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영표 선수,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리는 프리미어리그의 현장을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들을 안방에서 매우 친숙하게 접할 수 있다. 그들이 뛰는 생생한 현장을 우리가 안방에서 경험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박지성·이영표 선수가 뛰는 현장이 우리 안방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12일 밤, MBC ESPN의 방송 현장에서 함께 경험해봤다.

방송 시작 전

 방송 시작 30분전 스튜디오실, 해설자와 캐스터는 2대의 TV를 보며 해설을 진행한다.
ⓒ 엄두영

"아스널과 볼튼의 경기에서 아스널이 비기는 바람에 승점 1점 밖에 추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토트넘은 최하위팀인 선더랜드를 맞아 반드시 승점 3점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나 토트넘 홋스퍼는 원정 경기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원정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하고 있어요."

9시40분 분장실, 토트넘과 선더랜드의 이영표 선수 복귀전 경기는 10시 10분에 시작되지만 장지현 해설위원과 정우영 캐스터는 Q 시트에 나온 순서대로 서로 말을 맞춰가며 연습하고 있다.

"졸음 극복 문제가 제일 심하죠. 아무래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밤이 늦은 시각이나 새벽에 주로 경기를 하다 보니 시차 적응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문제에요."

한밤에 경기 중계를 해서 애로사항이 많겠다는 질문에 대한 장지현씨의 대답이다. 인터넷 매체인 풋볼 2.0에서 현재도 낮에 해설을 하고 있는 장지현씨는 밤에 해설을 겸하게 된 지 한 달 남짓 된 현재 아직도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를 한다. 그리고 추위를 잘 타는데 스튜디오에서는 방송을 할 때마다 에어컨을 틀기 때문에 추위를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숙제라며 이내 정우영씨와 오프닝 멘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두 차례나 경기를 뛰니 힘드네요." 아침에 코스타리카와의 국가대표 경기 해설 중계를 했던 정우영씨가 오늘 밤에도 늦게 해설에 투입되면서 밝히는 소감이다. "그래도 2~30분씩 잠을 자니까 견딜 수는 있어요." 정씨는 밝은 표정으로 이곳 분장실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 피로를 푼다고 말하며,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는 말도 곁들인다. 다시 Q 시트를 확인하며 방송에 대한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약간의 긴장감도 엿볼 수 있다.

9시50분 스튜디오 B실, 장지현씨가 먼저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스튜디오를 떠나서는 안 된다. 정우영씨가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해 마실 물을 준비해온다. 시작 시간은 아직 20분이나 남았는데 그들은 다시 분장실에서 연습한 것과 같이 말을 맞춰본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어랑경 PD가 TV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 엄두영
9시54분 부조정실, "아직 안 떴어. 큰일인데." PD가 실시간 인터넷 중계를 해주는 < sportinglife.com >에서 양 팀 출전 선수 명단이 아직 인터넷에 발표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며 걱정스럽게 하는 혼잣말이다. 어제 맨유와 포츠머스의 경기 당시 취재를 온 적이 있는 터라 기자가 용기를 내어 출전 유무를 확인하겠다는 말을 건넨다. "선배님, 이영표 선수 오늘 골 넣으면 첫 골이죠?" 옆에서는 문자그래픽을 담당하는 장경희양이 오늘 이영표 선수가 골을 넣을 것을 대비해 화면에 들어가는 문자를 만들고 있다.

10시5분, 찬 공기가 감도는 부조정실에서는 방송을 몇 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돈다. PD는 자꾸 기자에게로 와서 양 팀 출전 선수 명단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가를 확인한다. 스튜디오의 두 사람에게는 방송이 10분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스튜디오에서 양 팀 출전 선수 명단을 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PD가 기자를 향해 뒤돌아본다. 기자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고 손을 휘젓는다. 초조함이 부조정실을 감싼다.

10시 7분, 선수 명단에 대해 캐스터와 PD가 말을 주고받는다. 기자가 아직 선수 명단이 발표되지 않았다는 상황을 보고하자 PD가 초조해한다. PD는 처음 겪어보는 늦은 선수명단 발표에 약간은 당황해 하며 할 수 없다는 듯 최종 방송 시작 점검을 마친다. 스튜디오의 두 사람에게 방송은 토트넘과 찰튼의 지난 경기 하이라이트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방송 시작

 부조정실에서 자막 사인을 내고 있는 어랑경 PD
ⓒ 엄두영
10시10분, "인(in)", "아웃(out)" PD가 문자그래픽 담당 장경희양에게 손짓과 함께 문자를 넣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토트넘과 선더랜드' 경기의 문자가 뜨며 방송이 시작된다. 아직 출전 선수 명단은 감감 무소식이다. 이영표 선수의 복귀전이라는 예고도 하고 방송 문자에도 그대로 나갔는데, 아직 출전 선수 명단이 발표되지 않는다. 만약 이영표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전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광고가 먼저 시작된다.

