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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폭포. 원주민들은 폭포의 굉음이 폭포 뒤편 동굴에 살고 있는 괴물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주민들도 지금 나와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악마의 폭포. 원주민들은 폭포의 굉음이 폭포 뒤편 동굴에 살고 있는 괴물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주민들도 지금 나와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을 것 같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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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까지 국경을 넘을 수 없었다

여행 18일 (1월 19일), 리빙스턴 쪽 폭포를 보았으니 국경을 넘어 짐바브웨 쪽 폭포를 보기로 했다. 짐바브웨는 빅토리아 폭포를 관광할 수 있는 도시의 이름은 아예 '빅토리아 폴스'라고 지어버렸다. 대부분 줄여서 '빅폴'이라 부른다.

승합차 기사가 부르는 금액을 절반으로 깎아 4000크와차에 국경까지 가기로 했다. 아저씨 멋쟁이! 절반에 흥정했다고 좋아했는데 옆자리 아줌마는 아무 흥정도 없이 묵묵히 2000크와차만 내고 자리에 앉았다. 금액이 정해져 있었던 거다. 또 속았다.

잠비아 국경을 넘는 일은 수월했다. 버스가 멈추면 창밖의 심사관에게 여권을 내면 된다. 출국카드를 따로 쓰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다. 어차피 버스는 통로까지 사람과 짐들로 꽉 차서 나갈 수 없다. 이 사람들 비자비를 받는 입국수속은 그렇게 꼼꼼히 하더니 나가는 손님은 푸대접이다.

빅토리아 다리. 이 다리는 영국이 남쪽에서 북쪽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종단하려는 의도로 계획된 케이프-카이로 철도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를 오가는 기차와 자동차는 물론 걸어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빅토리아 다리. 이 다리는 영국이 남쪽에서 북쪽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종단하려는 의도로 계획된 케이프-카이로 철도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를 오가는 기차와 자동차는 물론 걸어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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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의 가운데쯤에는 잠베지 계곡으로 떨어지는 번지점프를 하는 곳이 있다. 왼쪽으로는 절벽 아래 구불구불한 협곡 사이로 잠베지강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빅토리아 폭포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는 다리 한가운데서 아찔한 점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짐바브웨 이민국의 분위기는 마치 매표소 같은 느낌이다. 30불의 비자비를 걷는 데만 관심이 있지 얼굴도 보지 않고 도장을 찍어준다. 20년 전만 해도 짐바브웨는 한국 여권으로는 입국이 불가능했었다고 한다. 짐바브웨의 장기 집권자 무가베가 김일성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친했는지 80년대에 북한은 106명의 요원을 이곳에 파견해 무가베의 관저를 경호하는 군인들을 훈련시킬 정도였다. 블라와요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했더니 무가베와 김일성은 친한 친구라고 하면서 짐바브웨에 코리아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아마도 나를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했었나 보다.

짐바브웨 쪽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로 했다. 잠비아 쪽에서 이미 폭포를 봤으니 다시 볼 필요가 뭐 있겠나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잠비아 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마을의 중심에서 20분여분만 걸으면 폭포의 입구가 나온다. 이젠 현지인처럼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간다. 어차피 택시비를 흥정하다 맘이 상하느니 이 방법이 낫다.

'포효하는 연기', 악마의 물기둥에 빨려들다

입구인 국립공원관리소는 갈대와 흙을 이용해서 소박하게 만들었다. 잠비아 쪽 폭포의 입장료는 10달러인데 비해 이곳은 두 배인 20달러나 된다. 6개로 나뉘어 떨어지는 폭포 중 5개가 짐바브웨 쪽에서 볼 수 있으니 그런가 보다.

매표소 안쪽은 우거진 열대림 사이로 샛길이 이어진다. 다가갈수록 점점 커지는 굉음으로 가슴마저 쿵쿵거린다. 오른쪽으로 엄청난 굉음이 들리면서 잠비아 쪽에서도 보았던, 폭포를 바라보는 리빙스턴 동상이 서 있다. 식민지 시절에 세워진 것이라 하는데 왜 아직까지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첫번째 폭포인 악마의 폭포. 잔잔하게 흐르던 잠베지 강이 절벽에서 갑자기 추락한다.
 첫번째 폭포인 악마의 폭포. 잔잔하게 흐르던 잠베지 강이 절벽에서 갑자기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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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 동상 앞에 있는 폭포가 '악마의 폭포'이다. 물안개가 자욱한 돌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이끼까지 끼어있어 자칫 방심하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악마의 폭포'는 이름에 걸맞게 사뭇 위협적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잠베지강이 칼로 단면을 자른 듯 뚝 끊겨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잔잔히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고공낙하를 하는 것이다.

