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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에서 내려다 본 전주 한옥마을.
 오목대에서 내려다 본 전주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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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천 년이 넘는 ‘완전의 땅’ 전주의 역사와 기운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전주 한옥마을. 그곳에서는 다시 천 년의 전통으로 이어질 문화와 예술이 매우 느리게 무르익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걸음이 바빠서는 그 오묘한 정취를 놓치기 십상이다. 낮은 하늘 선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주는 여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만 그곳에 녹아있는 기개의 역사와 기품 있는 문화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평온해 보이는 이 기와집 마을, 이곳의 형성과정에서도 전주인들의 기개를 확인할 수 있다. 옛 전주부성 남동쪽에 자리한 이곳은 20세기 초 성내를 점유해오는 일본인들의 ‘꼴’이 보기 싫어 성 밖 가까운 곳에 ‘우리들만의 터’를 잡는다고 기와집을 지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6,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모여 살았으니 전주의 문화 예술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앙에 보이는 것이 중앙초등학교. 그 옆 나무숲 뒤쪽으로 경기전이 있다.
▲ 전주 한옥마을 전경 중앙에 보이는 것이 중앙초등학교. 그 옆 나무숲 뒤쪽으로 경기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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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라고 풍운의 역사가 없었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보기 좋다!”는 말 한마디에 영광의(?) 개발금지구역이 된 이곳은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주거문화에 밀려 졸지에 ‘전주에서 민원이 가장 많은’ 슬럼가로 전락하고 만다. 그 덕에 ‘새마을운동’ 식의 서구화 파고를 피해갈 수 있었고 다시 그 덕으로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통문화마을로 거듭날 수 있었으니, 이 짧은 기간에 겪은 숱한 역사의 반전, 그 아이러니의 묘미를 생각하면 ‘천천히!’는 당연한 화두였을 것이다.   

쉬리가 헤엄치고 있는 세계적 도시생태 하천. 그 옆으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전주천변 억새 쉬리가 헤엄치고 있는 세계적 도시생태 하천. 그 옆으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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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둘러싼 예사롭지 않은 품새도 여유와 기품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 마을 남쪽으로는 이 지역의 중요한 젖줄 전주천이 흐른다. 지금은 쉬리가 살 정도로 깨끗한 도심 생태하천으로 거듭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동학농민혁명 등 이 고장을 중심으로 진행된 숱한 역사적 사건을 지켜본 입 무거운 증인이기도 하다.

이성계가 잔치를 벌였음직한 곳에 오목대라는 누각을 세웠는데 그 현판은 석전 황욱선생이 쓴 것이다. 한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는 고종 친필의 비가 서 있으며 최근 멋스러운 산책로가 조성되어 연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 오목대 이성계가 잔치를 벌였음직한 곳에 오목대라는 누각을 세웠는데 그 현판은 석전 황욱선생이 쓴 것이다. 한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는 고종 친필의 비가 서 있으며 최근 멋스러운 산책로가 조성되어 연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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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편에는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한때 청소년들 ‘비행’의 우범지역이기도 했던 이곳에도 이성계와 정몽주, 이완용과 전동성당에 관련된 역사가 묻혀있다. 전주 이씨가 발흥했다는 발이산(發李山) 끝자락인 이 동산은 그 기운을 차단하고 싶은 일제에 의해 전라선 철도의 명분으로 댕강, 본류와 끊기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오동나무가 있어 오목대(梧木臺)라 불리는 이곳은 오얏나무가 있었다는 이목대(李木臺)와 남원행 도로에 차단되어 서로 다른 바람을 맞고 있다.

'태조황제유허비'를 모신 비각 앞에 임옥상 화백, 김사인 시인, 건축가 승효상 등 '문화우리'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서있다.
▲ 오목대 비각 '태조황제유허비'를 모신 비각 앞에 임옥상 화백, 김사인 시인, 건축가 승효상 등 '문화우리'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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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가 중바위(僧岩山). 그 깊고 너른 골짜기에는 ‘문화강국’을 꿈꾸었던 후백제 견훤의 한이 서려 있다. 그 빗겨 너머에 세계 유일의 동정부부 순교자를 모신 치명자 성당이 있고 그 서쪽 사면에 전주를 동쪽에서 굳게 지켜주는 동고사(東固寺)가 자리하고 있다. 그 아래에 전주팔경의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淸煙)을 자랑하는 한벽루가 있다.

평지에 있기 때문에 대성전 뒤에 위치한 명륜당, 대성전보다 크지 않게 하기 위해 전면 3칸으로 했지만 활용도를 고려하여 옆으로 달아낸 모습이 이채롭다. 한옥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한문공부 교실로 활용되고 있는 이 명륜당 앞에 정희성, 민영, 천양희, 박남준 시인 등 작가회의 회원들이 앉아 있다.
▲ 전주 향교의 명륜당 평지에 있기 때문에 대성전 뒤에 위치한 명륜당, 대성전보다 크지 않게 하기 위해 전면 3칸으로 했지만 활용도를 고려하여 옆으로 달아낸 모습이 이채롭다. 한옥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한문공부 교실로 활용되고 있는 이 명륜당 앞에 정희성, 민영, 천양희, 박남준 시인 등 작가회의 회원들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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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는 지금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릴 듯한 전주향교가 교육입국의 꿈을 북돋아주려는 듯 단아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찾는 이들을 반긴다. 특히 이곳에는 대성전, 명륜당 말고 성인들의 아버지를 모신 계성전(啓聖殿)이 있어 다른 향교와는 사뭇 다른 규모와 권위를 보여주고 있다.

