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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목사 순교문제'를 처음 기사화했던 김종성 기자의 동북아 진단에 대한 반론 기사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반론 내지는 해명 없이 '토마스목사는 어떻게 죽었는가?'라는 김 기자의 일방적인 글이 다시 올라왔다. 양쪽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면서 이 기사를 올린다. <필자 주>

먼저 '토마스목사는 조선복음화를 위한 순교자였다'는 기사에서 필자는 기독교 순교문제는 기독교계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단언했다. 기독교계가 이차돈이 불교를 위해 순교했던 최제우가 동학을 위해 순교했던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문제는 기독교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독교계 대부분 순교자들의 죽음이 정치적 이유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죽음을 모두 순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두 번째, 토마스목사의 마지막 죽음의 태도가 어떠했느냐를 그분을 순교자로 칭하느냐 마느냐의 근본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선교사가 왜 조선땅에 그렇게 가려고 했었느냐?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느냐가 더 큰 무게중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이 구차한 것인지 묻고 싶다.

만약 배교를 강요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걸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조선관리가 죽음을 위협하는 그 순간 배교의 문제가 아닌 생사의 문제가 걸린 시점에서 김 기자는 살려달라고 하지 않을 것인지 묻고 싶다.

그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기 때문에 순교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는가? 조선군에 사로잡힌 그는 그후 그는 백성에게 넘겨져 맞아 죽었다. 그사이에 죽음을 체념하고 자신이 소지했던 성경을 전달했는지 안 했는지 김 기자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성경을 넘겨줬어도 조선 관리들이 그것을 기록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따라서 그의 체포 당시에 그의 태도 때문에 순교자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세 번째, 김 기자는 자신의 의견에 대한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너럴 셔먼호를 거의 해적선에 비유했다. 제너럴 셔먼호가 해적 같은 일을 했는가와 해전선이었는가는 분리되어야 한다. 이 배가 해적선이었다면 처음 중국에서 출항할 때 토마스 선교사는 해적선 앞잡이가 되기 위해 승선하게 되었다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 증거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한 김 기자의 답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그러면서 다음 기사에서 미국 외무성 자료를 운운하고 있다. 미국이 해적선을 이용해 한국에 개방을 요구했다는 말인지 역시 묻고 싶다.

네 번째, 김 기자는 셔먼호의 만행에 토마스목사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그는 통역이었다. 통역의 역할은 역시 통역하는 그것이었다. 조선사람들 눈엔 토마스 선교사가 마치 어떤 권위가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 기자도 인용한 <평양지>의 기록에 의하면 토마스 선교사가 체포 후 셔먼호에 잔당을 불러내 오면 잘 대접해 주겠다는 조선관리의 말에 따라 편지를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셔먼호는 오히려 조선군을 공격했다. 그가 셔먼호의 책임 있는 지도자였다면 셔먼호의 선원들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그의 편지를 무시하고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겠는가? 이 또한 김기자의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역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다섯 번째, 도대체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문제가 동북아 진단에 왜 그렇게 중요한가? 토마스 선교사 문제가 빠지면 동북아 역사 바로 세우기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일까? 토마스 목사의 순교 여부에 관계없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신미양요로 연결되었다. 영국인 선교사 문제로 미국이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일반 사학계에서 구한말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에 나타난 토마스 목사의 문제는 편린에 불과할 뿐이다. 즉 토마스 목사 사건이 빠져도 이 사건은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이란 사건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 김 기자가 토마스 목사 순교에 매달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여섯째, 과연 토마스 목사가 순교할 당시 그가 강자의 편에 서 있었는가? 신미양요 이후라면 몰라도 한 척의 상선이 강자의 편이라고 어떻게 단정한단 말인가? 공식적으로 미국을 대표하고 온 배도 아닌데다가 (아마도 조선백성들은 미국이란 나라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상선 한 척이 그 당시 열강으로 조선 백성들에게 이해됐을 것이란 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현재 우리가 셔먼호 사건을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과 연결하는 것은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지 당시 조선백성들이 그렇게 이해했다는 말과는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당시 토마스 목사가 강자의 편에서 죽었다는 김 기자의 논리는 허구이다.

일곱째, 김 기자는 짐짓 조선백성을 아주 성품이 양순하고 선교사에게 관대한 백성이어서 성경을 나눠주는 토마스 목사를 잔혹하게 죽일 무지몽매한 백성들이 아닐 것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당시 상황이 그러한가? 조선관리와 군인들 그리고 백성들은 흥분해 있었다. 설령 그가 양식을 나눠주려 했어도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분노한 백성들이 자신에게 성경 한 권을 전해준다고 목숨을 살려준단 말인가? 그럼 성경을 나눠주는 토마스를 죽인 것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토마스 목사를 죽인 것은 어느 쪽이 더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 기자의 논리대로면 살려달라는 포로를 살해한 것이 더 비인간적이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 기자는 그렇게 표현함으로 일반 독자들의 민족주의에 기대어 심정적 지지를 받기를 희망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나는 당시 조선백성의 행동이 상식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공격을 받았고 당연히 응전했으며 사로잡힌 적을 사살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극도로 흥분하고 분노한 그 상황에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덟째, 김기자가 처음 이 글을 쓴 것은 구한말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의 이전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너럴 셔먼호와 신미양요 문제를 거론하려면 차라리 그 배의 통역인 토마스 목사가 어떠했는가보다 선주 프레스톤과 선장 페이지가 무슨 의도로 조선에 왔는지를 더 조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미국을 무슨 생각에서 출발했는지, 왜 중국에서 머물렀는지, 어떤 이유로 영국해운상사와 용선계약을 맺었는지 등을 연구해야 제너럴 셔먼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더 분명해 질 것으로 사료된다. 만약 그 배의 통역이었던 토마스 목사가 그토록 구한말 역사 바로 세우기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선주와 선장 외에 당시 승선했던 나머지 다섯 명의 백인들에 대한 연구는 왜 하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해 김 기자의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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