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과 알리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전성기의 타이슨과 효도르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격투기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이어질 논쟁거리다. 복서 알리와 프로레슬러 이노키의 맞대결에서는 알리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시종일관 누워서 다리를 걸려고 했던 이노키의 전략으로 인해 해프닝으로 끝난 적도 있다.

지난 9월 1일(토) 서울 서초동 국제복싱클럽 (관장 임조순)에서 이런 궁금증을 확실히 해소 시켜줄 만한 흥미로운 대결이 있었다. 이종격투기 수퍼코리안3팀과 KBC가 추천한 록키체육관팀 간의 단체전 6경기가 3분 2라운드 방식으로 열렸다.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복싱타격기술 훈련의 일환으로 복싱룰로 진행되는 대신, 복싱선수가 10kg 이상의 핸디캡을 갖고 붙은 경기여서 승부의 향방은 예측하기 힘들었고, 초반부터 한 치의 양보 없이 불꽃 튀는 타격전으로 시작되었다.

수퍼코리안3팀 맨 앞부터 왼쪽 순으로 이용학, 황정현, 이은용, 안상일, 이창섭, 이형석 선수.

▲ 수퍼코리안3팀 맨 앞부터 왼쪽 순으로 이용학, 황정현, 이은용, 안상일, 이창섭, 이형석 선수. ⓒ 이충섭


복싱팀(전원 록키체육관 소속) 오른쪽부터 이재성, 강기준, 이종석, 엄정식, 이호준 선수.

▲ 복싱팀(전원 록키체육관 소속) 오른쪽부터 이재성, 강기준, 이종석, 엄정식, 이호준 선수. ⓒ 이충섭


시합전 마주선 양팀 선수들 이재성 선수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 시합전 마주선 양팀 선수들 이재성 선수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 이충섭


[제 1경기] 이재성 vs 황정현

첫 경기에 복싱팀 대표로 나선 현 수퍼밴텀급(55.34kg) 한국 챔프 이재성 선수는 평소 체중 61kg를 감안하더라도, 12kg나 무거운 황정현 선수와의 대결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복싱의 현란한 손기술과 스텝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저돌적인 황정현 선수의 러시에 물러서지 않고 초반부터 불꽃 튀는 타격전을 벌였다. 체중 차이로 인해 다운은 없었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다양한 각도에서 주먹을 뻗어 때리는 복싱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4체급(12kg 차이)이나 무거운 선수를 상대로도 화끈한 경기를 벌이는 모습에서 이재성 선수가 왜 천재복서라 불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재성 선수의 다양하고 정확한 가격 장면. 제 1경기

▲ 이재성 선수의 다양하고 정확한 가격 장면. 제 1경기 ⓒ 이충섭


[제 2경기] 엄정식 vs 이형석

웰터급(66.56kg) 랭킹 3위의 엄정식 선수는 최근 사우스포(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자세)로 전향한 상태에서 왼손 이형석 선수를 만났다. 흔치 않은 사우스포 끼리의 맞대결. 역시 시작부터 타격전으로 일관했다.

똑 같은 롱훅이라도 임팩트시에 휘어져 들어가는 각도가 나와줘야 하는 것이 훅 기술의 관건이다. 낚시바늘(hook)처럼 휘어져서 낚아챈다고 해서 훅이라고 명명된 것도 그 때문이다. 훅 기술의 차이에서 엄정식 선수가 이형석 선수를 일방적으로 압도했다.

빨간 헤드기어가 엄정식 선수, 파란색이 이형석 선수. 제 2경기 모습

▲ 빨간 헤드기어가 엄정식 선수, 파란색이 이형석 선수. 제 2경기 모습 ⓒ 이충섭


[제 3경기] 강기준 vs 안상일

지난해 신인왕 웰터급 4강에 올랐던 67kg의 강기준 선수와 안상일 선수의 대결은 양 선수모두 힘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거친 몸싸움과 타격전으로 진행되었다. 역시 정확히 가격하는 유효타면에서 강기준 선수의 우세였지만, 안상일 선수는 전체 선수 중 가장 저돌적이고 투지가 넘치는 선수로 꼽을 만 했다.

파란색이 안상일 선수, 빨간색 강기준 선수. 제 3경기 모습

▲ 파란색이 안상일 선수, 빨간색 강기준 선수. 제 3경기 모습 ⓒ 이충섭


경기 후 강기준 선수와 안상일 선수 열심히 운동한 흔적이 역력한 두 선수의 멋진 모습.

▲ 경기 후 강기준 선수와 안상일 선수 열심히 운동한 흔적이 역력한 두 선수의 멋진 모습. ⓒ 이충섭


[제 4경기] 이호준 vs 이은용

신인왕전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중인 미들급 이호준 선수는 아직 전적도 없는 아마추어 선수였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내면서 냉정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상대인 이은용 선수는 경기 후 복싱선수들이 가장 복싱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 지목했던 선수였다. 앞서 벌어진 세 경기가 타격전이었는데 반해 아웃복싱(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효한 타격을 노리는 기술)의 전형을 보여준 경기였다.