이끼로 뒤덮인 낭떠러지 끝에 서니 물기둥과 함께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물줄기는 물보라로 바뀌어 하늘로 솟구친다. 1855년 리빙스턴의 발길을 이리로 끌어당긴 것도 바로 물기둥이다.

순간 폭포 뒤편 동굴에 살고 있는 괴물이 소리를 지르는 듯한 두려움에 빠졌다. 아마 '포효하는 연기'라고 불렀던 원주민들도 지금 나와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을 것 같다.

폭포의 물안개를 먹고 자라는 식물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책길의 원숭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산책로를 걷고, 나무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폭포의 물안개를 먹고 자라는 식물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책길의 원숭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산책로를 걷고, 나무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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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빙스턴 동상 앞으로 올라오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창한 햇살이 물안개로 젖은 옷을 말려준다. 다음 포인트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원숭이, 줄무늬 망구스 등을 만날 수 있다. 원숭이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산책로를 걷고, 나무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문득 내가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그들 사이에 갇혀 있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악마의 폭포와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메인 폭포의 전망대가 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폭포 소리가 더욱 커지면서 넓고 푸른 잔디 너머로 웅장한 폭포의 모습이 들어왔다. 메인 폭포와 악마의 폭포 사이에는 폭포섬(Cataract Island)이라는 비교적 큰 숲이 경계를 이룬다.

물보라 사이로 보이는 리빙스턴 섬은 카누를 타고 잠베지강을 따라 내려가던 리빙스턴이 폭포를 발견하고 급히 이 섬으로 피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벼랑의 끝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메인폭포. 6개로 나뉘어 떨어지는 폭포 중 가장 크고 수량이 많다. 주변은 폭포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메인폭포. 6개로 나뉘어 떨어지는 폭포 중 가장 크고 수량이 많다. 주변은 폭포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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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폭포주변은 폭포가 솟구쳐 폭우가 내리는 것 같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폭포주변은 폭포가 솟구쳐 폭우가 내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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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샤워부스에 들어가다

메인 폭포는 6개의 폭포 중 가장 폭이 넓고 웅장하다. 세상의 물이 모두 이곳으로 흐르는 것 같다. 커튼 같기도 한 폭포수가 떨어지고 이어서 하얗게 부서지며 솟아오른 물안개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돌풍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폭우를 퍼붓고 있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부딪히는 충격으로 100m 높이의 이곳까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햇빛 쨍쨍한 맑은 날씨. 그런데도 폭포 주변엔 비가 내린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으니 360도 샤워부스인 셈이다. 햇살에 말랐던 옷이 다시 어느새 다 젖어버렸다. 처음에는 물방울 비를 피하려고 우산도 꺼내 써보고 우비도 입어보았다. 그러나 이내 체념하고 오히려 폭포의 샤워를 즐기기로 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마냥 본격적으로 폭포 속에 몸을 던졌다. 빅토리아폭포는 몸으로 볼 수밖에 없는 폭포다. 물안개 때문에 눈으로는 잘 볼 수 없지만, 그전에 몸이 놀라고 신나 한다. 속옷까지 쫄딱 젖고도 미친 사람처럼 폭포수를 맞으며 돌아다녔다.