태조어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 정자각.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경기전에는 많은 귀중 유물들이 예산을 핑계로 방치되어 있다.
▲ 경기전 태조어진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 정자각.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경기전에는 많은 귀중 유물들이 예산을 핑계로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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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반부의 역사를 지켜낸 전주사고의 모습이 노란 은행잎 뒤로 보인다.
▲ 전주사고 조선 전반부의 역사를 지켜낸 전주사고의 모습이 노란 은행잎 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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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서쪽은 옛 전주부성자리로 이어진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은 그 의젓하고 웅장한 기품에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곳이다. 그 곁에는 숱한 병화 속에서 역사를 지켜낸 전주인들의 기개를 확인할 수 있는 전주사고가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마저 불타버렸다면 조선전기의 방대한 역사는 암흑 속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경기전에서 바라 본 전동성당. 한옥 담장과 서양 건축양식이 근사한 '퓨전'을 자아내고 있다.
▲ 전동성당 경기전에서 바라 본 전동성당. 한옥 담장과 서양 건축양식이 근사한 '퓨전'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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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화를 상징하는 경기전 맞은편에는 서양문화를 대변해주는 전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포근하면서도 화려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풍이 가미된 이 건물은 치명(致命)의 숭고함을 웅변하면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정부부 등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당한 곳에 세워진 전동성당. 지금은 수리중이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없지만 조만간 치명의 숭고한 뜻을 탁월한 건축예술로 승화시킨 장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 전동성당내부 동정부부 등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당한 곳에 세워진 전동성당. 지금은 수리중이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없지만 조만간 치명의 숭고한 뜻을 탁월한 건축예술로 승화시킨 장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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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풍성한 역사로 둘러싸여 있는 전주 한옥마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민속촌과 같은 박제의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터전이라는 점이다. 골목골목마다 애환의 한숨과 웃음소리가 낮은 돌담 넘어 가득하다. 그 중간 중간에 우리 전통문화를 갈고 닦는 장인들의 땀 냄새가 배어있다.

명창 부부가 명창 아들과 더불어 소리공부에 여념이 없는 소리청이 있고 천 년 한지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뚝심과 이를 공예로 꽃피우기 위해 손 닳는 줄 모르는 열정이 있어 찾는 이의 넋과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김일구, 김영자 명창이 살고 있는 '온고을 소리청'은 텔레비전 드라마 <단팥빵>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정동채 전 장관, 김완주 전 시장, 이광철 의원 등이 <단팥빵> 출연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온고을 소리청 김일구, 김영자 명창이 살고 있는 '온고을 소리청'은 텔레비전 드라마 <단팥빵>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정동채 전 장관, 김완주 전 시장, 이광철 의원 등이 <단팥빵> 출연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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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냄새 벗 삼아 목각에 여념이 없는 이도 있고 차의 향취에 취해 거의 신도가 되어버린 이도 이 정겨운 한옥마을에는 하나 둘이 아니다.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고는 도저히 이곳의 정취를 그 겉치레나마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전통문화에 취한 몸을 구들 따스한 한옥에 뉘일 일이다.

다도와 전통예절 체험을 겸할 수 있는 숙소가 있으며, 마당이 좋아 거의 매일 저녁 작은 음악회로 투숙객을 잠 못 들게 하는 참으로 근사한 한옥도 있다. 대청마루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는 당당한 기와집도 있어 세월에 지친 우리들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녹여준다.

단오날 화전놀이에 참여한 전국의 다인(茶人)들과 일반 참여자들을 위한  비빔밥 비비기. 경기전 수복정에서.
▲ 비빔밥 단오날 화전놀이에 참여한 전국의 다인(茶人)들과 일반 참여자들을 위한 비빔밥 비비기. 경기전 수복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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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걸으며 그 오밀조밀 다정한 맛을 필히 느껴볼 일이다. 그래도 찌뿌드드하면 사상의학으로 참살이를 꿈꾸는 한방문화센터를 찾을 일이요, 조금 가뿐해진 마음으로 최명희문학관이나 강암서예관을 들러보는 것도 ‘강추’라 할 수 있다.

단오날을 맞이하여 화전놀이 겸 다도체험을 하고 있는 시민들.
▲ 화전놀이 단오날을 맞이하여 화전놀이 겸 다도체험을 하고 있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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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삶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는 각종 먹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담백하면서도 정갈한 전주백반, 오묘한 비빔의 조화로 세계가 주목하는 참살이의 전주비빔밥, 애주가들의 속을 달래주는 콩나물국밥, 바람 시원한 한벽루의 오모가리, 옛 향수를 자극하는 칼국수, 그리고 막 땅기는 막걸리와 싸고 풍성한 가맥 등도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 마을 곳곳에서 우리들 미각을 유혹하고 있다.

'완전의 땅'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간담회, 토론회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옥 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
▲ 간담회 '완전의 땅'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간담회, 토론회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옥 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서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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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옥마을은 미완의 터다. 완전을 꿈꾸며 느리게 무르익어갈 뿐이다. 급하게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줍은 새색시 같아 진정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를 보여주지 않는다.

귀를 열고 추임새라도 보태려는 마음, 차의 더딘 향에 취할 수 있는 여유, 손수 비빔밥을 만들고 한지로 손거울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자세가 있어야 그 은밀한 매력을 나눠가질 수 있다. 말하자면 ‘준비된’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태그:#한옥마을,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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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마이유스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살기좋은 전주의 모습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는 음악편지도 연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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