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디흐의 16강 진출 소식이 실린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 누리집(atptennis.com) 첫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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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을 우리말로 '볕뉘'라고 한다. 윔블던 잔디밭 위로 이틀 만에 볕뉘가 비쳤지만 7년 만에 품은 이형택의 꿈을 아쉽게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한국 남자 테니스의 희망 이형택(ATP 랭킹 51위)은 우리 시각으로 2일 저녁 잉글랜드 윔블던에 있는 올 잉글랜드 잔디 테니스 클럽 14번 코트에서 벌어진 2007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십 남자단식 3라운드 경기에서 대회 7번 시드를 받은 토마스 베르디흐(ATP 랭킹 11위)를 맞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공을 넘겼지만 0-3(4-6, 6[2TB7]7, 6[3TB7]7)으로 패하고 말았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윔블던 테니스대회 32강에 올랐던 그의 발걸음은 아쉽게도 거기서 멈추었다.

아홉 살 그리고 15cm

이들은 이미 이틀 전에 만났다. 우리 시각으로 지난 달 30일 이형택과 베르디흐는 14번 코트에서 맞섰다. 두 번째 세트 여섯 번째 게임 듀스(40:40) 상황에서 서버 베르디흐가 한 포인트를 더 따내 스코어보드에 A(어드밴티지)가 표시되던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코트에 장막이 씌워지고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더 지나고 월요일에 그들은 다시 만났다. 윔블던의 비가 베르디흐에게는 꿀맛같은 휴식을 누리게 한 것인지 서브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신의 키보다 15cm나 더 높은 곳에서 내리꽂는 서브의 위력에 이형택은 팔을 내뻗기에 바빴다. 아홉 살 어린 베르디흐는 마지막 세 번째 세트에서 무려 여덟 개의 에이스를 코트 구석구석에 뿌려댔다.

베르디흐와 이형택은 지난 1월 15일 호주 오픈 1라운드에서 이미 만난 바 있다. 당시 0-3(1-6, 2-6, 2-6)으로 90분 만에 싱겁게 물러났던 이형택은 이 경기를 통해 자존심이라도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두 번째 세트 열두 번째 게임까지 6-6의 균형을 이루며 한국인의 윔블던 도전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획을 새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뒷심이 모자라 타이 브레이크에서 2-7로 맥없이 무너졌다.

이어진 세 번째 세트에서 베르디흐는 서브 위력은 물론, 이형택의 날카로운 서브를 반 박자 빠르게 받아넘기는 묘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3-5로 뒤진 상태에서 연거푸 두 게임을 따내며 5-5를 만드는 순간에는 이형택의 노련미가 잠시 빛나기도 했다. 또 한 번의 타이 브레이크에서는 네트 앞으로 달려들며 절묘하게 백핸드로 받아넘기는 끈질긴 몸놀림까지 보여줘 보는 이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이형택의 볕뉘는 다시 구름에 덮이고 말았다.

세계 랭킹 마흔 계단의 차이는 다섯 달 보름 전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서른이 넘은 이형택의 도전 의지는 강렬했다. 2000년 미국 땅에서 세계 테니스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그랜드 슬램(US 오픈) 16강에 올랐던 이형택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얀코 팁사레비치(세르비아)와 함께 나서는 남자 복식 일정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형택의 윔블던 단식 도전이 이렇게 끝나자 거짓말처럼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잔디 코트 위에는 장막이 덮였다.

덧붙이는 글 | ※ 2007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십 남자 단식 3라운드(32강) 결과
- 윔블던 올 잉글랜드 잔디 테니스 클럽 14번 코트

★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7번 시드) 3-0(6-4, 7[7TB2]6, 7[7TB3]6) 이형택

2007-07-03 08:3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7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십 남자 단식 3라운드(32강) 결과
- 윔블던 올 잉글랜드 잔디 테니스 클럽 14번 코트

★ 토마스 베르디흐(체코, 7번 시드) 3-0(6-4, 7[7TB2]6, 7[7TB3]6) 이형택
윔블던 이형택 베르디흐 호주 오픈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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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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