빅폴을 구경하는 방법! 열대 우림 사이로 나 있는 산책길을 가다가 전망대가 나오면 카메라를 비닐가방에 넣고 마치 샤워장에 들어가듯 폭포에 가까이 간다. 마치 360도 샤워부스처럼 물보라 샤워를 즐기다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공원을 나올 무렵에는 뜨거운 태양 덕분에 머리와 옷이 다 말라버려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빅폴을 구경하는 방법! 열대 우림 사이로 나 있는 산책길을 가다가 전망대가 나오면 카메라를 비닐가방에 넣고 마치 샤워장에 들어가듯 폭포에 가까이 간다. 마치 360도 샤워부스처럼 물보라 샤워를 즐기다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공원을 나올 무렵에는 뜨거운 태양 덕분에 머리와 옷이 다 말라버려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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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쪽 마지막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소용돌이치는 물결에 정신을 놓을 것 같다.
 짐바브웨쪽 마지막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소용돌이치는 물결에 정신을 놓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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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쪽 마지막 전망대는 흔들의자 폭포를 지나 지명조차 위험 지역(Danger Point)이다. 절벽 아래 낭떠러지에는 협곡을 따라 소용돌이치는 물결, 치솟는 물안개가 뒤섞여 있다. 어지럽게 내리꽂히는 폭포의 물줄기는 보는 사람의 영혼마저 빨아들이는 것 같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폭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한 발짝 나아갈수록 폭포의 장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욕심에 앞으로 나가가 보지만 다리가 후들거린다. 휘돌아 나가는 물을 바라보니 정신을 놓을 듯하다. 정신을 차려야지….

이렇게 당할 줄이야!

짐바브웨는 해마다 작게는 100%에서 1000%가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슈퍼에서는 매일 바뀌는 가격표를 다시 붙이는 게 일상화되어있고, 내일이면 오를 물건을 먼저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흔한 모습이다.

폭포의 입장료, 숙소 비용, 레프팅 비용은 모두 달러로 지불하길 원한다. 아니 아예 달러 가격만 쓰여 있다. 하루하루 오르는 물가에 짐바브웨 달러는 가치가 없어진 지 오래다. 보통 2만 달러짜리로 환전해 주는데 우리 돈 10만원이면 지폐를 무려 500장이나 준다.

빅트리까지 가는 왕복 택시 요금은 6400원을 내기 위해 32장을 내야하고, 한국으로 거는 1분의 국제전화는 15장을 내야 했다. 저녁으로 먹은 피자 값은 다섯 사람의 가격을 계산하니 무려 100장이다. 지갑이 아닌 비닐봉투에 돈을 넣어 다니면서 쓸 때마다 몇십 장씩 꺼내는 것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은행에서는 환율을 절반밖에 계산해 주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여행객들은 숙소나 길거리에서 환전을 한다. 우리가 묶는 슈스팅 벡베커에도 환전상 오스카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커다란 그의 가방 안에는 짐바브웨달러가 마치 신문지 뭉치처럼 가득 들어있었다.

짐바브웨달러. 보통 2만 달러짜리 지폐로 환전해 주는데 우리 돈 10만원이면 지폐를 무려 500장이나 준다.
 짐바브웨달러. 보통 2만 달러짜리 지폐로 환전해 주는데 우리 돈 10만원이면 지폐를 무려 500장이나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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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보고, 물안개에 샤워도 하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렇게 어이없게 봉변을 당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잘생긴 한 남자가 접근하더니 환전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환율도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오스카는 500장을 주었는데 자기는 600장을 주겠단다. 아깝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스카에게 넉넉하게 바꿨기 때문에 옆에 있는 언니만 100불 바꾸기로 했다.

그는 한참 동안 돈을 세다가 바꾸어 줄 돈이 약간 모자란다고 하더니 친구를 불렀다. '무슨 환전상이 100불도 없나'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새로운 환전상의 가방 가득 있는 지폐를 보고 안심을 했다.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숙소까지 와서다. 우리가 받은 돈뭉치는 위, 아랫부분에만 2만 달러짜리 돈이 있고, 중간 부분은 500달러짜리 지폐로 채워져 있다. 우리 돈 5원도 안 되는 지폐다. 10만원으로 콜라 1병을 사먹은 셈이다. 오늘 빅폴의 웅장한 느낌은 사기꾼의 한방으로 다 날아갔다.

빅폴 시내. 워톡 가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워톡은 혹멧돼지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라이온킹에서 심바의 친구 워톡으로 등장했다.
 빅폴 시내. 워톡 가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워톡은 혹멧돼지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라이온킹에서 심바의 친구 워톡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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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 #빅폴, #악마의 폭포, #메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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