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팀 팬들이건 응원팀이 너무나 아쉬운 패배를 당하거나 때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을 때 "내년에는 누구누구가 돌아오니깐, 부상에서 회복하니깐 그때 두고 보자"며 분함을 속으로 삭이고는 한다. 이런 경우는 주로 하위권으로 성적이 썩 좋지 않은 팀들의 팬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거론되는 이름, 지금은 비록 없지만 한때 그들에게 꿈을 주었던 그런 이름, 이른바 '믿는 구석'들이다.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대전제가 기본이 돼야 하겠지만 돌아오기만 한다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것만 같은 그런 이름, 옥죄던 숨통이 트일 것만 같은 그런 이름, 그런 선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동현의 라이벌이 오승환?

 이동현은 2002년 LG 트윈스의 날개였다.

이동현은 2002년 LG 트윈스의 날개였다. ⓒ LG 트윈스


2002년 이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하위 팀 LG 트윈스 팬들에게도 그런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이동현이라는 투수다. 이 이름이 생소하거나 조금 혼동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마운드에서 사라진 지가 3년이 넘어가고 있으며 KIA 타이거즈에도 동명의 투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LG의 이동현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투수 오승환(삼성)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 두 명은 경기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리고 한때는 라이벌로 거론하기에도 무리가 있던 그런 동창이었다. '오승환의 라이벌로 이동현'이 아니라 '이동현의 라이벌로 오승환'을 거론하기가 힘들었단 이야기다. 믿기 힘들지만 당시에 이동현은 그런 선수였다.

이동현은 경기고 에이스 투수였다. 경기고는 2000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국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었는데 당시 이동현은 에이스 투수로 또 중심타선으로 팀 우승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초고교급 선수였던 이동현은 당연하게도 연고팀인 LG 트윈스에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을 했다. 시속 140km가 훌쩍 넘는 빠른 강속구와 제구력을 겸비했던 이동현은 프로 입단 후 당시 LG의 사령탑이었던 '투수 조련사' 김성근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 하게 된다. 데뷔 첫 해 33게임에 출장을 하며 프로에 적응하기 시작한 이동현은 2년차였던 2002년 8승 3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언뜻 보면 그저 꽤 준수한 성적을 거둔 중간계투 투수의 성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동현이 2002년 등판한 게임이 78게임이었고 투구한 이닝은 124.2이닝이었다. 당시 규정이닝이 131이닝이었으니 6.1이닝만 더 던졌으면 이동현은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평균자책점 2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

당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투수는 삼성의 외국인 투수 엘비라(2.50)와 한화의 송진우(2.99) 단 두 명뿐이었다. 또한 그해 이동현이 등판했던 78게임은 두산의 이혜천과 함께 시즌 최다 등판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동현의 2002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한 가지가 더 있다. 2002년은 LG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시즌이었다. 그런데 당시 LG의 선발 투수들 가운데 최다승은 장문석(현 KIA)이 거둔 10승이었고 그 다음이 외국인 투수 만자니오가 거둔 8승이었다. 10승 투수 단 한 명만을 가지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상훈과 2년차 새내기 이동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기적이었다. 이동현은 선발진이 약한 팀의 구원투수답게 그해 참 부지런히도 마운드에 올랐다. 이동현은 2002년 선발로도 두 번을 마운드에 올라왔다.

2002년 이동현은 LG 팬들의 미래였으며 보물과도 같았다. 지금도 이동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2002년 이동현이 보여주었던 팀을 구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비록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팬들에게 이동현은 '에이스'였다.

이동현은 여전히 신화 속의 주인공이다

이동현은 김성근 감독이 떠나고 이광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3년 선발로 전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동현은 더 이상 그때의 이동현이 아니었다. 시즌 내내 부상이 따라다녔다. 2003년 이동현은 시즌 내내 손가락·다리·눈·팔꿈치까지 쉴 틈 없이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2003년 이동현은 4승 10패 평균자책점 4.05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2004년 이순철 감독 체제에서 다시 구원으로 돌아간 이동현은 8월까지 1승 3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2.87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그해 8월 25일 이후로 마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이동현이 2004년 8월 25일 문학 SK전 8회말 무사 1,2루에서 구원등판 한 뒤 후속타자 채종범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바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에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동현은 다음날 선발 등판이 예고된 투수였지만 그 이후 다시는 1군 마운드에 서지를 못하고 있다. 부상을 당한 이동현은 병역 문제까지 겹치면서 3년여를 마운드에서 떠나 있어야 했다.

이동현이 떠나 있는 사이 LG는 하위권의 나락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고 이동현은 어느새 LG 팬들의 '믿는 구석'이 돼버렸다. 왠지 이동현만 돌아오면 도저히 맞춰지지 않았던 그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운드를 떠난 지 3년이 넘어가는 이동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우규민 혼자 마무리를 맡아서 고군분투 했던 올해도 우규민이 가끔 지쳐서 난타를 당하기라도 하면 팬들은 이동현을 떠올렸다. '그래 이동현만 돌아오면 우규민 혼자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팬들은 그렇게 굳게 믿고 또 한해를 보냈다. 사실 이동현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다만 건강하게 돌아오지 못했을 뿐. 분명 이동현은 LG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돌아온 이동현이 사실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한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동현만 돌아오면, 2002년 그 시절 이동현만 돌아오면 LG의 뒷문은 이제 걱정 없다'고 허풍을 떤다. 어쩌면 LG 팬들도 이동현이 다시는 그때처럼 쌩쌩하게 공을 던지지는 못할 거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함께 넘겨준 의리 때문일까. 여전히 이동현은 신화 속의 주인공이다.

지난 30일 미국 앨라배마 스포츠메디슨에서 정밀검진을 받기 위해 이동현이 박명환과 함께 출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동현은 올해 초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팔꿈치 통증이 재발해 마운드에 서지를 못했었다.

검진 결과에 따라 이동현은 내년에도 마운드에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벌써 4년째 마운드에 서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LG 팬들은 그래도 '믿는 구석' 이동현을 기다릴 것이다. 그들에게 이동현은 기다려야 할 의무가 있는 그런 선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이동현이 예전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그래도 LG 팬들의 '믿는 구석' 이동현이 다시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통쾌하게 보여주기 바란다. 한 번쯤은 그런 멋진 일들도 일어나야 살맛나는 세상이 아닐까.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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