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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월) 오전 8시 27분. 버스예정시간 안내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 한미숙

▲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는가?
ⓒ 한미숙
처음엔 한 이틀 하다가 합당한 타결책을 보고 끝나겠지 했다. 22일, 금요일부터 했으니 주말까지 서민의 발을 묶어 두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고 학생과 직장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대전 시내버스노조 파업은 진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중학생 아들아이는 오늘 아침 7시 10분쯤에 집을 나섰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전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첫 차 시간만 나와 있었다. 그 시간을 기준해서 동네에 올 시간을 짐작하고 나간 것이다.

▲ 출근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 한미숙
나 역시 아침 출근길을 서둘렀다. 평소엔 8시 15분에 집을 나서 25분에 버스를 탔는데, 7시 50분에 정거장에 도착했다. 내가 타던 좌석버스는 배차시간이 16-18분 간격이었다. 정거장에는 시민들이 20명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들이다. 언제 올 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 서울번호가 붙어있는 관광버스.
ⓒ 한미숙

▲ 한참을 기다려 버스에 오르는 시민들.
ⓒ 한미숙
까맣게 썬팅이 된 긴 관광버스차가 정거장 앞에 멈추면 앞유리창에 붙어 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사람들은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서 왔는지 서울번호를 단 버스도 있고 충남에서 올라온 버스도 있다. 대학교 이름과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차량들도 움직였다.

▲ 버스정거장에 설치된 의자에 급여명세서가 놓여있다.
ⓒ 한미숙
차를 기다리다가 주위를 보니, 정거장에 마련된 녹색의자에는 프린트 된 A4용지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옆에 앉아서 들여다보니 '5월 급여 명세서'였다. 운수회사에서 누군가 복사를 해서 갖다놓은 거였다. 뒷장을 보니 '대전지역 버스기사들이 시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고 써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대전시에서는 버스기사들이 받는 월급이 300만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노조에서 밝히고 있는 실제 받아가는 월급은 200만원도 안 되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렸다.

기다린 지 50분이 지나서야 내가 타려는 버스가 왔다. 이미 출근시간은 지나 있었고 난 지각이었다. 버스에 오르자 운전석 옆 요금 받는 사람이 눈에 띈다. 시청에서 나온 직원이었다. 일반은 모두 1000원을 받고 중·고생들은 700원, 초등학생들은 300원이었다. 관광버스는 정거장마다 안내도 안 되어 승객들이 중간에 물어보기도 하였다. 내리고 타는 문이 앞쪽 한 군데이고, 기사는 노선이 익숙지 않아 천천히 운행하니 당연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타결을 보는 거예요, 정말 불편해 죽겠네. 차를 탈 때마다 이렇게 고생시러워서 어떻게 한대요?"

어떤 승객은 운전자와 시청직원에게 하소연하다시피 했다. 직원은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는 시청직원은 귀에 수신기를 꽂고 시에서 내리는 지시사항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돈을 거슬러 주고 환승표를 내주며 승객들의 질문에 확실한 답도 못해주는 직원도, 한 시간 동안이나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서민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배차 간격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거의 한 시간에 한 대 꼴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게 오래요?"
"이 버스가 전체 3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저는 종점까지 갔다가 쉬지도 못하고 바로 또 와야 해요. 한 대만 더 있어도 좀 쉬겠는데 나두 죽겠어요, 정말."

▲ 운수회사에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글. 진실인가?
ⓒ 한미숙

ⓒ 한미숙

▲ 운전자가 한달 받는 월급은 1,617,392원. 그럼 대전시가 주장하는 320만원은?
ⓒ 한미숙
나는 정거장에 놓여 있던 급여명세서에 나와 있는 기사들의 월급이 160여만 원인데 왜 시에서는 300만원이 넘는다고 하는지 운전자에게 물었다.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말했다.

"내가 대전시 입장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시내버스 기사들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를 받아요. 거기에 아이들 학자금도 나오지요. 그것까지 써 있는지 한번 보세요!"

시내버스 파업이 장기화가 될 조짐을 보이면서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별 기대할 만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대전시 대중교통과에 전화를 걸었다. 파업중인데 대전시와 노사가 현재 어떻게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계속 통화중이거나 신호는 가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 4시 50분에서 5시 10분까지 전화기를 눌러댔다. 전화기에는 '대전응원가'만 나오다가 한참 후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노조에서는 임금인상을 5%로 잡고 있는데 시에서는 3%를 잡고 있어요."
"그럼 운수회사(협진)에서 시민들에게 정규운전직의 월급이 160여만원이라고 하는 것과 시에서 주장하고 있는 300만원이 넘는 월급의 차이는 뭐예요?"
"아, 전 담당자가 아니고 잠깐만요 담당자 바꿔 드릴게요."

▲ 시간맞춰 나타나는 마을 버스가 새삼 기특하다.
ⓒ 한미숙
김 아무개라고 한 시청직원이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띠,띠,띠... 하더니 끊어진다. 대전시와 운수회사는 50여분씩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내일도 나는 귀빈(VIP)이 될 것 같다.

태그:#버스노조, #파업, #대전시, #운수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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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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