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전 결승타의 주인공 김재현

5차전 결승타의 주인공 김재현 ⓒ 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 김재현이 또 해냈다. 27일 5차전 0-0의 살얼음같은 승부가 이어지던 8회 무사 2루의 기회에서 결승 3루타를 때려낸 것. 3차전에서 3번 타자로 선발 출장, 5타수 2안타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그는 4차전서는 솔로포 포함 5타수 2안타로 맹활약했다.


이번 한국시리즈 들어 '가을의 전설'로 우뚝 선 그를 보며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있던 지난날의 김재현을 떠올렸다.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있던 그날의 김재현


김재현은 LG 트윈스의 중심 타자였다. 1994년 19살의 고졸신인 김재현은 그 이전엔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고졸신인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그해 LG 트윈스를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팬들은 김재현의 빠르고 경쾌한 스윙에 매료되었다. 때로는 'LG의 김재현'이 아닌 '김재현의 LG'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김재현은 LG 최고의 인기스타로 커 나갔다. 필자 역시 김재현의 스윙에 매료되었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영원한 '호타 준족'의 강타자로 남아있을 줄만 알았던 김재현은 뜻하지 않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쓰러지게 된다. 김재현은 2002년 6월19일 SK 와이번스와의 인천 원정경기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김재현이나 팬들이나 모두가 그저 단순한 타박상 정도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김재현의 고관절이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 다리와 골반을 잇는 관절이 썩어가고 있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이제 더 이상 김재현은 빠르게 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달리는 것은 고사하고 다시는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그렇게 김재현은 2002년 시즌 중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LG는 기적같이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2002년 11월 11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6차전. 5회까지 삼성과 LG는 긴장의 고삐를 한 순간도 놓을 수 없을 만큼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6회초, 엘지는 조인성의 적시타로 5대5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주자 두 명이 루상에 나가 있는 절호의 역전 기회를 맞았다. 그리고 타석에는 그해 시즌 중 전력에서 이탈했던 김재현이 대타로 들어섰다.


대수술을 앞두고 있던 김재현은 야구 선수로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타석에 들어섰다. 김재현은 상대투수 노장진의 공을 받아쳐 좌중간 펜스까지 굴러가는 큼지막한 2타점짜리 역전타를 때려냈다. 그러나 김재현은 뛸 수가 없었다. 절뚝절뚝거리며 간신히 1루를 밝은 김재현은 2루는 아예 포기한 채 '그래도 난 해냈노라'며 마치 42.195km 마라톤 완주를 한 것 마냥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김재현은 그날 그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픈 응어리가 되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김재현은 수술 후 아무도 믿지 못했던 기적 같은 재기에 성공했지만 '부상이 재발하면 구단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각서 파기를 FA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거절당하자 LG를 떠나 현 소속팀 SK와 FA 계약을 맺고 이적을 했다. 김재현은 그렇게 떠나보내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 2002년 가을 그 아픈 모습만 남겨 둔 채 떠나가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가끔 SK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김재현을 바라보면 아직도 가슴속 어딘가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날이 생각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대타가 아닌 당당한 주전으로 타석에 들어선 김재현이 안타를 치고 1루를 돌아 시원하게 2루로 내달리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가슴 한쪽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날의 김재현을 놓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김재현을 놓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양 팀의 주장인 김원형(SK)과 홍성흔(두산)이 화해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 다행스럽게도 3차전 이후 더 이상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양 팀의 주장인 김원형(SK)과 홍성흔(두산)이 화해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 다행스럽게도 3차전 이후 더 이상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 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가 27일 잠실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에 4-0 승리를 거두며 2연패 뒤 3연승이라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전극에 한 발 더 다가섰다. 7회까지 0-0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8회 초 SK의 공격에서 승부가 갈렸다.


8회초 SK의 선두타자 조동화가 두산의 투수 임태훈의 4구째를 받아쳐 2루수 앞 내야안타와 이어지는 실책에 편승해 무사 2루라는 황금찬스를 만들어냈다. 이미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양 팀의 강력한 구원 투수들을 감안한다면 8회 무사 2루의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든 귀중한 기회였다. 타석에는 4차전에서 리오스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내는 등 한국시리즈에서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던 3번 타자 김재현이 들어섰다.


초구로 볼을 던진 임태훈이 두 번째 공을 힘차게 뿌렸고 김재현의 짧게 쥔 방망이가 바람을 가르듯 빠르게 돌아갔다. 공은 잠실구장 우측 펜스를 직접 맞힐 정도로 크게 뻗어나갔다. 2루 주자 조동화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선취득점에 성공을 했다. 이날 양 팀을 통 털어 첫 번째 나온 득점이었다. 그리고 김재현은 1루를 돌아 2루를 밟고 3루까지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100M 육상선수와도 같이 힘차게 아주 힘차게...


김재현은 3루타를 때려냈다. 김재현의 타점은 그대로 결승점이 됐으며 SK는 한국시리즈 2연패 뒤 3연승이라는 놀라운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날 김재현은 정말 힘차게 달렸다. 마치 이제는 그만 아픈 기억에서 자신을 놓아달라는 듯 그렇게 힘차게 내달렸다. 이제 그날의 김재현을 놓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엉켜 있던 그런 이름... 김재현을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2007.10.27 19:08 ⓒ 2007 OhmyNews
김재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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