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thcinema
한 남자가 망치로 나무판자를 내려친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접합된 것 같은 두 판자. 사이에 틈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비라도 한 번 내릴라치면 우린 알게 된다. 어느새 비는 그 사이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성질이 나 연장도구를 들고 다시 한 번 대수술에 들어간다.

다음날 역시 마찬가지다. 비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미세한 입자가 그 틈을 자유롭게 드나들 것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남자는 망치를 내려놓고 허망하게 하늘만 바라본다.

그때 한 사내가 그의 옆을 지나간다. 오른쪽 손에 가방을 들고서. 태양에 그을린 강한 맨몸의 사내. 불이 꺼지고 커다란 스크린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젖어들듯 서서히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카드놀이를 하고, 또 누군가는 담배를 태운다. 그리고 아까 그 사내가 가방을 들고 느릿느릿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하나의 선이 그렇게 드러난다.

떠난 아내를 찾기 위해 싼샤에 온 한산밍은 2천년의 역사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절망적인 풍경과 만난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건설현장의 망치 소리, 철거되고 무너지는 건물들. 산밍의 아내가 적어준 쪽지의 주소지도 이미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지 오래전이다. 산밍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일을 하며 쉬는 날이면 아내를 찾아 나선다. 와중에 주윤발을 꿈꾸는 청년 마크를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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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느리고 정적인 영상으로 무시무시한 현대화의 현장을 고발한다. 이것은 대단히 잔인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건물이 무너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건물을 세운다. 그 사이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서민들이 울부짖는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울음에 집중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처지에서 겨우겨우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의 무심한 눈빛 속에 담긴 애환을 보는 관객들의 마음에 슬그머니 던져놓는다.

하나의 선이 길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가는 도중, 난데없이 또 다른 선 하나가 스크린 위에 나타난다. 셴홍(자오 타오)이 소식이 두절된 남편을 찾기 위해 싼샤에 온 것. 손에 물병을 들고 있는 그녀는 항상 무덤덤하게 물을 들이켠다. 가슴 속에 맺힌 무언가를 애써 억누르듯이.

남편 친구의 도움으로 어렵게 남편을 찾아내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셴홍을 떠났다. 지역 개발을 주도하는 건설 회사의 대표인 여자와 사귀고 있었기 때문. 남편은 그녀를 붙잡으려 하나 셴홍은 결국 남편에게 이별을 고하고 상하이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스틸 라이프>의 가장 큰 미덕은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깊은 파장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돌려 말하지도 않고, 멀리 돌아가지도 않는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관념적인 주제를 꺼내놓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중국 당대 현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소신 있게 담아낸다.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 진행으로 인한 몸살은 이미 오래전 우리가 겪었던 아픔과 유사하다. 때문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회한과 살아남은 인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진지하게 다가온다. 영화 내내 경악스럽게 펼쳐지는 건설 현장과 그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중국 인민들의 모습 또한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적이고 진지한 대안을 휘감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싼샤의 정경이다. 중국 10위안 화폐에도 그려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그렇기에 더욱더 우리는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스틸 라이프>는 그 아름다운 곳이 댐 건설로 인해 사라져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보는 이의 마음은 아프다. 점점 가라앉는, 화폐에서나 볼 수 있을 옛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을 우리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 안에는 중국 인민들이 살고 있다. 졸지에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도 시원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서글픈 삶이 그들에게는 현실이다. 이런 기가 막힌 슬픔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해 영화의 곳곳을 수놓는다.

때마다 등장하는 4개의 소제목(담배·술·차·사탕)은 중국인들이 가정의 행복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소들. 이 네 가지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산밍과 셴홍의 손에 들려 있다. 담배를 권하고 태우는 산밍, 아내를 찾기 위해 아내의 친척을 찾아가 술을 마시는 모습, 차를 마시는 셴홍, 그리고 부서진 건물 벽돌 더미에 깔려 시체로 발견된 마크가 생전에 산밍에게 권하던 사탕까지.

영화의 곳곳에 깔려진 이 사물들은 작품의 목표가 풍경 자체가 아닌 사람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만 하는 생이기에.

감독(지아장커)의 전작 <세계>의 결말을 기억한다. 연탄가스를 마신 두 남녀가 차가운 새벽의 거리로 끌려나와 나누던 대화.

"우리 죽은 거야?"
"아니, 이제 시작이야."

가짜로 가득한 북경 세계 공원(테마 파크)에서 그들은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을 끝내 놓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 두 발을 대지 위에 내려놓고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예전 단막 드라마에서도 이런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중견 배우 이계인이 분한 주인공은 자식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빵을 우걱우걱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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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의 셴홍과 산밍 역시 그걸 보여준다. 셴홍은 남편의 배신에 아파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위해 상하이로 향한다. 산밍은 아내를 마침내 찾아 그동안 돈 때문에 묶여 있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그는 아내의 삼촌에게 1년 후에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녀를 다시 얻는다. 그 대가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오가는 광산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산밍은 그들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동료 인부들은 광산에서 하루 200위엔이란 만만치 않은 보수를 준다는 얘길 듣고 같이 가자고 권한다. 죽음의 유혹을 감수해야 한다는 무거운 현실에도 그들은 결국 산밍을 따른다. 땅을 소유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언제든 떠나 돈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함께 길을 나서던 한산밍. 그는 문득 뒤를 돌아 경이로운 한 장면을 목격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가느다란 줄 위에서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는 한 사람을 본 것이다. 난 영화비평가 정성일의 글에서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대해 언급한 부분을 기억한다.

그는 울림이 너무 커서 그날 아무 일도 하지 못했으며, 10년 동난 보아온 영화 중 최고의 라스트 씬이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난 그것이 과장된 감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실제로 보자 난 정말 거짓말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기껏해야 위태로운 줄에서 살아남는 게 다일 것이다. 조금의 실수라도 있다면 그건 곧바로 죽음과 이어진다.

더럽게 끈적끈적한 삶을 향한 위태로운 곡예. 더 이상 나아질 건 없지만 나빠질 것은 많은 인생. 위험을 담보로 광산행을 택한 산밍과 동료들의 삶은 곧 곡예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줄을 탈 것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이다.

두 개의 선이 기묘하게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노동자들이 타야 하는 그 위태로운 줄 하나. 영화 <스틸 라이프>는 결국 그 마지막 장면을 말하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왔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은 분명 그들에게 부를 축적해 주었을 것이다. 또 세계화 속에서 무섭게 발전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개발이 원동력이 됐을 터이다. 하지만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억지스럽게 맞춰놓은 판자 사이의 틈새를.

그 틈새 사이로 싼샤의 풍경이 사라지고, 그 곳에서 살던 보통 사람들의 삶이 빠져나간다. 한 번 빠져나간 과거는 대기 속에 묻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 어떤 그물망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다시 한 번 자세하게 그 틈새를 살펴보라. 보이는가. 한 사내가 위태롭게 줄을 타는 모습이. 한 번 손으로 털어내면 끈질긴 삶이 묻어나는 기적과도 같은 마법이.
2007-06-21 20:56 ⓒ 2007 OhmyNews
지아장커 스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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