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자격으로 일일 스포츠 기자가 되었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나의 꿈은 '스포츠 기자'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축구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스포츠기자가 꼭 되고 싶었다. 그런 나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축구 취재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의 2008 베이징올림픽 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우즈베키스탄전)을 취재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내 입에서 절로 나온 소리, "앗! 한준희다!"
 '기자밥'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그래도 두 개나 먹었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오마이뉴스> 스포츠 담당 김귀현 기자와 함께 경기 1시간 30분 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기자의 생명'인 취재 수첩과 미디어 패스 카드를 챙겨 들고 저녁식사를 위해 사진기자실로 향했다. 평소 '경기 전 기자들은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까?' 하고 궁금해 했는데 오늘 그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렸다. 대회 주최측에서 기자들에게 샌드위치와 과일이 담긴 도시락과 매실 캔 음료를 제공해준 것이다. 예상보다 간편한 식사가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경기장 3층에 있는 기자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계방송 스태프, 주요 신문사 기자단, 사진 기자단으로 상암벌은 북적거렸다. 기사 소재를 찾던 도중, 마침 '샤우팅 해설'(축구 해설할 때 결정적인 상황마다 비명을 지르다시피 한다 해서 붙은 말)로 유명한 KBS 한준희 해설위원이 내 앞을 지나갔다. 한 위원을 보자마나 내 입에서는 "앗! 한준희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바로 쫓아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질문의 내용은 경기 예상·득점선수 예측·베어벡 감독과 박성화 감독의 전술 차이점이었다. 한 위원은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나는 토토가 아니다"라며 대답을 피했고, 이 경기 예상 득점 선수로 중앙미드필더 오장은을 꼽았다. 또한 베어벡 감독이 사용한 4-3-3 전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세 명의 미드필더 중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비가담으로 공격이 고립되고 공격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를 꼬집었다. 이 후 "왜 샤우팅 해설을 하느냐"고 묻자, "내가 원래 다혈질이라 나도 모르게 자주 흥분한다"면서 "이제 좀 자제하려 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샤우팅 해설'로 유명한 한준희 KBS 해설위원을 눈 앞에서 직접 봤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인터뷰 중 갑자기 한 열성 축구팬이 한준희 해설위원에게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한 위원과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바로 그 축구팬 김순광씨를 찾아가 한국축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눴다. 먼저 김씨는 이날 경기를 2-0 한국 승리로 예상했다. 김순광씨는 "한국 축구는 좌우 윙어의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며 답답한 마음을 열변으로 토해냈다. 경기 시작 시간인 밤 8시가 임박하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가족과 연인 관람객으로 떠들썩했다. 열심히 한 인터뷰, 하지만 녹음 안 해 호되게 혼나고… 난생 처음 '기자석'에 앉아보니 여러가지 궁금증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중 하나가 경기장 곳곳에서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항상 서있는 스태프의 역할과 업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23살의 대학생 박명랑 스태프를 찾아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난 당당히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않았다. 하지만 '아뿔싸'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지 못한 것이다. 손에 들려 있는 녹음기는 아무 것도 담지 못했다. '녹음' 버튼을 누르지 않은 것이다. 함께 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호되게 혼난 뒤, 재인터뷰를 시도해 육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는 약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경험 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스태프 박명랑씨와 '두 번'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스태프의 생활은 어떨까? 스태프 박명랑씨를 인터뷰했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 스태프 일을 하시게 된 계기나 사건이 있으신가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친구의 소개로 관중안내(일일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 하는 일을 간략한 소개해 주세요. "앞서 말씀해 드린 듯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관중'들에게 자리를 안내해주는 일을 주로 합니다. 오후 1시부터 경기 종료시간인 오후10시까지 근무합니다. 일당은 3만원이에요." - 근무 시간 내내 자리에 서서 활동을 하시는데, 힘들거나 경기를 보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경기 시작 전인 밤 8시까지만 관중들의 자리를 안내합니다. 관중 좌석 안내가 끝나면 저도 편하게 계단에 앉아 경기를 관람한답니다." 편하다고 했지만, 통로 계단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좀 불편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밤 8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은 언론의 예상대로 골키퍼 정성룡에 최철순-강민수-김진규-김창수의 포백, 이근호-오장은-백지훈-김승용의 미드필드진으로 경기에 나섰다. '우즈벡 전의 사나이' 한동원의 파트너로 낙점된 U-20 대표출신 신영록이 선발 선수명단에서 제외되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선발 투톱은 한동원과 장신 공격수 하태균. 신영록의 경기감각이 떨어져서 박성화 감독이 하태균을 출전시킨 듯 했다. 전반전에 인상적인 슈팅이 없자 관중석에선 야유와 욕이 쏟아졌다. 결국 전반 종료 직전 우즈벡 갈리우린의 예리한 오른발 프리킥이 혼전 상황 속에 주장 김진규의 발에 맞고 한국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황당하다', '어이 없다'는 표정의 붉은악마 서포터, 꼬마 축구팬의 야유가 생생하게 들렸다. 현장 취재의 참맛을 느꼈다고나 할까. 축구 전문 기자를 만나다
 <일간스포츠> 최원창 기자.
