열렸던 U-17세 월드컵 북한 청소년대표팀 김정식 단장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김정식이라고 국제심판 11년을 하고 그만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지난번에 17세 북한 대표팀 단장이 돼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 친구하고는 1997년 말레이시아 심판 세미나에서 만난 뒤 친해졌어요. 나중에 2001년 베이징 유니버시아드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만나고 '형님, 동생' 했죠. 이번에 왔을 때는 제가 행정 업무를 하고 있어서 연락을 못 해서 아쉬웠죠."

"단장이라는 높은 자리로 오니 보기 힘들었다"며 웃는 권 주심은 "옥류관 냉면이 끝내주니 한 번 오시라"는 그의 제의에 "꼭 가겠다"는 대답을 했지만 심판을 그만두면서 갈 기회를 잃었다. 대신 그는 이렇게 김 단장을 향해 말했다.

"은퇴하니 북한과 한 조가 됐네요. 잘하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네요. 뭐 어떻게든 갈 날이 있겠죠. 중국, 일본만 합쳐서 40번을 넘게 갔는데 북한이라고 못 가겠어요?"

덧붙여 권 주심은 2010 남아공 월드컵 3차 예선에 같은 조가 된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정보도 줬다. "1999년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과의 올림픽대표팀 경기 심판을 보러 갔는데 컴퓨터, 캠코더 등 통신장비를 절대로 못 가지고 들어가게 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경기 감독관이라도 가라면 가야죠"

권종철 주심 그도 어떻게 보면 귀여울때가 있다. 지난 1월 체력테스트 현장에서.

▲ 권종철 주심 그도 어떻게 보면 귀여울때가 있다. 지난 1월 체력테스트 현장에서. ⓒ 이성필

알려진 대로 권 주심은 2006년 독일월드컵 최종 후보까지 올랐지만 떨어졌다. 그는 여섯 명의 후보로 압축된 상황에서 2순위 평가를 받아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6순위가 가는 희한한 상황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2003, 2005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주심을 보는 등 가능성이 있었기에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받아들여야지요. 일본이라는 아시아연맹 최대 스폰서를 가진 국가를 못 이겼고, 네 명을 보내겠다는 의도가 갑자기 두 명으로 바뀐 것도 그렇고요."

자연스럽게 심판 행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17세 월드컵 국내 조직위원회 심판지원팀장 경험을 했던 그는 "매번 받기만 하다가 남에게 해주려니 너무나 어려웠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 큰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심판들이 들어오면 마중 나오고 호텔 예약해주고 트레이닝 편리를 제공하는 등의 것들을 받아만 봤지 직접 나가서 연락관 해보니 쉽지가 않더군요. 이번에 FIFA의 규정을 새로 알았는데 트레이닝을 할 때도 평상시에는 경기장에서 15분, 차가 밀려서도 35분 안으로 버스로 이동해 도착해야 하고 인조구장은 절대로 안 된다는 등 새로운 것을 많이 알았어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얻은 경험은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한다. 내년 1월 22~30일 AFC 심판감독관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게 되는 권 주심은 "월드컵 주심은 못 갔지만 다른 후배가 가는데 일조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예전에 비해서는 인프라는 좋아졌어요.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많은데 초등학교 경기에 감독관이라도 가서 하라면 해야죠. 저를 원하는 자리에 가서 일하는 게 순리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K리그를 포함해 한국 축구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유럽에 가면 운동장 내에 감옥이 있어요. 이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그만큼 우리 응원문화는 엄청나게 성숙했고 축구를 보는 수준이 높아졌어요. 자랑스럽죠. 더불어 이제는 일반인들도 모두가 '슛돌이'가 되고 있었어요, 그만큼 축구 할 여건이 날로 좋아지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가면 언젠가 10부리그까지도 만들어지겠죠. 심판의 처우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와 더불어 UAE(아랍에미리트)만 심판 발전 프로그램이 있어요. 발전에 대해 투자를 하고 있는 겁니다. 서로 발전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권종철 주심 K리그 월드컵 주심 심판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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