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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림 전경. 비석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나라 시대 이후의 비석 3천여 개를 문묘 뒤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직접 그림)
ⓒ 조수영
여행 이틀째(8월 4일), 비림(碑林)에 도착했다. 원래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었는데 비석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나라 시대 이후의 비석 3천여 개를 문묘 뒤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현종의 효경비를 비롯하여 안진경, 구양순, 저수량과 같은 역대의 저명한 서예가들이 쓴 석비를 모아 비의 숲을 이루게 했다. 그 이름도 '비석들이 수풀을 이루는 것 같다'하여 비림이라 붙여졌다.

▲ 비림 입구, 공자의 뜻에 따라 반원으로 만든 연못
ⓒ 조수영
입구 앞에는 반원 모양의 연못 분수가 있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평생을 걸쳐 얻는 지식은 완전한 원형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의미를 담아 반원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석의 글씨체를 탐구하고 공부하기 위해 여러 유생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작은 다리에서 공자의 말을 되새기며 항상 겸손함을 가지고 향학에 임했을 것이다.

@BRI@비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과거 급제자만 출입할 수 있었고, 양쪽의 두 문으로 유생들이 출입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당당히 가운데 문을 통해 비림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시커먼 비석이 있을 것이란 상상과 달리 문묘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정원과 6개의 정자가 양쪽에 3개씩 있었는데, 한군데만 제외하곤 굳게 닫혀있었다. 이유인즉 이곳의 비석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시대의 것인데 내용이 대부분 한족을 비방하는 것이라 현대의 중국인들이 공개를 꺼리는 것이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석의 한쪽은 한자로 다른 한쪽은 만주족의 말로 씌어 있었다. 오늘은 운 좋게 정자 하나가 열려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는 '당 경운종'이라는 커다란 종이 있는데, 서안성 한가운데 있는 종루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중국에서도 매년 정초에 우리의 보신각종처럼 이 종을 울리는데 실제로는 종을 치는 것이 아니라 녹음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이 종이 유명한 이유는 당나라 13대 예종이 남긴 유일한 친필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공적을 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림'의 편액에 획이 하나 부족한 사연은?

▲ 임측서가 썼다는 현판과 비림 전경
ⓒ 조수영
멀리서 모이는 '碑林(비림)'의 편액이 뭔가 이상하다. '비' 자의 획이 하나 부족하다. 이는 청나라 장군 임칙서가 쓴 것인데, 그는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 당시 서안에 왔다가 광동성으로 가는 중에 비림의 현판을 남기면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서안에 돌아와 점을 찍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패하고, 남경조약이 체결된 뒤 신강에 가서 죽고 말았다.

▲ 당 현종의 석대효경비(石臺孝經碑)
ⓒ 조수영
현판을 지나면 제1실 앞에 거대한 '석대효경비(石臺孝經碑)'가 있다. <효경>은 공자와 그의 제자 증자가 효에 대해 문답을 나눈 것이다. 큰 글자는 당 현종 때 이융기가 공자 효경의 원문을 예서체로 쓴 것이고, 작은 글씨는 현종이 해서체로 쓴 주석이다. 양귀비와의 열애로 역사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현종이지만 시와 서예, 음악에 능하고 미술애호가인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비림 제1실에는 총 12부의 경서, 65만자를 114개의 비석에 새긴 비석들이 있다. 114개 비석에는 각각 앞면과 뒷면이 있으니 모두 228개의 면이다. 당나라 문종이 당현탁등에게 경서를 베껴 쓰게 하여 837년에 이 석각이 완성되었다. 이후 여러 곳으로 흩어진 것을 북송 때에 다시 수집한 것이다. 이는 돌에 새겨진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개성석경(開城石經)'이라 불린다.

