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역전의 명수'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고교야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던 군산상고가 2000년대 이후 급속히 쇠락해 지역 야구인과 시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군산상고는 1999년 제53회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로 7년째 전국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채 감독만 7번째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군산상고는 지난 7월 23일 화랑기 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심판 몰수패를 당하는 등 최근 성적부진으로 차동렬 감독이 사임하고, 현재는 박진석 코치가 감독대행을 하고 있다.

군산상고는 197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부산고와 맞붙어 9회말 2아웃 이후에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낸 이래 '역전의 명수',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당시 주역들인 김봉연 극동대 교수, 김준환 원광대 야구감독, 김성한 올림픽 야구대표팀 상비군 타격코치 등은 프로야구 선수 현역시절 기아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타이거즈에서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만들어 온 전설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한때 전북과 전남을 아우르는 '호남야구'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해태의 근간을 이룬 군산상고의 야구는 군산시민을 넘어 호남, 특히 전북도민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군산상고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군산상고 뿐만 아니라 전북도민들이 응원을 위해 상경하는 차에 몸을 실었고, 재경 도민들도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바람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고향사람은 동대문야구장에서 다 만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70·80년대 고교야구를 호령했던 군산상고는 90년대 후반이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고, 2002년 나창기 감독이 12년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3년부터 현재까지 김용남-김형종-김성한-김형종-이군옥-차동렬 감독까지 6명의 감독이 물러났다.

2004년에는 '역전의 명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성한 전 기아감독을 전격 영입해 이듬해 19년 만에 대통령배 4강에 진출해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김성한 감독 사임 이후 최근 2년 새 김형종, 이군옥, 차동렬 감독 등 3명이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감독과 학교, 학부모들의 갈등도 심해 이군옥 감독의 경우는 '모교야구의 부흥'을 외치면서 감독으로 부임한 지 몇 개월도 안 돼 조용히 사라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산상고 야구의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진 것은 물론 우수 선수들이 군산상고를 기피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지난달 16일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인천고 4번타자 국해성이 군산남중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의 스위치히터로 주목받았지만, 선배들이 걸었던 군산남중-군산상고의 코스를 버리고 인천을 택했다.

군산상고는 이달 중순쯤에 총동창회와 학교관계자, 학부모, 학교운영위원들이 모이는 체육진흥위원회를 열어 후임 감독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상고 고교야구 역전의 명수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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