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가 28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12차전에서 연장 11회말 손인호가 롯데의 마무리로 나선 카브레라에게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며 2-1 신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3연승에 성공한 LG는 6위 롯데와의 승차를 4게임으로 벌려놨으며 4위 한화와는 1.5게임차를 유지했다.

현재 LG는 지난 주말부터 SK와의 3연전을 시작으로 롯데와 한화를 차례대로 만나는 '운명의 9연전'을 치루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9연전은 결과에 따라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4강 다툼의 승자도 가려질 전망이다. LG는 올 시즌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 서 있는 셈이다.

부상으로 무너진 에이스의 꿈

▲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았던 '유망주' 김민기.
ⓒ LG 트윈스
지난 15일 사직 롯데 전 이후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사실상 4강권에서 멀어졌던 LG는 이후 벌어진 8경기에서 6승 2패를 기록, 다시 5할 승률을 회복하며 기사회생했다.

시즌의 성패가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LG가 거둔 6승의 가치는 시즌 60승과 맞먹을 만큼 값진 승리였다. 그리고 그 귀중한 6번의 승리를 지켜낸 경기 가운데 5번이나 마운드에 서 있었던 투수가 있다. 바로 올 시즌 LG의 중간계투로 나서고 있는 프로 9년차 투수 김민기(30)다.

1997년 덕수상고(현 덕수정보고)를 거쳐 LG에 고졸 우선지명을 받고 입단을 한 김민기는 2학년이었던 95년,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될 만큼 주목받는 투수였다.

150km에 이르는 강속구가 주무기였던 김민기는 1999년 5월 17일 구원 등판을 한 두산 전에서 우즈(삼진)-최훈재(낫아웃)-장원진(삼진)-안경현(삼진)을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며 한 이닝 4삼진의 진기록을 세우는 등 가끔씩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이기는 했지만 프로 5년차이던 2001년까지 거둔 성적은 당초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12승 16패 7세이브였다.

더군다나 '차세대 에이스' 김민기는 에이스답지 않게 선발보다는 구원으로 등판한 경기가 더 많았다. 프로 5년차 투수 김민기는 여전히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것이다.

2002년은 김민기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시즌이었다. 주전 투수들이 부상으로 시즌 합류가 늦어지면서 김민기는 당당히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차며 시즌을 출발했다.

4월 한 달 동안 5번의 선발 등판에서 4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2승(1패)을 따내는 등 LG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4월 한 달 동안 LG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김민기였다.

비록 승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2002년 김민기는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인 7승 5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 LG를 한국시리즈까지 끌어 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만년 유망주라는 지긋지긋했던 꼬리표를 떼어낸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시즌이 끝난 후 김민기는 이미 한 차례 문제를 일으켰던 어깨통증이 재발 결국 부상과 재활으로 2003년과 2004년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된다.

이순철에 대한 김민기의 '항명'

김민기가 온전한 몸으로 다시 마운드로 돌아온 건 2005년이었다. 취임 이후 두 번째 시즌을 맞는 이순철 감독은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부상에서 회복한 김민기를 꼽았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지만 그해 김민기는 4승 7패 평균자책점 8.02라는 참담한 성적만을 남겼다.

어깨부상 이후 김민기의 구속은 140km 초반으로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구속이 떨어진 것 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당시 김민기가 마음까지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김민기의 항명'사건이었다.

시즌 초반 선발로 출장을 하다 구원으로 보직이 변경됐던 김민기는 당시 LG의 마운드 운용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급기야 7월 2일 기아전 9회초에 구원 등판, 연속안타를 내주고 강판을 당하자 공을 이상군 투수 코치에게 넘겨주는 대신 홈 플레이트 뒤편 그물에다 던져버리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다음날 김민기는 2군으로 떨어졌으며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9월에야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 의미있는 2007년을 보내고 있는 김민기.
ⓒ LG 트윈스
2007년 시즌 초반 김민기를 바라보며 팬들은 구속도 떨어지고 감정 조절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김민기가 과연 LG 마운드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의 마지막으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 김민기는 LG 마운드의 가장 소중한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즌 중반 LG의 허리를 맡았던 심수창이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경헌호가 부상으로 무너졌을 때 피를 말리는 중위권 대혼전의 한 가운데 있었던 LG의 마운드를 지켜준 투수는 김민기였다.

연속된 출장으로 구위가 떨어지면서 선발 투수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김민기는 언제나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31살,'미래의 에이스'라는 기대감도 150km의 강속구도 사라진 김민기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었는 막중한 책임감이 생긴 것이다.

올 시즌 60게임에 등판을 해 7승 5패 16홀드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하고 있는 김민기는 팀내 투수들 가운데 류택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장을 하고 있으며 홀드 부문도 전체 4위에 올라있을 정도로 LG의 든든한 '믿을 맨'으로 거듭나 있다.

최근 '운명의 9연전'을 앞두고 김민기가 LG의 투수들에게 "힘들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독려를 했다고 한다. 프로 입단하면서 꿈꾸었던 에이스가 되지는 못했지만 11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김민기는 가치 있는 선수가 되었다.

유망주가 기대한 만큼 자라나 에이스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비록 에이스가 되지는 못했지만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고 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김민기의 2007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2007-08-29 18:38 ⓒ 2007 OhmyNews
김민기 LG 트윈스 유망주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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