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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대 정문의 커다란 '오메가(Ω)'. 그리스 자모의 맨 끝자로 끝 ·최후라는 뜻이다. 성서에 "나는 알파요 오메가니라"라고 지극히 높은 존재임을 비유한 말이 있다.
ⓒ 안윤학

신학과 종교학을 함께 공부해온 나는 유일신 신앙과 다양한 종교 현상의 관계에 늘 관심이 있었다.

식구들이 밖으로 흩어져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한 가족이라 불릴 만한 어떤 점을 공유하고 있듯, 더 나아가 인간 군상이 아무리 다양해도 인간은 인간이듯, 다양한 종교 현상들 간에는 차별성도 있지만 깊은 차원에서 유사성도 크다는 사실에 늘 마음이 끌렸다.

개성·차이 등을 존중하는 시대이지만, 상대를 충분히 이해한 뒤 보게 되는 '차이'와 전혀 이해해 보지도 않은 채 겉만 보고 판단하는 '차이'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기에,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자가 상대방과의 조화·관용으로 나타난다면, 후자는 무관심·대립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종교들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이들간 유사성을 보는 일은 종교들 간 갈등 요인이 잠재해있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불교로 인해 기독교적 세계관의 확장과 심화를 경험한 내게는 더 그랬다. 그로 인해 목회의 길로까지 들어서게 된 나는 지난 이십여년 간 대화에 힘써오면서 이와 관련해서는 누구보다도 할말이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3년 전 본존불 앞에 엎드려 절한 나, 그 이후...

1999년 9월 나는 강남대학교의 교양필수과목 '기독교와 현대사회'를 담당하는 2년 임기의 '강의전담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러다 정확히 2년 후 '강의전담전임강사'로 재임용되었고, 한달 후 '강의전담조교수'로 승진했다. 학교에서는 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인적자원부에 나를 '조교수'로 보고했다. 나는 교내적으로는 '강의전담조교수'였지만 대외적으로는, 특히 교육부상으로는 '조교수'였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민망함을 무릅쓰고 굳이 자평하자면, 나는 비교적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는, 비교적 성실한 교수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던 2003년 10월 어느 날, 우리 사회에 종교적·이념적 다양성을 용납하고 차이에 대한 관용성을 알리기 위해 신설되었다는 EBS TV의 <똘레랑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극단적 배타성 때문에 개신교를 혐오하게 된 이 프로그램의 불자 피디는 종교간 대화의 자세를 결론으로 삼으려는 프로그램이니만큼 사찰을 배경으로 인터뷰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당시 내가 목회하던 교회 예배 장면을 먼저 녹화한 뒤 교인들 몇과 함께 교회 인근의 한 사찰로 향했다.

대웅전 앞에 이르렀다. '혹시' 하는 생각이 1초 정도 스쳐가기는 했지만, 개신교가 그렇게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이럴 때일수록 종교간 조화와 관용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래서 대웅전 본존불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 어느 정도 예를 갖추어서…. 그것이 TV 화면에 살짝 비췄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꿨다.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우상숭배'?... 그래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고 하는 개신교 보수연합단체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단군을 중시한 나에 대해 학교 측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알려달라며 강남대 총장 앞으로 항의 공문을 보냈다. 학교 교목실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 나의 강의를 제한시켜달라고 교무처에 요청했다.

내가 학교 측의 요청에 따라 저간의 상황을 담은 경위서를 제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수면 아래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교목실에서는 그 뒤 나의 교내 강의에 대해 일종의 '내사'를 했다. 종교적 다양성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가르치던 내 강의가 기독교적 정체성을 흔들어놓는다며 나의 기독교 강의를 제한시켜달라는 요청을 이미 몇 차례 올려놓고 있었다. 대학교회 담임목사가 학기 중에 느닷없이 교수로 임용되면서 다음 학기 내가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강의를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일도 생겨났다.

왜 이렇게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지, 그런 식의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일종의 종교적 살기(殺氣)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불상 앞에 절했던 '전력'은 틈만 나면 어디선가 소문처럼 흘러나왔다.

이미 마무리된 일을 왜 두고두고 문제삼는지, 생명을 살려야 하는 신앙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생명적인 일에 그저 착잡할 뿐이었다. 예수는 율법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문자주의 율법가들에 의해 희생되었는데, 예수를 따른다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똑같이 그 율법가의 편에 서는 듯 하여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의 행위가 부당하기는커녕 성숙하고 지성적인 신앙의 반영이었다는 자신감이 내게 위로를 주었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았다. 그리고 교내 대다수 교수들도 나에 대해 호의적이었기에 그 이상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느닷없이 날아온 '재임용 거부' 내용증명

그렇지만 물밑에서는 일이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TV 출연 후 2년 반 쯤 지나고 난 2006년 1월 초, 느닷없이 내용증명 우편물 사본을 한 장 받았다. 나의 교수 재임용을 거부한다는, 일종의 해임 통고문 같은 것이었다. (강의전담) 부교수로의 승진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지만, 승진은커녕 나의 강의 중 창학 이념(기독교 정신, 홍익인간)에 적합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고 있어서 재임용할 수 없다는 한 문장만 달랑 들어있었다.

