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덮어 보지만… 비가 워낙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구장 관리인들의 '응급조치'도 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 흙을 덮어 보지만… 비가 워낙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구장 관리인들의 '응급조치'도 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 이호영


프로야구에서는 경기 도중  많은 비가 내릴 경우, 20~30분간 경기를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본다. 직접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려야 하고, 우천 순연되면 이후 일정에 차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비에는 가급적 경기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물론 부득이 할 때는 경기를 연기하기도 한다.

우천 순연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기도 있다. 7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2007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그랬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에 전국체전까지 해야 하는데...

최종전 보고 싶은데. 최종전을 보러온 관중들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KIA가 최하위에 머물렀고 많은 비가 왔음에도 불구 몇몇 팬들은 경기장을 찾았다.

▲ 최종전 보고 싶은데. 최종전을 보러온 관중들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KIA가 최하위에 머물렀고 많은 비가 왔음에도 불구 몇몇 팬들은 경기장을 찾았다. ⓒ 이호영


이 경기는 1회초 한화의 공격이 끝나고 1회말에 접어들면서 많은 비로 인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관계자와 관중들은 비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갈수록 강도가 더해졌다.

그렇다고 섣불리 경기를 연기 할 수도 없었다. 방문 팀인 한화가 삼성 라이온즈와 9일부터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가뜩이나 잦은 비로 많은 경기가 미뤄졌다. 예년 같으면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야할 10월까지 정규 시즌이 이어졌기 때문에 일정 연기는 더욱 어려웠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난제가 있었다. 바로 광주구장이 제88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의 무대였던 것. 올해 전국체전은 하필이면 8일부터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광주구장은 대회가 열리는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한 사정들 속에서 경기를 연기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포스트시즌 일정과 전국체전에 적잖은 지장을 초래할 수 있었다. 보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던 이유다.

결론은 '무기한 연기', 1982년 이후 두 번째

비야 그쳐라! 구장 관리인들이 홈 베이스 주변에 고인 물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많은 비에 바로 우천 순연이 이뤄지는 프로야구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광경이다.

▲ 비야 그쳐라! 구장 관리인들이 홈 베이스 주변에 고인 물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많은 비에 바로 우천 순연이 이뤄지는 프로야구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광경이다. ⓒ 이호영


경기가 멈춘 지 30분 정도가 지나도 비는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베이스 주변에는 물이 흥건히 고이며 경기를 하는데 큰 장애물이 됐다.

그래도 무작정 하루 연기를 할 수는 없다보니 관계자들은 경기를 강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계속 상황을 지켜봤다. 어떻게든 경기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운동장 흙을 고르는 도구와 빗자루로 물을 빼내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도 쏟아지는 비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늘은 안 되겠네요. 경기는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취소됐다. 구장 관리인들의 노고도 빛을 보지 못했다.

▲ 오늘은 안 되겠네요. 경기는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취소됐다. 구장 관리인들의 노고도 빛을 보지 못했다. ⓒ 이호영


결국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시간을 넘게 기다린 이 경기를 두고 전격 취소 결정을 내렸다. 또한 '무기한 연기'라는 대책도 내놓았다. 여기에는 정규시즌 한 경기로 포스트시즌과 전국체전에 차질을 빚을 수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방침에 따라 KIA 구단은 입장권을 구입한 관중들에게 환불조치를 취했다. 연기 된 경기는 한화가 포스트 시즌 경기를 모두 치른후, 다시 편성 하기로 했다.

경기가 이어지길 기대했던 관중들은 이 조치로 서둘러 경기장을 떠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팀은 비록 8위에 그쳤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나섰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관중은 "도저히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1시간이나 기다려 줬으니 그걸로 됐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일부 만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취소 결정은 신중한 판단 속에서 이뤄져 관중들을 어느 정도 고려한 처사였다는 뜻이다.

한화는 자신들이 입장이 충분히 배려된 이번 결정에 환영했다. 비록 주력 선수는 대전에 남았지만 8일에 경기를 강행할 경우 자칫 휴식일 없이 포스트시즌에 돌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KIA는 최종전을 끝내고 휴식을 통해 최하위에 머무른 팀을 정비해야 하는데 정규시즌 한 경기가 나중에 열리게 되어 일정에 다소 차질을 빚게 됐다.

광주에서 전국체전 열립니다. 8일부터 광주에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가 열린다. 이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무등경기장 축구장에 붙어 있다.

▲ 광주에서 전국체전 열립니다. 8일부터 광주에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가 열린다. 이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무등경기장 축구장에 붙어 있다. ⓒ 이호영


KBO의 발표에 의하면 25년 전인 1982년에 포스트시즌 이후 순연된 정규시즌 경기가 개최된 전례가 있다. 당시 10월 6일과 7일, 그리고 14일에 5일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가운데 미룬 정규시즌 경기가 치러졌다.

한편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정규시즌 비로 연기된 경기가 아예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경기가 지구 우승이나 와일드카드(양대 리그 지구 2위 팀 가운데 최고 승률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제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 정규시즌 162경기를 굳이 채우지 않는다.

지난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우천 순연 경기를 합의하에 치르지 않고 161경기로 시즌을 마감한 것이 좋은 예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aprealist.tistory.com
프로야구 우천순연 KIA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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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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