개성은 당 문종의 연호이다. 개성석경은 당나라 개성년간 만들어져서 이와 같이 불린다. 당시에는 인쇄기술이 없어서 책의 내용을 보고 베껴서 공부했는데 도중에 잘못 쓸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의 비석들을 보며 확인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과서의 원본,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돌 교과서'라 하면 되겠다.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여러 명이 쓴 관계로 글씨가 조금씩 달랐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탁본을 하면서 비석이 심하게 마모되어 지금은 유리로 싸서 보관하고 있다. 비석의 색도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비석들이 1555년 서안에 일어난 4도 지진으로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 비림 1실. 빼곡하게 서있는 개성석경(開城石經)
ⓒ 조수영
제2실에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관련 유물로 경교를 포함한 고대 동방기독교의 전파상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781년 세워진 이 비는 로마를 '대진', 기독교를 '경교'라고 표기한 것으로 머리부분에는 '大秦景敎流行中國碑(대진경교류행중국비)'라는 9자가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본체에는 한자와 고대 로마어로 당나라 시대에 페르시아의 알루뱅에 의해 중국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내용이 씌어 있다. 또 교회가 생기게 된 과정, 교리 등이 새겨져 있다.

재미있는 일은 땅속에 묻혀있던 이것을 발견할 당시 영국의 윌슨이라는 사람이 이 비석을 사고자 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자 탁본을 해가서 이를 보고 다시 비석으로 새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조품이 전 세계에 4개나 된다고 한다.

또 2실에는 당나라 안진경의 풍만한 필체와 유공권의 해서체, 왕희지체, 구양순체 등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비석이 있다. 고대 서예 대가들의 각종 글씨체로 이루어진 비석들이 산재해 있어 이 비림이 서예연구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3실로 가니 구멍이 뻥 뚫린 비석이 있다. 모두 제주도의 대문처럼 나무를 끼웠을 것이란 추측을 했지만 사실 이것은 해시계의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비석의 초기 형태는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니고 관 위에 덮는 형태였다. 오시가 되어 해가 그 구멍에 그림자 없이 비칠 때 비로소 나머지 흙을 덮었다고 한다.

조조를 단념시킨 관우가 유비에게 보낸 댓잎 편지 '관제시죽'

제4실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관우가 유비에게 보낸 '관제시죽(關帝詩竹)'과 달마에 관한 '달마동도도(達磨東渡圖)', '달마면벽도(達摩面壁圖)'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 관우가 유비에게 충성을 확인한 관제시죽
ⓒ 조수영
不謝東君意(불사동군의)
丹靑獨立名(단청독립명)
莫嫌孤葉淡(막혐고엽담)
終久不凋零(종구불조령)

동군(조조)의 후의에 감사하고픈 마음은 없네
홀로 붉은 마음으로 청청한 이름을 세우려 하네
다른 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 외로이 남은 나뭇잎을 싫다 하지 말게
끝끝내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리니


관우는 위, 촉, 오의 삼국이 각축을 벌일 때 금전과 명예를 초탈하여 존경받은 인물이다. 그의 덕과 용기를 기려 사람들은 그 호칭을 성인의 반열에까지 높여 '관제(關帝)'라고 부른다. 조조는 이런 관우를 휘하에 두기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지만 관우의 마음은 한결같이 도원결의의 주군인 유비에게 가 있었다.

얼핏 보면 대나무 그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댓잎으로 교묘하게 쓴 편지인데, 그 뜻을 알아차린 조조는 자기의 노력이 헛수고임을 알고 그를 단념했다고 한다. 그림으로 편지를 쓰려고 한 발상도 기발하지만, 그것을 한눈에 알아차린 조조 또한 영명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 달마동도도와 달마면벽도
ⓒ 조수영
달마의 비석은 유리에 싸여 '관제시죽' 앞쪽에 있다. 달마는 원래 남인도 향지국의 왕자였으나 출가하여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에 통달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기 위해 당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달마동도도는 달마가 양쯔강을 건너는 장면을 그린 것이고, 달마면벽도는 9년 동안 소림사 달마굴에서 벽을 쳐다보고 수련중인 모습을 담은 것이다.

"달마 스님이 갈잎과 같이 작은 배를 타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작은 배를 아예 갈잎으로 그려버렸다. 각진 부분은 강하게 새기는 각법으로 제작하여 더욱 그림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 탁본을 떠서 판매하기도 한다.
ⓒ 조수영

덧붙이는 글 | * 12부의 경서 - 역(易), 서(書), 시(詩),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 좌전(左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효경(孝經), 논어(論語), 이아(爾雅)

* 연호-왕조의 연도를 기록하지 않고 군주의 재위에 따라서 부르는 것. 예를 들어 문종의 재위기간은 개성년, 현종의 재위기간은 개원으로 부른다.


태그:#실크로드, #비림, #당경운종, #달마동도도, #개성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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