ⓒ 오마이뉴스 김귀현
하프타임 때는 <일간 스포츠>의 최원창 축구 전문 기자를 인터뷰 대상으로 잡았다. 난 스포츠 기자를 꿈꾸기 때문에 현직 기자들을 인터뷰 하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포츠 신문을 보면서 최원창 기자의 기사를 즐겨 봐왔기 때문에 이 인터뷰가 더 설렜다. 10년간 축구 전문기자로 활동해 온 최원창 기자는 인자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최 기자는 가장 인상적인 취재로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 전을 꼽았다. 최 기자는 "당시 내가 폴란드전을 책임 취재한 데다, 첫 골 예상 선수로 지목한 황선홍이 득점에 성공해 큰 희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축구 기자의 자질로 최원창 기자는 '애정'을 꼽았다. "축구를 사랑하지 않으면 축구기자가 될 수없다"며 스포츠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 박학다식해야 기사 작성이 유리하다"며 "기자가 꿈인 학생들은 상식을 많이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한 한국 스포츠 기자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 하고 사진 촬영을 하니 가슴이 벅차고 숨이 가빴다. '정말 기자가 되어야 겠구나' 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인터뷰 후, 경기장을 둘러보다 경기장 밖을 지키는 스태프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2시간 동안 경기를 보지 못 한 채 경기장 밖 질서 유지를 하는 남자 스태프였는데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전반전 경기 중, 난 경기 전 매실 음료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다급한 소식이 전해져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5분이 얼마나 아깝던지…. 매실 음료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난 5분도 못 견디겠던데, 경기 소리만 듣는 스태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정말 미치도록 경기 보고 싶죠,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여가생활비를 모으려 일하지만, 축구팬으로서 경기를 보지 못 한다는 건 완전 고문이죠, 고문"이라며 그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역전승보다 더 짜릿한 것은? 후반 경기가 시작되었다. 김진규의 자책골로 분위기가 죽은 한국대표팀, 나에게는 U-20 월드컵 출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려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결국 내 바람은 이루어졌다. '우즈벡 킬러' 한동원이 맥을 못 추자 후반 6분 박성화 감독은 U-20 대표팀의 영웅 이상호를 투입해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26분 우즈벡의 파울로 얻어낸 프리킥,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키커로 김승용이 나섰다. 김승용의 예리한 킥에 이은 173cm의 단신, 이상호의 천금 같은 헤딩골로 한국은 상승세를 탔다. 2만여 팬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기뻐했다. 기자석에서 골 장면을 보니 새로웠다. 주위를 둘러봐도 환호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상했다. 기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가. 골 넣었는데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기자들에게는 이 상황이 '긴급 상황'이었다. 발 빠르게 골 장면을 스케치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교생 시민기자인 나도,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쉴 새 없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별로 적을 건 없었다. 일단은 메모하는 척만….
 김승용이 프리킥 차기 전. 이 프리킥은 동점골로 연결 되었다.
ⓒ 오마이뉴스 김귀현

이상호의 동점골로 경기 주도권은 한국팀으로 넘어왔다. 박 감독은 후반 32분 이승현을 김승용 대신 교체투입하며 발빠른 공격을 주문했다. 결국 상암의 기적은 이뤄지고야 말았다. 후반 33분, 오른쪽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기가 막히게 장신 하태균이 헤딩으로 패스를 했고, 이를 이근호가 받아 환상적인 왼발 터닝슛으로 골문을 가르자,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얼마나 시끄럽던지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솔직히 '난생 처음 하는 취재인데 못 이기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경기시작 전부터 들었다. 그런 불안감을 싹 씻어준 이근호, 역시 '해결사' 라는 별명답게 올림픽 대표팀을 구해내고야 말았다. 이근호의 환상적인 골을 결승골로 해서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에 승리해 본선진출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였다. 박성화 감독은 경기종료 후 인터뷰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김진규는 며칠 전부터 설사로 컨디션이 안 좋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신영록을 출전시키지 않은 이유는 "U-20대회 이후 K리그 경기감각이 하태균보다 떨어져 쉬게 했다"고 말했다. 박성화 감독의 인터뷰를 끝으로 모든 취재를 마쳤다. '한 여름 밤의 꿈', 짜릿했던 2-1 역전승보다 더욱 더 짜릿했던 <오마이뉴스> 일일 취재 동행이었다. 꿈만 같았던 2시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여러 인터뷰, 경기 메모 등…. 8월 초부터 한 달간 계획했던 취재동행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하루의 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환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기가 끝나자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 속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진정한 공부는 바로 이런 산 경험이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선배 기자님께 혼나기도, 지적받기도 했지만 행복했다. 원래 혼나면서 배우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밤에는 10년 뒤 스포츠 기자가 된 내가 고등학생 시민기자를 데리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한 수 가르치는 꿈을 꿀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장영우 기자는 현재 산마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시민기자 입니다.
축구 박성화호 체험기 올림픽 대표팀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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