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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아 폭포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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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6일(1월 17일). 아침 일찍 루사카 국제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아프리카 각 나라로 떠나는 버스와 잠비아 각지로 떠나는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러나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오전 10시가 되어도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 좌석을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제 예약할 땐 짐값까지 다 받았던 매표소 직원은 가격을 깎아주면서까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터득한 한 가지는 버스는 반드시 정원을 꽉 채워야 출발한다는 것이다. 기다리는데 익숙해질 만도 한데 3시간은 너무 한 것 같다. 결국 버스는 출입구 앞의 보조좌석까지 다 채운 오전 10시 30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서너 군데의 정류장에서 내리기도 하고 새로 타기도 한다. 루사카에서 리빙스턴은 470㎞ 떨어져 있다. 버스기사는 5시간이면 달릴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6시간 반이나 걸린 오후 5시에야 리빙스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원래 계획은 도착하는 대로 폭포를 보려 했으나 버스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폭포에 갈 수 없었다. 일정이 또 하루가 미루어졌다. 아프리카 여행…, 기다림과 장거리버스에 익숙해져야 한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라면서... 입구가 왜 이래?

 

리빙스턴은 빅토리아 폭포와 가장 가까운 잠비아 쪽 마을이다. 폭포와 잠베지강을 사이에 두고 짐바브웨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영어 이름은 이 지역을 최초로 탐험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이름을 딴 것이다.

 

리빙스턴은 1904년 잠베지 협곡에 처음으로 다리가 세워졌을 때부터 오랜 기간 빅토리아 폭포 지역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짐바브웨가 폭포 가까이 마을을 만들고, 국립공원을 조성하였고, 외국의 자본으로 최신의 호텔과 각종 편의시설이 세워지면서 그 중심이 바뀌게 되었다. 짐바브웨는 마을 이름도 아예 빅토리아 폭포(줄여서 빅폴이라 부른다)라고 지어버렸다.

 

게다가 빅폴은 아프리카 각지를 연결하는 공항도 가까이 있고, 시내에서 폭포까지 걸어서 가도 될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이 짐바브웨 쪽을 찾는다. 이에 리빙스턴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지만 힘든 경제 사정 때문에 개발에 전력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행 17일째(1월 18일) 빅토리아 폭포를 만나기 위해 새벽같이 숙소를 나섰다. 로컬버스 터미널에서 흥정을 하고 미니버스를 탔다. 아프리카의 여느 버스와 마찬가지로 버스 안은 사람들이 시루떡처럼 끼여서 달린다.
 
몇몇 정류장을 지나 공터에 버스를 세웠는데 그 곳이 폭포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표지판은 물론 길도 제대로 없다. 멀리서 폭포의 소리가 들렸다. 폭포의 물줄기 소리라기보다 땅이 무너지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가니 그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이른 아침이라 다른 관광객도 없는데, 가끔씩 개코원숭이는 불쑥불쑥 나타나서 내 손에 든 빵 봉지를 노리고, 쿵쿵거리는 폭포의 배경음까지 깔려서 탐험대장 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 같다.

 

새벽 6시에 문을 연다고 쓰여있는데 입장료를 받는 직원도 없다. 공짜 입장의 유혹에 눈치를 보고 있는데 멀리서 직원이 뛰어오고 있다. 기다렸으니 입장료를 깎아달라고 했더니 반으로 깎아준다. 깎으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다. 세계 3대 폭포가 뭐 이래?

 

'모시 오야 퉁야'가 더 멋있지 않아?

 

입구를 들어서니 폭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리빙스턴의 동상이 서 있다. 1855년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처음 보게 된 것도 이 곳 잠비아 쪽에서였다.
 

리빙스턴은 잠베지강을 따라 내려가며 남아프리카로 가는 루트를 찾던 중이었다. 잠잠하던 잠베지강의 물살이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이 빨라지자 리빙스턴 일행은 카누를 가까스로 작은 섬에 정박시켰다. 그는 이 섬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리빙스턴 섬'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눈앞에서 산불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거대한 물안개를 보았다. 원주민이 일컫는 대로 '천둥소리 나는 안개'에 매료된 그는 폭포의 이름을 당시 영국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음해 귀국하여 출간한 책 <선교여행과 남아프리카에서의 연구>에서 그는 폭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20분간 항해한 끝에 우리는 '포효하는 연기'라고 불리는 물안개의 기둥을 발견했다. 거대한 기둥은 구름과 닿아있는 듯했다. 밑동이 흰 물안개 기둥은 위로 올라갈수록 색깔이 차츰 짙어졌기 때문에 땅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기둥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주변의 큰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리빙스턴이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폭포를 본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최초의 발견자는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 폭포는 오랜 시간동안 원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다.

