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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뻥~'하는 순간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다
ⓒ 유근종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은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설 추석과 소풍날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예전에는 좋은 옷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꼬까옷(우리 동네-경남 산청-선 설칠이라한다)을 입을 수 있는 설 명절은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였다.

요즘은 풍족한 세상이 되어 설 명절을 기다리지 않아도 사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살기가 편해진 것은 좋지만, 왠지 우리가 부족했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잊고 사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은 뭔가가 비어있는 느낌이다.

▲ 어린 시절 그 맛을 느낄수 있는 붕어빵
ⓒ 유근종
오랜만에 시골 5일장에 들렀다. 오후 시간 잠깐 짬을 내서 간 곳이 지리산 아래 산청 신등면의 장이었다. 아쉽게도 파장이라 짐을 정리하는 분도 계셨고, 마지막 남은 물건 떨이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신등면은 시골 고향집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젊은 시절 장을 보러 신등까지 자주 다녀가셨다는 얘기를 종종 들려주곤 하셨다. 할머니들은 신등의 다른 이름인 댕기(단계)장이라 부르셨는데, 아침 일찍 시골동네를 나서면 저녁 늦게야 돌아오시곤 하셨단다. 시골에서 장에 간다는 것은 어려운 시절 동네 아녀자들에겐 즐거운 잔칫날이었다.

▲ '복주머니 단돈, 1000원입니다! 복 사세요~!'
ⓒ 유근종
신등장에서 나가는 길에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파는 부부를 만났는데 내일 장에 대해서 여쭸더니 내일은 함양 안의장에 가신다기에 내일 다시 뵙자며 찍은 사진 갖다 드리마 약속하고 진주로 돌아왔다.

시장이 대개 10시에서 12시 정도에 가장 활기를 띤다는 얘기를 듣고 미리 챙겨서 나갔다. 안의장에 도착하니 어제 본 신등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 경운기를 몰고 대목장을 나선 할아버지
ⓒ 유근종
경운기를 몰고 장보러 오신 할아버지며 유모차에 꼬맹이를 앉혀서 데리고 오는 젊은 엄마들. 안의장이 크다더니 소문대로 시골장 치고는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 안의 장의 명물, 뻥튀기
ⓒ 유근종
어제 신등장에서 뻥튀기 할아버지를 못 만난 것이 가장 아쉬웠는데 오늘은 제대로 만났다. 시골장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건 단연코 뻥튀기 아저씨의 몫이다. 어린 시절 "뻥"하고 소리가 나면 다들 귀를 막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안의에 계신 뻥튀기 할아버지는 방송 출연도 해보신 경험이 있어 사진을 찍는데도 아주 자연스럽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작은 장작개비로 불을 수시로 때 가며 뻥튀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작불이 가스불로 바뀌었다. 그 시절 사진에 한 장이라도 담아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아이들도 유모차에 앉아서 시장구경을 나섰다
ⓒ 유근종
산골 주민들에겐 장날이 바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어머니께선 장에 다녀오시면 할아버지 술안주로 해삼을 잊지 않고 사오셨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젓가락질하기도 불편하고 입에서 미끈거리는 해삼을 싫어하는데 난 할아버지 덕에 해삼을 꽤나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씹을 때 나는 뽀드득하는 소리를 너무 좋아한다.

어린시절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대장간 풍경일 것이다.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겨우 볼 수 있겠지만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은 지금도 눈에 선할 것이다.

▲ 어느 대장간에서 나온 낫, 도끼, 호미들
ⓒ 유근종
나 역시 학교를 오가며 대장간 앞을 매일 지나다니기도 했고 할아버지를 따라 대장간에 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불을 때 가며 풀무질 하는 모습, 벌겋게 달군 쇠로 낫이며 호미를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장에는 어느 대장간에서 만들었는지 손으로 직접 만들었을 낫과 호미, 도끼도 보였다.

▲ 떡방앗간 아주머니의 재빠른 손놀림
ⓒ 유근종
대목시장을 다녀오면서 떡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수증기로 자욱한 떡방앗간을 들어섰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계에서 쌀을 빻아 나오는 것을 더 곱게 하기 위해 다시 올려놓고, 그것을 다시 수증기로 찌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을 기계에 넣으니 그제야 가래떡이 되어 두 줄로 나온다. 옆에 구경하던 어떤 할머니가 가래떡을 냉큼 받아서 한 입에 넣는 모습이 재미있다.

▲ 어묵을 만드는 부부
ⓒ 유근종
어제 만난 어묵 만드는 부부를 만나러 갔다. 어제 찍은 사진을 뽑아서 주기로 한 약속도 약속이지만 명절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 아저씨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다. 그 사이에서 열심히 어묵을 만들고 계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올 설 대목은 어떠냐고 여쭸더니, 작년 보다 조금 낫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날씨가 좋으니 다행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날씨가 좋지 않기라도 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니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재래시장의 단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내 대형할인마트는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는 사람들
ⓒ 유근종
이제 정말 설이 코앞에 다가왔다. 오랜만에 시골 장터를 찾았더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명절기분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재래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들이 있으니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추석이나 되어야 안의장에 올 수 있을까. 아~ 아니다. 오늘 사진 찍은 뻥튀기 아저씨께 사진 한 장 뽑아드린다 했으니 조만간 다시 한 번 더 들러봐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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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입학했고,지난 1998년과 1999년 여름 러시아를 다녀와서 2000년 졸업 뒤 사진전 "러시아 1999"를 열었으며 2000년 7월부터 2001년 추석전까지 러시아에 머물다 왔습니다. 1년간 머무르면서 50여회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며 주 관심분야는 음악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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