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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같이 근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제가 퇴직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쯤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새 학년에 담당할 업무와 새 학급과 가르쳐야 할 과목과 시간수를 알려주었겠지요. 일상 사회에서는 1월 1일이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지만, 학교는 3월 1일이 새해인 셈이지요.

올해는 교무실이 조용했습니까? 제가 교사로 근무할 때는 발표 내용에 따라 교사들 희비가 엇갈리고, 심하면 교사와 학교장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교장은 담임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담임을 맡깁니다.

반대로 담임을 희망하는 전교조 교사와 예체능 교사에게 아예 담임을 주지 않았지요. 3학년을 희망하는 교사에게 1학년 담임을 맡기거나, 상담부를 희망하는 교사를 교무부로 배정합니다. 또 1주 수업 시간수가 어느 교사는 10시간 안팎이고, 어느 교사는 20시간이 훨씬 넘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충암고의 담임선택제

이런 판에 며칠 전 서울 충암고등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담임을 선택하게 하여, 많은 교사를 자극하였습니다. 충암고등학교는 비리 사학의 대표적인 학교입니다. 충암학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쫓겨난 이사장의 학교법인 사무실 사용 문제 ▲120학급짜리 초거대 학교에 매점 임대료가 0원인 문제 등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담임선택권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마치 학생들을 늘 배려해온 학교처럼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일부에서는 충암고가 내부 비리를 덮으려고, 담임선택권으로 여론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번 시행 과정도 석연치 않습니다. 오히려 학교가 교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충암고등학교를 빼고, 담임 또는 담임선택권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교직계가 옛날 같지 않다고 한탄하시던 최 선생님은 이번 담임선택권을 당연히 반대하실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교원 단체에서는 인기에 영합하는 교사가 선택되기 싶다거나, 아이들이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국영수 담임교사 위주로 선택할 것이라고 비판하더군요.

최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오늘날 담임교사 몫이 뭡니까?

@BRI@1반 담임교사가 학교를 비우면, 2반 담임교사 지시에 따라 1반 반장이 1반 담임을 대신하기도 하잖습니까? 학교에서 지시한 것들을 반장이 걷어 행정실에 내거나, 때로는 학급 청소를 지휘하기도 하지요. 담임교사는 학급 학생과 학교를 이어주는 중간 관리자쯤이니까, 반장이 대부분 대신할 수 있더군요.

또 고등학교 담임은 초등학교 담임과 달라서, 자기 담임 학급에 1주일 동안 수업 한두 시간 들어가는 정도이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안 들어가는 교사가 담임을 맡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아이의 관계처럼 확실하고 끈끈하게 맺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따지고 보면 교사가 담임을 하는 것은 업무만 늘고, 학급 아이들 때문에 속 썩을 일만 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가 담임을 맡지 않으면 업무가 절반은 줄어듭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많은 교사들이 담임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주어진 권리는 없고, 책임만 져야 하는 자리이니까요.

가령 우리 교육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학교장이 누구면 어떻습니까? 사회적 약속에 따라 학교가 운영된다면 학교장이 개인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되어, 제대로 상의하는 틀을 갖췄다면 학교장이 원하는 대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습니까? 좋은 제도를 갖추고도 학교 구성원이 제대로 굴리지 못하니까, 좋은 교장과 나쁜 교장이 생기는 것이지요.

최 선생님, 그래서 말인데요. 가령 우리나라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학생이 교사를 선택하게 하고 과목을 선택하게 하면 어떨까요? 물론 고교 교사도 대학 교수 같은 처지가 될 겁니다. 인간관계가 대학처럼 제도 안에 존재할 뿐이며, 굳이 담임교사라고 부를 필요도 없을 겁니다.

상상만 해도 삭막합니다. 결국 담임선택권을 두고 학부모와 교사가 논란을 벌이는 것은 고등학교가 대학과 달리 인성 교육과 공공성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로 굴러가도 부모는 내심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교사를 만나, 무엇 때문에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제가 위에서 담임교사를 가볍게 본 것처럼, 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와 학생이 적당히 엮여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고등학교 생활에서 인간관계와 소통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담임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에게 부모가 "싫은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배우는 것이다"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이 불만을 잠재우려고 상황을 얼버무린 것뿐이지, 부모의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교사를 두고 속으로는 부모가 더 답답해합니다.

