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타격 3관왕." 최형우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 "나도 타격 3관왕." 최형우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 김효은



프로야구에서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을 달성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투수는 지속적인 양질의 투구가 이어질 경우 각종 타이틀을 같이 따낼 수 있는 반면 타자는 약간 다르다. 장타력(홈런)과 정확성(타율)을 겸비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다.

실제로 장타를 의식적으로 노리는 거포들이 많은 안타를 양산하는 교타자들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타점도 뛰어난 출루능력을 지닌 선수들이 앞에 많이 들어서야 유리하기에 타자 개인의 능력과는 별개의 요소가 상당 부분 작용한다.

지난해는 이렇게 힘들다는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이대호(25)다. 이대호는 지난해 타율(.336)과 홈런(26개), 타점(88개) 타이틀을 모두 가져가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22년 만에 나온 진기록이었다.

올해도 프로야구에서는 타격 3관왕이 나왔다. 하지만 그 무대는 조금 다르다. 텅 빈 관중석에서 1군 진입의 희망을 키워가는 2군 리그에서 나온 기록이기 때문. 그 주인공인 최형우(24·경찰청)를 2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에 있는 경찰청 야구단 숙소에서 만났다.

정확히는 '타격 3관왕'이 아니라 '타격 7관왕'

지난 18일 대전구장에서는 2007 프로야구 상무 야구단과 한화 이글스 간 2군 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3-2 상무의 승리였다. 이상하게도 이 경기 결과는 경찰청 야구단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미 9일 정규시즌을 마친 경찰청에서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내막은 이렇다. 상무의 박석민(22)이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어 최형우의 타격 3관왕 확정이 불투명했던 것. 다행스럽게도 박석민은 타점을 하나 추가하는데 그쳐 결국 최형우의 타격 3관왕이 확정됐다.

최형우는 올 시즌 프로야구 2군 북부리그에서 전 경기인 84경기에 출장 .391의 높은 타율과 22홈런 76타점을 올려 타격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비록 많은 팬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2군 리그에서 달성한 기록이지만 타이틀을 모두 가져가기 어려운 타격 3관왕의 속성을 떠올려 본다면 그 가치는 결코 폄하할 수 없다.

정현발 경찰청 수석코치(54)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 코치는 “최형우의 타격 3관왕은 비록 2군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큰 의미가 있다”며 제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정 수석코치는 “타격 3관왕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6관왕, 아니 7관왕이다. 안타(128개), 2루타(41개), 득점(72개), 장타율(.731)이 모두 독보적인 1위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로 최형우가 기록한 타격 3관왕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최형우의 반응은 담담하다.

“특별한 소감은 없고요. 그냥 좋죠. (웃음)”

무엇이 그를 '타격 3관왕'으로 만들었나


지난해만 하더라도 최형우는 .344의 타율과 11홈런 44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만을 보인 선수였다. 그러나 1년 사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2군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 정 코치는 이런 최형우의 기량 향상을 타격 자세의 변화에서 찾고 있었다.

"선수들 실력이 많이 늘었죠." 정현발 수석코치는 최형우를 비롯한 선수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목표의식이 뚜렷한 것이 기량 향상의 가장 큰 이유라는 진단도 내놓았다.

▲ "선수들 실력이 많이 늘었죠." 정현발 수석코치는 최형우를 비롯한 선수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목표의식이 뚜렷한 것이 기량 향상의 가장 큰 이유라는 진단도 내놓았다. ⓒ 김효은


“원래부터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인데 평소 어깨가 처지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양쪽 어깨가 수평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번트를 댈 때도 불안한 자세가 이어졌다. 이럴 경우 공을 강하게 때리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어깨가 수평을 유지하는 등 바른 타격자세를 취하도록 지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심하게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말로만 조언을 했고 이론을 설명해줬다. ‘한꺼번에 마스터 할 생각은 하지 말고 인식만 하고 있어라’고 말해줬다. 조금씩 변화를 주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바른 자세를 유지하게 됐다. 잘 맞은 직선 타구의 빈도도 늘어났다. 성적의 향상도 여기서 출발했다.”

김용철 경찰청 감독(50)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형우는 타격에 센스가 있고 타자로서 빠른 배트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다. 하지만 좋지 못한 자세가 있어 의식적으로 좌익수 쪽으로 밀어치는 연습을 시켰다. 본인도 누구보다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공을 보다 정확하게 때릴 수 있게 됐다. 코칭스태프는 그저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형우의 성적 향상은 선수 본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저 수비 위치만 바꿨을 뿐인데...

최형우는 각종 기사와 프로필에 포수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형우는 정작 경찰청에서 포수로 뛴 적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한 2, 3경기 정도 뛰었을 걸요. 나머지는 전부 외야수(우익수)로 뛰었어요. 지명타자로 나선 적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최형우는 경찰청 입단 전까지 포수로서 뛰어왔다. 경찰청에서도 포수로 기용하기 위해 선발된 선수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수비력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정 코치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형우는 좋은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포수로서 정확성 있는 송구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송구에 대한 질책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선수들이 어렸을 때 실수를 통해 심한 얼차려 등을 받게 되면 위축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예 수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 보자는 취지에서 외야수 전향을 고려했다. 상당한 모험이 따랐지만 외야수로서 송구능력은 훌륭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마도 수비 부담이 줄어들어 타자로서의 능력이 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형우도 “평소 수비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수비 훈련에 치중하고 있고, 타격은 정 코치님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 수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며 약점 보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24년의 야구인생에도 '굴곡' 있었다

밝은 미래만 있을 것 최형우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고 있었다. 경찰청을 떠나 프로야구로의 복귀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 밝은 미래만 있을 것 최형우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고 있었다. 경찰청을 떠나 프로야구로의 복귀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 김효은


2002년 최형우는 2차 6순위 지명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던 것.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것이다.

야구선수로서 ‘사형선고’와도 같은 방출소식에 최형우는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경찰청 야구단이었다.

“처음에는 제 자신에게 화도 났고 비록 2군이지만 곧잘 쳤는데 방출돼 속상하기도 했죠. 그렇다고 딱히 갈 데는 없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마침 군 문제도 해결해야 해서 더 힘들었습니다. 그저 그때는 야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최형우는 그때의 긴박감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경찰청에 입단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죠. 민감한 부분이긴 한데 운동선수가 일반 군대에 가면 기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들이 오히려 다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든 것 같습니다. (웃음)”

김 감독도 최형우의 변화에 대해 인정했다. 김 감독은 다음과 같이 의미있는 얘기를 건넸다.

“그전까지는 형우가 좀 안이하게 해왔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방출과 경찰청 입단을 거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야구 편하게 하면 안 되겠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의식의 전환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내년 1월 17일 전역 예정인 최형우는 현재 몇몇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팀은 원 소속팀인 삼성이라는 후문이다.

“어느 팀에서 뛰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체중 조절을 비롯 몸 관리를 철저히 해서 전역 후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찰청 입단으로 한 층 더 성숙해진 최형우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의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aprealist.tistory.com
최형우 타격 3관왕 경찰청 정현발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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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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