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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인들이 좀 더 노력하면 과연 손님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일까?
 식당 주인들이 좀 더 노력하면 과연 손님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일까?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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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구청에서 중소 음식점 사장들을 대상으로 유명한 강사 특강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무너지고 이러다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구청에서 자영업자들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준다고 기획한 것 같았습니다.

그 강사는 맛, 친절, 청결을 강조하더군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요. 저도 지난 7년 동안 음식점을 꾸려오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아서 강의를 통해 그런 것을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가게 같으면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낫겠다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게는 몇 천만, 크게는 몇 십 억을 들여 음식점을 꾸려 나가는데, 불친절한 자영업자가 있을까요? 그래도 우리 음식 맛이 이만하면 음식으로 팔 만하다고 자부심을 갖고 손님을 받지 않을까요? 그래서 강의 내내 그 강사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강사님 말대로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투자하면 우리 가게 음식을 사먹을 사람이 정말 있기는 있습니까, 라고 말이지요.

좀 더 노력하면 우리 가게 음식 사먹을까요?

언젠가 중소 음식점 사장들이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때도 음식 장사를 했다는 분들이 10%쯤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최근에 음식점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10% 고수들도 지금이 1997년보다 훨씬 힘들다고 했습니다. 소비자가 똑똑해지고 영악해진 것은 세월이 그러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실물 경기는 아주 바닥이라는 겁니다.

어떤 분은 오히려 1997년 그 시절이 음식업계는 호황이었다고 하는군요. 나라 살림이 부도가 났어도 돈은 흔했다는 거지요. 정부에서 구제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대대적으로 돈을 풀었고, 개인은 회사에서 해고되면서 현금을 몇 억씩 받았다는 거지요. 더구나 사람들이 불안하면 먹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며 아주 신나게 팔았다는 거지요. 오죽하면 우리나라가 왜 큰일이 났는지 몰랐다면서, 이런 시절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후 몇 백만 신용불량자 시절을 지나, 석유값과 원자재값, 환율이 폭등하는 시절에 와서는 기업과 개인에게 모두 돈이 없으니, 지금 물건과 음식을 만들어도 사줄 소비자가 없다는 거지요. 그나마 남은 소비자는 대기업과 대형 음식점이 독식하고, 중소기업과 중소 자영업자는 원가 계산과 경영 이론을 모른 체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면서 서서히 망해나간다는 겁니다.

대를 이어 장사하는 일본 가게들, 떼돈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대를 이어 장사하는 일본 가게들이 과연 처음부터 떼돈을 바랐을까요. 영화 <카모메 식당>
 대를 이어 장사하는 일본 가게들이 과연 처음부터 떼돈을 바랐을까요. 영화 <카모메 식당>
ⓒ 카모메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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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가끔 일본 음식과 작은 음식점들을 소개합니다. 가업으로 대를 잇거나 음식을 문화로 승격하려는 집념을 보면서 신기하고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점을 가업으로 이어간다는 것은 떼돈을 벌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자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일본 사람들은 그 음식점을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먹고사는 도구로 삼는 것이지요. 그러다 어느 대에 가서 기대했던 것보다 잘 되면 돈을 많이 버는 거고요.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점을 열어 처음부터 큰돈을 벌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돈 저 돈 모아 1억을 만들었다면 5천만원짜리 가게를 열어야 합니다. 확보한 나머지 5천만 원은 앞으로 1~2년을 버티어야 할 운영 자금이 되어야 하니까요. 말하자면 음식점 경영을 가늘고 길게 내다보지 않고, 어떻게든 시작하면 아는 사람들이 도와줄 테니 잘 될 거라는 희망만 앞세워 무모하게 일을 벌이는 셈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도 없이 대부분 1억짜리 번듯한 가게를 열어 깨끗한 카운터에 앉아 한동안 흐믓해 합니다. 그리고 열흘 뒤 아는 사람들이 보내준 화환을 치우고 페인트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걱정을 하기 시작하다가, 대개 석 달을 못 버티고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겨우 남은 돈으로 더 작은 가게를 얻으나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모르니까 또 실패하고, 그 뒤로 실업자가 됩니다.

결국 그날 10% 고수에게 새내기 사장들이 배운 것은 길게, 느긋하게 보고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과 대형 음식점처럼 소비자를 정교하게 대처하지 않고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합니다. 그러니 중소 음식점들은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을 버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가게가 힘들다면 앞으로 버티기가 더 어려우니 과감히 정리하고 규모를 반에 반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끼리 꾸려나가야 하는지, 포장마차를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 언젠가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느긋하게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개업할 때 엿장수 같은 이벤트를 생각하지 않았고, 7년 동안 신문에 광고지(찌라시) 한 번 넣지 않았지요. 모든 것은 시간이 가야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물론 장사가 잘 안 되어 초조한 적도 많았지요. 그래도 그 세월을 버티니까 손에 쥔 현금은 없지만 가게 가치가 올라 지금 부자가 되었습니다. 혹독한 시절에는 살아남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공무원을 퇴직하고, 2001년 11월에 부천 도당산 자락에 보리밥집을 차렸습니다.



태그:#자영업자, #중소 음식점, #음식점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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