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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인검증,달인을 스턴트맨과 대결시키고 있다. 옆으로 작업대가 부착된 크레인이 보인다.
ⓒ SBS

'전문직업'이란 무엇일까? 전문직업의 형성과정에 관한 과학사 분야의 설명을 보면, 전문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춘 학문적 지식의 습득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 직업에 대한 배타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의대·약대·법대와 같은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하고 의료법·변호사법과 같은 법으로 권한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이며 실제로 거론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무실한 전문직업인이 적지 않다. 어제(9일) 뉴스에서도 진료조차 하지 않고 건강보험료를 청구한 의사·약사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놀랍도록 '무명유실'한 이웃들을 우리는 매주 월요일 SBS <생활의 달인>에서 만날 수 있다.

<생활의 달인>의 매력

달인들은 '사짜' 들어가는 직업은 아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 소리 나게' 잘하는 사람들이다. 달인들은 학벌과 자격증이 아니라 그들의 솜씨로 승부한다. 달인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SBS <생활의 달인>은 그들을 발굴하여 '보여주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생활의 달인>이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또는 그 옛날 MBC <묘기 대행진> 등의 프로그램과 차이점은 '생활'이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묘기'가 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노동이 낳은 '예술에 가까운 경지'를 보는 재미, 바로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 무대설치의 달인이 10m 높이의 철골 위를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걸어다니고 있다.
ⓒ SBS
지난 월요일(9일) 나는 SBS <생활의 달인(106회)>이 이러한 '정체성'을 망각하고 점차 '묘기대행진'으로 변하려는 좋지 않은 징조를 보았다. '무대설치의 달인'편은 아슬아슬함과 불법의 극치였다. <생활의 달인>이 이러다간 머지않아 SBS 드라마 <쩐의 전쟁>의 '마동포'와 같은 인물도 출연시키는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대설치의 달인'은 그야말로 다람쥐 같았다. 무대 철골을 타고 오르내리는 솜씨가 그랬고 상체에 두른 안전벨트와 안전대 고리는 어디에도 부착되지 않은 채 마치 다람쥐꼬리처럼 자유로웠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자막으로 '날다람쥐' '스파이더맨' 등의 수사를 연발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급기야 달인을 스턴트맨과 대결시키기까지 했다

원칙적으로 철골에서 작업을 할 때는 안전대 부착설비가 철골에 붙어있어야 하고 작업자는 거기에 안전대를 걸고 일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작업대가 달린 크레인 또는 고소작업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해당 작업은 안전모 미지급 또는 미착용, 안전대 부착설비 미비 등 관련 작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대부분을 무시한 것이었다. SBS는 제보를 신중하게 채택하여 방송했어야 했다.

달인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

▲ 작업중지명령 스티커(왼쪽 사진). 추락재해 위험이 있을 경우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작업중지'를 명한다. 한 건설노동자가 철골 위를 안전조치 없이 이동하고 있다. 한 번만 발을 잘못 디디면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한다. (오른쪽 사진)
ⓒ 강태선
▲ 안전대 부착설비. 철골 위에서는 추락재해를 막기 위해 안전대 부착설비에 안전벨트 걸이를 걸고 이동해야 한다.
ⓒ 강태선
달인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해야 하겠지만 바탕에는 반드시 '안전'이 깔려있어야 한다. 우리는 해마다 수만 명의 재기넘치는 달인들을 산업재해로 잃고 있다. 그 사회적 비용만 해도 15조8000억원을 헤아린다.

'05년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6개월 미만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40.3%로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의 고수들이 18.3%로 그 다음이었다. 원숭이조차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거늘 사람인 바에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철골과 비계에서의 추락재해는 베테랑들에게도 예외 없이 일어난다.

또 고수들에게 많은 산업재해는 주로 과도한 반복작업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이다. <생활의 달인>이 100회를 넘는 동안 많은 달인들이 있었는데, 상당수의 달인들이 근골격계질환 통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들은 그 재주꾼들을 보호해줘야 한다.

달인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그들의 특기만이 아니라 가급적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통증을 호소하면 늦기 전에 빨리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인적자원을 산재로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의 산재예방 포스터이다. 역시 무대를 설치하는 작업이 나온다. '무슨 일을 하든지 허리를 보호하라'는 표어가 선명하게 보이고 작업자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대차를 이용해 앰프를 옮기고 있다. SBS '무대설치의 달인' 같은 작업과 비교해 볼 만하다. 누가 더 달인이라고 생각되는가?

▲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 산재예방포스터. 요통예방을 위해 허리를 펴고 앰프를 옮기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달인이 앰프를 옮기고 있는 모습.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있다.
ⓒ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SBS

덧붙이는 글 | 강태선 기자는 노동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greenhospital.myzip.co.kr/worktrainer/default.asp) <일과건강>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생활의 달인, #산업재해, #안전대, #고소작업대, #근골격계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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