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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엮어서 걸어놓은 굴비 좀 보세요,
ⓒ 이승철
우리 민족 전통의 최대명절 설이 가까워오는데도 대개의 재래시장들은 경기가 없다는 푸념입니다. 사는 것이 넉넉한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찾지 않고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로 가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수입이 있고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재래시장을 기피하는 풍조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설 명절에 빼놓지 않는 차례 상 차리기의 장보기는 재래시장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어느 조사기관의 통계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설을 앞두고 서울의 재래시장들 중에서 건어물전문시장으로 유명한 중구에 있는 중부시장을 찾아보았습니다.

26일, 설을 3일 앞두고 찾은 중구 오장동 중부시장은 상당히 활기찼습니다. 시장골목에 들어서니 우선 푸짐하고 가지런하게 쌓여 있는 건어물들이 건어물이 아니라 예술품처럼 보여 신기했습니다. 줄줄이 엮어 걸어놓은 굴비며 맵시 있게 포장한 황태, 골고루 진열해놓은 멸치까지도 정말 예술입니다.

▲ 러시아산 통대구랍니다.
ⓒ 이승철
▲ 소복소복 담아놓은 말린새우
ⓒ 이승철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시간인 오전 11시경인데도 가게마다 한두 사람씩 흥정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제법 쓸 만한 20마리 굴비 한 두름에 2만 5천 원을 부르자 40대 아주머니는 2만원에 달라고 흥정을 합니다. 그 정도의 굴비가 어느 백화점 매장에서는 5만원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리해서 맛까지 비교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 외견상으로는 품질이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2천 원을 깎아 2만 3천원에 사가지고 갔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상인아주머니의 인사성이 매우 좋아 보입니다.

"값을 깎아줘서 별로 남긴 것이 없겠네요?"
"어차피 천원떼긴 걸요. 뭘…."

"저 정도 큰 굴비가 백화점에서는 5만원이 넘는 것 같던데 여긴 너무 싸게 파는 것 아닙니까?"
"아마 그럴 걸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과 돈 있는 사람들은 다들 백화점만 찾는데요, 뭘. 우리야 도매시장이니까 조금씩만 붙여서 싸게 파는 겁니다."

굴비의 크기와 값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크고 빛깔 좋은 굴비는 10마리에 12만 원짜리도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저 정도 좋은 걸 백화점에 가면 20만원은 훨씬 넘게 줘야 할 것"이라고 귀띔합니다.

▲ 잘 손질하여 그냥 먹을 수 있는 황태
ⓒ 이승철
▲ 멸치가 23종류나 되네요.
ⓒ 이승철
이 중부시장을 참 오랜만에 찾았는데 건물이며 시장형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아직 이 시장에는 현대화공사를 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진열해 놓은 모습은 옛날하고는 사뭇 달라져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건어물과 상품들의 포장이나 진열이 가히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는 그저 적당히 수북수북 쌓아 놓기만 했었는데 가게마다 진열해놓은 모습들이 하나같이 깔끔하고 멋있었습니다.

손바닥처럼 벌려 꽃처럼 보이는 황태와 가지런한 흑태는 물론 러시아산이라는 통대구를 진열한 모습도 그림 같습니다. 건어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역과 김도 보기 좋게 진열해 놓았고 말린 새우를 소복소복 그릇에 담아 진열한 모습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멸치를 종류별로 담아서 진열해놓은 걸 세어보니 무려 23종류나 됩니다. 집에서 사다 먹는 걸 대충 생각해보면 다섯이나 여섯 가지 쯤 될 줄 알았는데 20가지가 넘는 멸치가 한 자리에 진열되어 있는 것도 놀랍습니다.

건어물 시장이라고 해서 건어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에는 싱싱한 생선을 파는 곳도 있었고 과일과 한과를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과일도 어른 주먹만큼씩이나 큰 배가 한 개에 천 원씩이었습니다. 오히려 사과가 조금 더 비싼 편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백화점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값이 저렴합니다.

알이 통통한 공주 밤이 한 되에 3천원~4천원. 말랑말랑 맛있어 보이는 곶감이 3개 에 1천 원씩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한 가게의 높은 벽에는 치자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 중부시장입구 간판. 전통건어물전문 도매시장이랍니다.
ⓒ 이승철
▲ 치자열매를 이렇게 엮어서 걸어놓으니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 이승철
치자를 어디에 쓰는지 아세요? 나이든 어르신들은 잘 아시겠지만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옛날에는 명절에 전을 부칠 때나 과자를 만들 때 이 치자를 이용하여 노란색이나 주황색으로 고운 음식을 만들었답니다. 사람들에게 전혀 해롭지 않은 천연색소인 것이지요. 한약재로도 이용되고 향기가 좋아서 차로도 사용되었으며 곡식이나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열매입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다가 60대 중반의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작은 휴대용 손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무엇을 그렇게 많이 사셨느냐고 물으니 설에 쓸 건어물을 샀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사오겠다는 것을 할머니가 말리고 손수 장보기에 나섰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면 얼마나 싸고 좋은데 그 비싼 백화점에서 사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야단을 치고 장보기를 맡은 거예요. 모두 넉넉하게 샀는데도 아이들이 예상했던 돈에서 7만원은 남겼다니까요."

▲ 말랑말랑 곶감 먹음직스럽지요.
ⓒ 이승철
▲ 약과도 먹기에 아까울만큼 예쁜 모습입니다.
ⓒ 이승철
종로구 청운동에 사신다는 이 할머니는 몇 십 년 째 명절과 큰 일 장보기는 이 중부시장을 이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값도 훨씬 싸고 물건들도 좋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남긴 돈은 그럼 할머니 몫이네요?"
"그럼 이건 내가 번 돈인데요…."

나오는 길에 한 가게에 들러 상인과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시장에서 설 장보기 하시면 아마 20%는 절약이 될 겁니다."

때로는 입심 좋은 상인들과 승강이도 하면서 물건 값 깎아달라고 흥정도 하고, 값도 한결 싼 재래시장에서 설 장보기를 하는 것도 전통명절을 맞는 또 다른 맛이 아닐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설 명절 즐겁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사과와 배도 참 탐스럽지요.
ⓒ 이승철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 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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