어떻게 당사자와 진지한 논의 한 번 하지 않은 채, 3년 전 단 한 차례 있었던 사건을 여전히 들먹이며 우편물 한 장으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가볍게 심판할 수 있는지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긴장되고 심장도 뛰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어서 학교에 재심요청서를 냈다. 당시 나는 교내 교수들 중 연구 실적이 제법 높은 편이었고 학생들의 강의 평가점수도 평균 정도는 되었다(싫어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기독교 관련 교양필수 과목임을 감안하면 실상은 높은 편이다).

각종 학회 임원을 맡아 활동하는 등 사회봉사 영역에서도 딱히 부족할 것이 없었다. 대학 교수를 평가하는 기준에 적어도 객관적인 차원에서 모자랄 만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는 오로지 교목실의 입장에만 귀기울이며 그저 나의 종교적 입장만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그 자세라는 것이 이 시대의 양식있는 신학자나 종교학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도리어 성숙한 신앙과 학문의 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는데, 그것이 마치 큰 범죄라도 되는 냥 내내 해직의 이유로 내세웠다.

교내 여론은 전반적으로 교목실이 주도하는 학교 측의 결정에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동료 교수들도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며 대부분 긍정적인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참석시키지 않고 교목실 목사 두 사람을 재심위원으로 참여시킨 데서 알 수 있듯이, 재심위원회는 애당초 교목실의 목소리에만 경도되어 있었다.

교수가 학생의 위로 받고 눈물을 삼키다

▲ 7월 18일 청담사거리에 위치한 강남대 법인사무실 앞에서 열린 캠페인 모습
ⓒ 인권실천시민연대
결국 나는 1월 27일자로 재임용이 최종 거부되었다. 방학 중이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50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또 서명서에 직접 사인을 해가며 대거 교목실에 항의하고 나를 옹호했다. 그러나 학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내 침묵만 지켰다.

그 과정에 동참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던 나의 심경은 꽤 복잡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실명을 밝혀가며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 학교와 교목실을 비판하고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어떤 학생의 글을 혼자 읽으면서 남몰래 눈물도 삼켰다. 교수가 학생의 위로를 받는 뜨거운 느낌이 남달랐다. 그 학생은 언론사에 이 사실을 알렸고 다른 대학의 한 교수가 도와주면서 이 일이 <한겨레신문(3월 8일자)>에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었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즉각 내 연구실을 폐쇄했고 교내 인터넷 아이디도 삭제했다. 학교에 나갔다가 내 연구실이 내 열쇠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학교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답지 않았다. 그 뒤 나는 내 책, 내 물건을 내 손으로 꺼내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학교 밖에서는 나에게 동조해주는 사람이 늘어났고, 급기야 35개의 사회 및 종교단체들로 구성된 대책위(강남대이찬수교수부당해직사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까지 꾸려지게 되었다.

인권실천시민연대·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의 단체가 해직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내 일은 교원의 신분과 인권, 학교 내 종교 자유 등의 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내 인생에 대단히 중요한 경험들이었다. 내게는 모든 것들이 인생을 밋밋하게만 살지 말고 좀 더 역동적으로 진리에 부합하게 실천하며 살라는 하늘의 뜻으로 여겨졌다.

교육부, 재임용 거부는 부당하다고 결론냈지만

나는 교육인적자원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임용거부취소청구서'를 제출했다. 과연 이런 일이 교수 재임용 거부 내지는 해직의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대학 교육의 관리 감독 기관인 교육부에서 정당하게 판결해주기를 바랬다.

강남대학교 측에서는 내가 소청심사청구서를 제출할 자격이 없는 비전임 교수라는 느닷없는 카드를 들고 교육부에 맞섰고, 불상 앞에 절한 교수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가르치게 할 수 있겠냐며 심사위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는 80여일 정도의 심사 끝에 지난 5월 1일자로 나에 대한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는 심히 부당하며, 따라서 학교 측이 내린 결정의 효력을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려주었다. 판결문의 결론만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청구인(이찬수)은 피청구인(강남대학교총장) 정관의 교원임용절차에 의하여 강의전담조교수로 임용되고,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관련 기관에 교원으로 보고 되었음을 볼 때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제9조에 해당되는 교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체 규정인 강의전담교원인사규정 제16조의 재임용 및 승진 임용 제한 규정에 의하여 청구인의 행위가 창학이념에 적합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사유로 재임용 계약 부적격자라 하여 재임용계약에서 탈락시킨 것은 평가 기준이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라 할 수 있어 심히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상위 관련법인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7항의 재임용 심사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에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피청구인이 2006.1.27. 청구인에게 한 재임용거부처분을 취소한다."