최 선생님, 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쓰기에 달린 것뿐이지요. 사람 사는 곳에 어느 제도이든지 양면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기성세대는 일단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마고치(전자 애완동물 육성게임)가 처음 등장할 때도 그랬고, 삐삐가 유행할 때도 그랬지요. 지금은 휴대폰을 두고 학교와 학생이 갈등하는 것 같더군요. 공공장소와 공공업무 시간에 휴대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일깨워 주어야지, 휴대를 금지하거나 압수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말이 나온 김에 담임선택권도 교사 대표와 학생 대표를 뽑고 절차를 밟아 교사와 학생이 상처입지 않는 제도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요즘 고등학생들이 어른들 생각 이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담임선택권 살려보면 어떨까요

최 선생님, 언젠가 우리가 새로운 학교 질서를 꿈꾸며 담임 배정 기준을 만들었지요. 그때는 평교사들이 부장을 추천하였습니다. 물론 일부 부장은 학교장이 지명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부장을 뽑고, 그 부장을 중심으로 여러 교사들이 담임을 맡을만한 교사와 1년 동안 업무를 같이 꾸려 나갈 교사를 찾아 나섰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교사를 찾으면, 힘들고 어렵지만 가야할 길을 함께 하자고 부장과 동료 교사가 설득하고, 그렇게 찾아낸 담임교사를 학교장이 추인하였습니다.

그때는 과목도 상관하지 않았고, 남녀 교사도 차별하지 않았으며, 전교조와 비전교조를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비호감'으로 분류된 교사가 담임을 하겠다면 적극적으로 담임을 맡겼습니다. 그 대신 그 교사와 상의하여 그 반 부담임 교사에 경력 교사를 배치하여 그 반 담임 교사와 학생들의 후원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생각나십니까? 학교장이 교사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모두 참여하여 업무를 조정하고 학급 담임을 정하였습니다. 그때는 교사와 학생이 어느 누구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면서 모든 교사들이 터질 듯이 희망을 안고, 2월 말 새 출석부에 오른 아이들 이름을 보며 새로 만날 아이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눈부시게 한 해를 보냈습니까? 다음 2월에 한 학년을 마치며 또는 졸업하며 아이들이 자기반 담임교사를 여기저기에서 헹가래를 쳤습니다. 교사와 학생을 모두 살리는 방법이 있었지요.

최 선생님, 그때 그 열정을 되새기며 담임 선택권을 이참에 제대로 살려보세요. 1학년 신입생들이 걱정되신다면, 입학 전에 담임교사와 부담임교사를 하나로 묶어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지요. 아예 아이들이 입학하고 15일쯤 뒤에 담임을 선택하게 하면 어떨지요. 그래도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5월 중간고사 치르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어 옮기게 하고요.

그럴 때 그 아이를 받아야 하는 옆 반 담임에게 학생 선택권도 주세요. 그러면 그 교사는 어떤 학생을 같이 보내달라거나, 우리 반 누구와 바꾸자고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느 교사와 안 맞는 학생일지라도 옆 반 아이가 되어 이해관계가 멀어지면 달라 보이잖습니까?

최 선생님, 제가 근무하던 시절과 교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압니다. 더 힘들고 더 어려워졌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너무 모르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까봐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물론 충암고등학교를 두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때 학생을 위해 교사가 존재한다고 믿던 교육 동지였기에 용기를 내어 이 글을 보냅니다. 이제는 학생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조차 교사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고 가야할 짐을 더 얹어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한효석 기자는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근무하다가 2001년 2월 퇴직했으며 한겨레문화센터와 학원에서 심층면접(구술)-논술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보리밥집을 하고 있다.


태그:#담임선택권, #충암고, #담임선택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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