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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 풍경

시내버스가 멈춰선지 벌써 3일째가 됩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승강장에 나가 보니 승강장이 종점 근처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로한 어르신이나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아주머니들인 걸로 미루어 그 분들은 파업기간 임시운행 차량의 첫 차가 6시 30분에 운행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나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려니 마음이 조급합니다. 기다리다 못한 한 두 명은 택시를 타고 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자기를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담배를 빼물고 깊은 한숨을 내 쉽니다. 시장에서 몫 좋은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고, 약속도 지킬 수 없으니 그 분들의 하루는 이미 시작부터 어긋나고 있는 듯 합니다. 잠시 후 임시운행 버스 한대가 도착했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임시운행 버스에는 시장에 장사를 위해 나가는 아주머니들의 짐을 실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한 할머니는 기사에게 짐을 실어달라고 사정해 봅니다.
"내가 하루 종일 2만5천원 벌자고 시장에 나가는 데, 버스에 짐 못 실으면 택시타고 가란 겁니껴?"

기사는 난감하지만 몇 개나 되는 짐덩어리를 실을 자리가 없으니 별 도리가 없습니다. 버스가 떠나버리자 할머니께선 한숨을 내 쉽니다.
"어쩌것슈.. 2만5천원 벌자고 택시비 만원 쓸 없으니 버스 다닐 때까지 집에 있어야쥬.."
짐을 끌고 돌아서는 할머니의 얼굴에 패인 주름이 깊기만 하고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시민들의 목소리

이윽고 제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버스에 탑승하니 많은 사람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스에 탄 승객 대부분은 '대전시내버스 운전자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그분들의 성난 목소리를 조금 전해드릴까요?

한 시민이 말합니다.
"시내버스 적자 메꾸는데 시 예산이 연간 200억 이상 들어간다고 합디다. 그런데 자기들 배불리자고 시민을 이렇게 욕보여도 되는 겁니까?"

한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칩니다.
"요즘 시내버스 기사가 벼슬이에요. 버스 승강장에서 잠시만 한눈 팔아도 태워주지 않고 휙 지나가버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미리 벨을 누르지 않으면 보통 눈치를 주는 게 아니에요."

또 다른 아저씨도 한 마디 합니다.
"버스 준공영젠지 뭔지 그거 왜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 되고 나서 버스회사 적자 다 시 예산으로 메꾸는데, 버스기사들 신분 보장되고 학자금 지원해주고 복지혜택이 엄청 향상되었답니다. 요즘 시내버스 회사에 운전사 이력서가 수북이 쌓여있대요. 들어보니 그 중에 고속버스 기사들도 꽤 된다더군요."

이렇듯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 대부분은 '운전자들의 임금인상이 파업을 해서 모든 버스를 스톱시켜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인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파업에 공감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

노동자가 권익신장을 위해 사측에 요구하는 것이나 좀더 낳은 처우를 받기 원하는 욕구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지향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으면 발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버스운전자들이 좀더 낳은 근무환경과 대우를 사측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버스파업은 일반시민 뿐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조차 당신들의 파업의 당위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시내버스는 가장 경제력이 빈약한 '서민들의 발' 입니다. 택시가 파업하면 버스를 타면 됩니다. 노선이 하나 뿐인 지하철이 파업하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파업하면 자기 차가 없거나 혹은 택시를 탈 형편이 안되는 노약자들이나 시장상인 그리고 학생 등은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탈 수 없습니다. 외출을 포기하거나 언제 올지 모르는 대체버스를 기다리며 고단한 여행을 해야만 합니다. 버스 파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은 우리사회가 가장 돌봐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란 말씀입니다.

둘째, 준공영제체제에서 임금인상요구는 바로 시민의 세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된 이후 대전시는 연간 수백억의 운행적자를 기록해왔습니다. 시는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수개월전 요금을 15%나 대폭 인상함으로서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켜왔습니다. 그런데 운전자들이 '급여인상을 안해 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서민의 발을 3일째 묶어두고 있습니다.

시는 적자를 줄이기 위해 요금인상을 단행했는데 운전자들은 인상폭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반영해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는 적자해소를 위해 다시 요금을 인상해야 하는 겁니까?

셋째, 시민은 운전자의 적이 아닙니다. 대체운행 하는 버스 기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대체버스가 버스 종점에 가면 식사를 해야 하는데 "종점 식당에서 밥을 팔지 않더라"는 것 입니다.

기사는 식당아주머니에게 "왜 밥을 팔지 않느냐?"고 물으니 "시내버스 기사들이 대체버스 기사에게 밥을 팔면 앞으로 이 식당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식당아주머니 입장에서 대체버스 기사들이야 며칠 보고 말 사람들이지만 시내버스 기사들이 자기식당을 외면하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대체버스 기사들은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정말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의 직장이 누구 때문에 존재하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데, 당신들이 지키지 못한 자리를 대신 지켜주는 대체버스의 운행을 간접적으로 훼방하고 있는 것인지요?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이번 파업의 목적입니까?

넷째, 운전자들의 입장을 시민에게 알리려 해보셨습니까? 저는 버스가 파업하던 첫 날부터 3일간을 매일 승강장 앞에 나갔고, 제차를 몰고 다른 승강장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지 못하는 시민들과 대체버스의 운행을 모니터링 하는 시청직원을 만날 수는 있어도 시내버스노조관련자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시내버스가 운행을 중단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시민에게 한마디 사전양해도 없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입장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시민들 눈에 비쳐지는 당신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제 배를 불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떼를 쓰는 무리'로 비쳐질뿐 입니다. 이번 파업으로 당신들이 얻고자 한 것은 몇 푼의 돈이겠지만 당신들은 그 대가로 시민의 신뢰와 후원이란 아주 큰 것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당신들의 투쟁이 시민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스스로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의미 입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또 다시 출근시간이 될 것입니다. 장터가기를 포기했던 할머니는 또 다시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할까요? 차가 없는 학생들은 지각을 해야 할까요? 저의 감정 섞인 항의에 버스운전자들의 현명한 답을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전시내버스파업,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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