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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대표적인 역사유적 도시 베로나에서 운명의 두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덕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아름다운 도시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숙명과도 같은 사랑과 그로 인한 때 이른 죽음이라는 비극의 흡인력이 그만큼 강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과 죽음의 성격은 매우 다릅니다. 하나가 일편단심의 순정에 의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랑이란 법도 규칙도 모르는 길들지 않은 새와 같은 것이라며 괜한 사람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여인'의 바람기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들 삶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정도가 없는가 봅니다.

그래서일까 그들을 기리는 방법도 판이합니다. 그 하나가 아무 연고도 없는 집을 젊은 연인이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줄리엣의 집'이라 꾸미고 동상까지 세워 전 세계 연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검투사들의 결투장이었던 원형경기장에 대형무대를 설치하고 매혹적인 춤과 노래로 오페라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까지 유혹하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What Is a Youth" (노래 - Bruno Filippini/ 작사 - Eugen Walter/ 작곡 - Nino Rota/ 감독 - Franco Zeffirelli/ 로미오 - Leonard Whiting/ 줄리엣 - Olivia Hussey)

셰익스피어의 말 한마디로 베로나는 일찍이 '사랑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여인들의 비밀스러운 사랑 고백 장소인 '줄리엣의 발코니'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 <레터 투 줄리엣>에서처럼 지금도 숱한 전설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 곁에 순전히 관광을 목적으로 해서 세운 동상의 가슴은 사랑의 성취를 기원하는 숱한 사람들의 손길로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른 부부의 손까지 이끌고 있으니 '이야기말하기'의 마력을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년 여름 유명한 '아레나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원형경기장이 있습니다. 그 주변 광장에는 축제에 쓰일 대형 무대가 관광객들의 사진기를 먼저 끌어들입니다. 야외에서 별을 보며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 감격스럽지만 유혈의 격투장이 예술무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줍니다.

처음 아레나에서의 오페라 공연은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그때의 <아이다>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매년 개최하게 됩니다. 붉은 빛이 도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레나는 특히 뛰어난 음향설계로 유명합니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한 사람씩 촛불을 켜들고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데 그 모습부터가 마법의 세계로 이끄는 듯 환상적입니다.

그곳에서 치명적인 집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올해의 오페라 축제는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에 대한 '존경의 형태'로 펼쳐졌습니다. 저녁 반주로 이미 흥을 돋웠던, 오페라에 문외한인 우리들조차 사로잡은 비제의 이 <카르멘> 또한 그가 연출한 작품입니다. 그는 1968년 당시 십대의 올리비아 핫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올려놓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세계의 연인으로 다시 빚어낸 두 여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번 결혼기념 여행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음악을 올립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도회 장면에서 광대 레오나르도가 부른 <젊음이란 무엇인가>와 아레나 공연장에서 제가 직접 녹화한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2010. 8. 12. 베로나의 아레나/ 연출 - Franco Zeffirelli/ 카르멘 - Luciana D'Intino)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는 니노 로타 작곡의 첫 번째 노래는 의미심장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카스토라토와 같은 독특한 음색으로 오랫동안 영화음악의 전형으로 칭송받고 있는 곡입니다. 정열의 여인 카르멘이 붉은 꽃을 들고 순진한 호세를 유혹하면서 부르는 독특한 춤곡 리듬의 <하바네라> 또한 유혹하고 싶은 여인들이나 유혹당하고 싶은 남정네의 가슴을 가리지 않고 뒤흔드는 매혹적인 아리아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이 곡 들으시며 사랑의 옛 추억에 잠시 잠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카르멘과 같은 여인 기다리지는 마시고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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