왼쪽이 이은용선수, 오른쪽이 이호준 선수 이은용 선수의 중심이 너무 뒤쪽에 있어서 효과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 왼쪽이 이은용선수, 오른쪽이 이호준 선수 이은용 선수의 중심이 너무 뒤쪽에 있어서 효과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 이충섭


[제 5경기] 이종석 vs 이창섭

작년도 신인왕전에 출전했다가 1회전에서 탈락했던 이종석 선수와 이창섭 선수의 경기는 헤비급 경기답게 육중한 펀치가 오갔다. 역시 난타전. 하지만 이종석 선수는 연습부족, 이창섭 선수는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할만한 기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종석 선수는 신장의 우위를 살려 경기를 주도하는 움직임과 효과적인 복부공격이 아쉬웠고, 이창섭 선수는 체력적인 문제로 공격 후 한숨을 돌리며 서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시급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제 6경기] 이호준, 강기준 vs 이용학

복싱팀에는 선수가 5명에 헤비급은 이종석 선수 단 한 명뿐이어서, 이미 경기를 뛴 이호준 선수와 강기준 선수가 번갈아 1라운드씩 경기했다. 이용학 선수는 사진에서 보듯이 중심을 뒤에 두고 공격을 하기 때문에 펀치력이 떨어졌고, 앞서 경기한 선수들과는 달리 저돌적인 대시(dash)마저 없었다. 2라운드에 나선 강기준 선수의 현란한 공격으로 인해 그로기 상태(심한 타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일)까지 갔다.

제 5,6 경기 모습 아래쪽 왼쪽 사진에서 이호준 선수의 효과적인 블로킹 장면과 중심이 뒤로 빠진 상태에서 주먹을 내는 이용학 선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 제 5,6 경기 모습 아래쪽 왼쪽 사진에서 이호준 선수의 효과적인 블로킹 장면과 중심이 뒤로 빠진 상태에서 주먹을 내는 이용학 선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 이충섭


경기를 종합한 결과, 역시 6경기 모두 복싱이 우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복싱룰로 진행된 경기였다. 복싱기술 습득을 위해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힘든 도전을 자청한 것이다. 복싱 선수들은 하나같이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저돌적인 대시와 투지를 높이 샀다.

복신선수들은 이종격투기 선수들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밖으로 크게 돌아서 나오는 주먹의 엄청난 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앞으로만 돌진해 공격하고 뒤로 물러나서 피하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덕킹(ducking, 밑으로 빠져 나옴)·위빙(weaving, 상대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윗몸을 앞으로 숙이고 머리와 윗몸을 좌우로 흔드는 기술)·사이드 스텝핑(side stepping, 발을 움직여서 상대편의 타격을 피하는 방어) 등의 방어기술과 연결된 공격기술을 마스터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전했다.

이날의 MVP 강기준 선수 두 경기를 뛰면서도 힘과 기량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강기준 선수.

▲ 이날의 MVP 강기준 선수 두 경기를 뛰면서도 힘과 기량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강기준 선수. ⓒ 이충섭


승부를 떠나서 예상과는 달리 불꽃 튀는 타격전이 전개된 모습을 보면서, 왜 복싱의 인기가 하락하고 퇴조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김득구 선수의 14라운드 사망 이후 12라운드로 짧아지면서, 화끈한 타격전보다는 치고 빠지는 펜싱스타일로 전환되었다. 완주 하는 것이 쉬워져서 애초부터 완주(판정승)만을 목표로 경기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졌던 메이웨더와 호야의 경기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어느덧 친구가 되어버린 황정현, 이재성 선수 작고 가벼운 이재성 선수의 기량은 과연 높이 살만하다.

▲ 어느덧 친구가 되어버린 황정현, 이재성 선수 작고 가벼운 이재성 선수의 기량은 과연 높이 살만하다. ⓒ 이충섭


복싱선수들이 이종격투기 선수들에게 한가지 당부 한 것은 시합에 임하는 자세이다. 수퍼코리안팀 선수 중 일부는 경기가 잘 안 풀리자 가드를 내리고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어울리지 않는 쇼맨십을 보이기도 했다. 이 경기는 훈련의 일환으로 복싱 선수들의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 어렵게 마련된 값진 시간이었다.

좀 더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 또한 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 아닐까 충고하고 싶다. 어려운 경기, 부담되는 경기에 도전한 양팀 선수들의 선전과 투혼에 큰 박수를 보낸다.

경기를 마친 양팀 선수단 멋진 경기를 펼친후에 가진 기념촬영.

▲ 경기를 마친 양팀 선수단 멋진 경기를 펼친후에 가진 기념촬영.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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