 

이미 폭포는 원주민들이 부르는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 오야 퉁야 (Mosi oa Tunya)'라는 멋진 이름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폭포는 안보이고 워낙 유수량이 많다 보니 천둥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막연히 천둥치는 연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오래 전부터 티베트 사람들에 의해 '세계의 여신'이라는 뜻의 '초모룽마'로 불리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자야, 무섭게 생겨서 고마워

 

 

 

리빙스턴이 사자의 습격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나일강의 수원을 찾기 위해 탐험에 나선 리빙스턴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그는 칼라하리 사막 근처의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마을에는 사자 떼가 우리를 부수고 들어가서 암소를 잡아먹는 습격이 계속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자를 잡는 사냥을 나갔는데 리빙스턴도 따라나갔다.

 

사자 한 마리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사자는 그를 덮쳐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두 앞발로 어깨를 움켜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사자가 어깨를 잡고 흔드는 순간 나는 몽환인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공포심도 느끼지 못했다."

 

마을 사람 두 명이 제 때 사자에게 총을 쏜 덕분에 리빙스턴은 목숨을 건졌지만, 그는 한쪽 팔이 심하게 부서져서 이후 한쪽 팔을 위로 들 수 없었다. 후에 그가 아프리카의 한 시골마을에서 외롭게 죽었을 때에도 그 어깨 상처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후세 사람들은 사자의 공격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는 리빙스턴의 일화를 예로 들어 그의 용맹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극심한 공포는 통증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너무 무서울 때는 옆에서 누가 꼬집어도 모른다. 도망가다가 넘어졌을 때 너무 아프면 빨리 도망갈 수 없다. 하지만 공포를 느끼면 공포는 오히려 무릎에 신경쓰지 않고 도망을 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공포는 오히려 우리의 몸을 보호하고 위험에서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자에 물린 리빙스턴이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가 비범해서가 아니다. 사자가 수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을 것이고, 도망가려 했지만 진한 사자의 냄새로 급작스런 공포에 휩싸였다. 이 때 포효하는 사자의 소리는 그의 통증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리빙스턴이 어깨를 물리고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사자의 공격에도 담담하고, 용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포효하면서 자신을 공격한 사자의 행동과 요란한 울음소리에 리빙스턴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이로 인해 통증 자극이 뇌로 들어오는 경로가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무섭게 덮친 사자가 리빙스턴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배려를 해준 셈인가? 무섭게 생긴 사자에게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잠비아 쪽 폭포를 찾는 까닭은?

 

리빙스턴 동상을 기점으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건너편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가는 칼날 경로(Knife Edge Track)를 따라가면 폭포의 측면을 볼 수 있다.

 

6개로 나뉘어 떨어지는 빅토리아 폭포 중에서 잠비아 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동쪽 폭포' 하나 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잠비아 쪽 폭포를 찾는 이유는 폭포의 위쪽만 볼 수 있는 짐바브웨 쪽에 비해 비스듬하게 형성된 계곡 덕분에 폭포의 측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폭포는 아래가 내려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량을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물은 장마철 불어난 강물을 방류하는 댐에 선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폭포의 물줄기는 물보라로 바뀌어 하늘로 솟구치면서 주변에 마치 소나기처럼 물을 뿌린다. 게다가 폭포의 굉음은 귓속까지 멍하게 만들었다. 마치 나 자신이 폭포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속옷은 물론 가방 속까지 몽땅 젖었다.

 

어느새 절벽의 끝에 섰다. 반대쪽 절벽에는 짐바브웨 쪽 전망대에 서 있는 관광객들이 손을 흔든다. 그러고 보니 세계 3대 폭포는 공통점이 있다. 세 폭포가 모두 국경선 상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에 놓여있다.

 

계곡의 아래쪽으로 '물 끓는 지점(Boiling Pot Point)'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가 이곳에 모여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수심은 200m에 이른다. 


폭포의 물방울들이 열대우림을 이루고

 

폭포 주변은 울창한 숲과 희귀식물로 가득했다. 폭포로부터 날아오는 물방울이 때론 안개비처럼 때론 폭우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주변과 달리 열대우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오밥나무와 소시지나무 등 지금까지 발견된 식물만 400종이 넘고 원숭이를 비롯한 온갖 동물들이 몰려들어 아프리카 습지의 밀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현지인들은 이렇게 울창한 밀림 속에 폭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특히 빅토리아 폭포는 아래쪽 강폭이 50~70m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림이 우거진 반대쪽 낭떠러지에서만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폭포는 안보이고 천둥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막연히 '천둥 치는 연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태그:#아프리카, #빅토리아폭포, #리빙스턴, #잠비아, #모시오야퉁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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