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자살소동> 포스터

<판타스틱 자살소동> 포스터 ⓒ (주)인디스토리, MBC

합승 자동차를 말하는 ‘옴니버스(Omnibus)’는 원래 라틴어 ‘만인을 위한’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옴니버스 영화의 묘미는 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옴니버스 영화는 서너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관객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하지만 감독·배우·제작진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일만은 아니다. 한 영화가 런닝타임이 대부분 120분이라면 서너 편의 영화가 할당받는 시간은 많아야 30분이다. 30분 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그들에게는 오히려 압박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옴니버스 영화는 관객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계속 제작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재미있는 주제를 가지고 세 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판타스틱 자살소동>이 나왔다.

<판타스틱 자살소동>은 박수영, 조창호, 김성호 세 감독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영화로 ‘자살’을 소재로 세 편의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암흑 속의 세 사람>(연출 박수영)은 여고생의 자살이야기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다 잠이 든 여고생(한아름)은 늦잠을 잔 탓에 시험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을 비관한 여고생은 자살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멀쩡하게 살아나고 그녀의 주변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양호 선생(김가연)이 사랑을 고백해오고, 학교를 폭파시키겠다는 남학생(타블로), 학생 주임은 자신을 누군가가 죽이려 한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 <날아라 닭>(연출 조창호)은 자살하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경찰(김남진)이 주인공. 하지만 자살하기 직전 괴한들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고 그들과 대치하는데 총알은 세 발뿐. 선택의 기로에 빠진 경찰의 모습이 등장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 <해피 버스데이>(연출 김성호)는 생일을 맞은 게이 할아버지 춘봉(정재진)이 주인공. 친구들 중 누구도 자신의 생일을 알아주지 않자 여행을 떠난 그는 여행길에서 악당들에게 쫓기는 청년 필립(강인형)을 만난다. 그는 그  청년 대신 자신이 죽어주기로 결심하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세 편의 영화 모두 제목에서 언급한 ‘판타스틱’을 의식해서 인지,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영화는 스스로 재미있는 구석을 찾게 된다. 우선 여고생이 자살했음에도 멀쩡하게 살아나고 바닷가에 뛰어든 할아버지가 유령처럼 해변에 기어오르는 등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이 지루할 겨를이 없도록 차근차근 풀어간다.

사실상 영화의 소재는 굉장히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이란 소재가 가벼울 수 없고, 자살을 선택하는 그들의 인생은 더욱 무겁다. 영화 속에서 춘봉이 “넌 죽는 게 무섭지 않니?”라고 필립에게 묻자 그는 “난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대답한다.

이처럼 그들이 선택하는 자살은 분명 삶이 주는 무게가 죽음보다 무거웠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절대적으로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환상의 사이를 오가면서 영화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덜 수 있었다.

또한, 판타스틱한 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는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한 상상력이 관객에 허를 찌르고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세 편 모두 공통의 소재인 ‘자살’을 다루면서 무언의 합의를 한 듯 보인다.

바로 ‘자살’이란 소재를 그리지만 그것을 무겁거나 절망스럽게 그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영화는 상당히 유쾌하게 진행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자살’이란 소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출연진들 또한 밀도 있는 연기력을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김남진이 닭의 울음소리와 정면대결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으로 ‘김남진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일취월장한 모습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유쾌한 자살소동극을 보여준 <판타스틱 자살소동>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삶의 무게가 죽음보다 무겁다고 인정하면서도 절망스럽게 그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써 ‘자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2% 정도 부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암흑 속의 세 사람>은 재미있는 설정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구성에서 관객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고, <해피버스데이>는 TV단막극에서나 보던 노인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선보여 다소 식상함이 느껴진다.

즉 기발한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의존해 구성과 스토리텔링은 늘 보던 식의 진행이라 관객들은 반짝 웃고, 반짝 충격을 받고는 곧바로 식상하다는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판타스틱 대소동>이다.

판타스틱 자살소동 옴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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