10시17분, "나왔어요! 선수 명단 나왔어요! 이영표 선수 나와요!" 기자가 급히 PD를 부른다. 큰 소리로 부르는 토트넘 선수 번호를 PD는 황급히 받아 적는다. PD는 번호를 다 받아 적자 스튜디오에 있는 두 사람에게 선수 명단을 알려준다. 다행히 TV에서는 아직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앞으로 1분 후면 광고도 끝난다.

10시18분, TV 속에서는 정우영씨와 장지현씨가 분장실에서 연습했던 멘트를 방송에 쏟아내고 있다. 곧이어 이영표 선수의 출국 인터뷰 기사, 지난 경기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그동안 다른 화면 속에 비친 스튜디오 화면에서는 두 사람이 출전 선수 명단을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경기는 10시30분에 시작된다.

10시30분, 경기가 시작된다.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부조정실 사람들은 한 시름 놓은 듯 방송 전 가졌던 긴장감을 털어내고 있다. 부조정실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갔다 온다.

11시, "아… 토트넘 왜 이래." PD가 다시 초조해한다. 전반 30분이 지난 현재 양 팀 합쳐 선더랜드만 슛이 1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면 전반 하이라이트를 어떻게 만들어." 양 팀의 경기가 시작한 지 30분째 소강상태다. 한시름 위기를 넘긴 줄 알았는데 전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야만 하는 PD의 입장으로서는 전반전의 지루한 경기가 오히려 더 초조감을 키울 뿐이다. 몇 분 뒤 선더랜드 문전에서 로비 킨 선수가 이영표 선수와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토트넘의 첫 슈팅을 기록한다. 이후 수차례의 공세 끝에 결국 전반 38분 로비 킨 선수가 득점을 성공시키자 부조정실은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PD는 걱정이 한시름 놓인 듯 예의 밝은 표정으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11시17분, 전반전이 끝나고 광고가 나간다. 부조정실은 다시 긴장이 흐른다. "인(in)", "아웃(out)" PD의 외침에 따라 문자를 넣었다 빼며 스튜디오에서 해설하고 있는 진행자들과 부조정실의 5명의 사람들이 보조를 맞춰나가고 있다. "딱딱 맞아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기자가 잠깐 쉴 틈을 이용해 묻는다. "그럼요. 아니면 방송 사고에요."

11시28분, 후반전이 시작된다. 선더랜드에서 케빈 카일이 교체 투입된다. 아래 카일 선수 정보에 대한 문자가 나간다. "아, 키가 잘못 나왔네요. 케빈 카일 선수의 키는 193센티인데요." 장지현씨가 공중파 방송에 쏟아낸 말이다. 일순간 PD가 깜짝 놀란다. 함께 장경희양도 당황스러워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카일의 키가 193센티라고 알려준다. "방송 사고네…." PD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이런 경우는 가끔 발생한다. PD와 해설자가 찾는 정보의 원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히 PD도 선수의 정보를 찾지만, 정보를 찾은 곳에서 잘못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면 시청자들에게 거짓된 정보를 말해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가 가끔 나온다고 멋쩍게 말하면서 문자 정보를 다시 수정한다. PD의 입에서 한숨이 배어 나온다.

0시12분, 경기 1분을 남겨 놓고 토트넘이 실점을 한다. 1대1 동점이다. 승점 3점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부조정실에서는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와 함께 득점한 선수를 막지 못한 토트넘 선수를 질책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부조정실 사람들은 아쉬워할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다시 한 번 PD와 문자기록원이 바빠진다.

경기가 끝난 후

 방송이 끝난 후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어랑경 PD
ⓒ 엄두영
0시16분, 경기는 끝났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전반전이 끝난 후의 상황과 유사하게 PD, 문자기록원, 해설위원과 아나운서가 이날 경기의 해설과 다음 경기 전망 그리고 토트넘의 경기 일정 등에 대해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며 방송을 부드럽게 마무리하고 있다. 해설 위원과 아나운서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TV에서는 주요 하이라이트가 화면에 방영되면서 광고로 넘어가는 과정을 PD가 진두지휘 한다. 경기가 끝난 후 광고는 5분 정도 지속된다. 그동안에도 부조정실에서는 누구 하나 발을 떼고 있지 않는다. 광고가 끝나고 최종적으로 '다음 이 시간에…'라는 문자가 뜬 이후 부조정실에서는 한 시름 놓은 듯 수고하셨다는 말들이 오고 간다.

0시24분, "아까 실수했던 케빈 카일 키 다시 잘 입력하자." PD가 장경희 양에게 말을 건넨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재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공중파방송과 케이블의 제일 큰 특징이죠." 방송은 모두 끝났지만 아직 할 일은 다 끝난 것이 아니라며 후반 작업을 묵묵히 진행하는 PD의 모습을 보며, 방에 누워서 군것질을 하며 관전하던 축구 중계가 수많은 노력과 여러 손길이 함께 만들어낸 멋진 합작품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취재에 협조해주신 MBC ESPN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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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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