이 결정문을 전후로 학교는 내내 침묵만 지키다가 급기야 7월 11일자로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피고로 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립학교는 건학 이념을 수호할 의무가 있으며 종교혼합주의자인 이찬수를 재임용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는 논지였다.

교수 하나 자르기 위해 일간지에 전면광고?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인지 7월 18일자 <국민일보>와 23일자 <기독교신문>에는 강남대학교총동문회임원회 및 강남대학교동문목회자협의회전권위원회 이름으로 종교혼합주의자 이찬수씨를 강남대 교단에 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전면광고를 실었다.

정말로 동문회 전체도 아닌 소수 임원회와 위원회가 수천만원이나 하는 일간지 전면광고료를 지불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무엇보다 그 광고 내용에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광고에 실린 원색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적 언어는 차치하고라도,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혼합주의자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혼합신앙을 가르쳐본 적도 없는데, 엄청난 지면의 전면 광고는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표현과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명색이 대학이라는 곳에서 왜 그렇게 불합리하게 일처리를 하고 또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는지…. 교수 한 사람 '짜르기' 위해서 정말 일간지 전면광고까지 실었어야 했는지 나는 정말 두고두고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수재의연금이나 낼 일이지.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이 수해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던 지난달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보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과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이가 예수라고 고백하면서 그 삶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이들 아니던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어디 있던가? 불교 안에는 하나님이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없는 곳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무한자가 아니라, 제한된 유한자일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불교 안에도 계신다

그리고 예수는 누구인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과 거리가 먼 죄인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 하나님은 도리어 죄인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선포하고 보여준 분이다. '하나님이 자비하시니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어야 한다'며 자비를 실천한 분이다.

'자비'의 '자(慈)'는 기쁨을 더해주고 '비(悲)'는 슬픔을 빼주는 행위로서, 본래는 불교 용어이다. '사랑'과 이음동의어인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예수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의 행동에 대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다가 죽어갔다.

그런데 용서는커녕(실상 용서받아야 할만한 죄를 짓지도 않았지만) '불상참배자'가 어떻게 기독교를 가르치느냐며 나에게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리고자 했던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주로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일간지에 광고를 실으며 나의 '불상참배'가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죽어간 순교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참으로 무례한 언사들을 늘어놓았다.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남긴 진리를 온 몸으로 실천하려는 이 땅의 천만 불자들이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이들이며, 일제시대 신사참배자들과 같은 반민족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놓는 꼴이다.

도대체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일간지에다가 그런 무지한 표현들을 실어놓을 수 있는 배포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풀면 어떤 것이든 하나님보다 더 높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약성서에서 우상숭배라는 말은 '음행' '탐욕' 등 '세상적인 일에 마음을 쓰는 행동'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 정도로만 쓰인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인간적인 욕심 안에 가두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때는 하늘에 모셔두고 무관심해하다가 아쉬울 때 '하느님' '예수님' 하며 찾는 그런 수준이라면 하느님을 자신의 욕심 안에 가두는 행위이니, 그것이야말로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흙이나 청동으로 만든 자연 형상 자체를 신이라 생각하고 그것에서 복을 구하겠는가? 또 그런 이가 있다 한들 얼마나 되겠는가?

절이란 형상 너머의 진리에 일종의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창을 통해 밖의 경치를 보듯이, 형상 너머의 진리를 형상을 통해 보고자 하는 행위인 것이다.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일단 이해는 해보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채 이른바 '우상'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뒤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으면 쉽사리 단죄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렇게 단죄되어서 죽은 예수를 오늘 다시 죽이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인처럼 죽은 예수가 도리어 의인이라고 믿는 이들이라면서도, 상당수는 여전히 예수를 단죄하는 자리에 선다. 율법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례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 이찬수 전 교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무소부재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신다(에베소서 4,6)" 당연히 세상 천지는 하나님의 일터이다. 깊은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인생의 전환을 경험해온 다른 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배타하기보다는 그 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속되고 더러운 것을 먹은 적도 없고 먹을 수도 없다'며 자신하던 베드로에게 들려온 하늘의 음성을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사도행전 10,15)." 정말 속된 것은 속되지 않은 것을 속되다고 쉽사리 판단하는 무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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