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라운드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일본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고있다.
ⓒ AP/연합뉴스
"한국 야구 대표팀이 미국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꽂았다. …서재응은 태극기를 투수 마운드 중앙에 꽂아 세우고 활짝 펼친 뒤 감격에 겨운 듯 입을 맞췄다. 서재응의 '태극기 세레모니'는 마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한 뒤 태극기를 꽂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한국 교민들은 함성을 질렀고 일본 팬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16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 승리한 뒤 벌어진 '태극기 꽂기 세레모니'에 대한 한 언론의 보도입니다. 또한 그런 모습을 본 경기장의 한국 교민들과 네티즌들도 감동하고 갈채를 보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 매체에서도 '미국 심장부에 태극기를 꽂았다'며 비슷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한-일전 승리의 감격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태극기 꽂기 세레모니'와 그에 대한 일부 언론의 관성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그것도 프로야구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벌어진 한-일전 승리가 젊은 선수들을 들뜨게 만들었고, 그와 같은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국가 대항전이라고 하더라도, 스포츠라면 '승자의 예의'를 지켰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수는 아니지만, '자유인'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처럼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의 세레모니 중에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행위는 스포츠맨의 정신이 아닐뿐더러, 승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자유인의 댓글에 딸린 또다른 댓글들도 자유인의 생각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인의 의견을 곰곰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발 더 나가, '태극기 꽂기 세레모니'를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기쁨에 비유한 걸 보면서 더욱 우려가 들었습니다. 정복의 사전적 의미는 '정벌하여 복종시킨다'는 것입니다. 스포츠가 상대를 정벌하고 복종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더욱이 '정복'이라는 단어는 산악인들도 자연에 대한 모독이라며 금기시하는 단어라 '등정'으로 표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그와 같은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를 꽂은' 행위나, 그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국수주의로 비쳐질 수 있지 않을까요. 승리한 쪽에서야 '뭐가 대수냐'고 할지 몰라도, 패배한 쪽에서는 경기에서도 지고 경기 후에는 감정까지 짓밟히는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한국이 경기에서 진 뒤 일본이 일장기를 투수 마운드에 꽂았다고 한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온국민의 관심 속에 벌어진 중요한 경기였기에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기쁨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TV로만 경기를 지켜본 관중들도 감격하고 목청을 높였는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태극기 꽂기 세레모니'는 그런 와중에 벌어진 돌발적인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 장면이 찜찜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이 장면을 봤던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서재응 태극기 세리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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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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