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정말 추억의 영화가 된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아내와의 소중했던 그 시간이 생각납니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심야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안 그래도 맞벌이에 서로 시간이 안 맞다보니 문화생활(?)이라고는 늦은 시간 동네 언저리에서 약주 한 잔, 수다 한 판이 옴팡이었는데, 투병 중이신 어머니가 특별히 등 떠밀어 주는 바람에 인근 안양에서 밤 12시 20분 표를 끊어 세간의 화제작 <왕의 남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극장 풍경 참 많이 달라졌습디다. 격세지감도 모자라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사실, 아내와 단 둘이 극장을 찾은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후 단 둘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1994)입니다. 자그만치 12년 만이네요. 부끄럽네요. 사느라 바빠 그동안 영화는 DVD로만 봤지, 단 둘이 연애시절처럼 손잡고 극장 갈 생각, 엄두도 못 냈지요. 더구나 심야영화는 젊은 연인들만 찾는 줄 알았으니….

이제 줄 서서 기다리지 마세요!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 소개

기다리지 않아 좋고, 각종 카드 할인되어 더 좋은 인터넷 예매. 인터넷 예매는 좌석이 한정되어 있으니, 서두르세요.

인터파크 http://movie.interpark.com
티켓링크 http://www.ticketlink.co.kr
맥스무비 http://www.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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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좋습디다. 평일인데도 젊은 연인들이 한 백여 쌍 모였던데, 중년 쌍은 우리 밖에 없어 좀 머쓱했습니다. 밤 12시가 넘은 그 늦은 시각에 극장 안은 무슨 불야성 같더군요. 간식 거리 파는 코너, 매표소 모두 낮이나 별반 차이 없습디다.

사실 인터넷 예매를 하려고 했는데 저런, 일찍부터 표가 매진이더군요. 알고 보니 인터넷 예매는 현장 배분용 표를 제외하고 팔기 때문에 일찍 매진된다네요. 현장에서 표를 끊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젊어 한때 극장깨나 다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추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극장 풍경

저는 주로 서울 종로 3가의 '피카디리'나 '단성사' 같은 극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나마 당시에는 제일 시설이 좋은 극장이었지요. 80년대만 하더라도 인터넷 예매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극장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는 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이 몰리는 영화의 경우에는 당연히 암표상이 들끓었지요. 여자 친구랑 모처럼 시간 냈는데 표가 매진일 경우, 웃돈을 주고라도 암표를 샀습니다. 가격은 일반 표 값의 두 배 세 배는 기본이었지요.

▲ 다 늙어서(?) 무슨 극장이냐고요? 그래도 한때 이렇게 극장에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지 않으세요? 용기를 내세요. 가정이 화목해집니다.

ⓒ 이정근

지금은 간식 거리를 상영관 안으로 사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디다. 예전에는 팝콘이다, 구운 오징어다, 한 보따리(?) 들고 들어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지요. 여기저기서 아삭아삭, 연인과 함께 간식 거리를 나누는 소리들로 좀 어수선했습니다. 간식 먹던 입으로 무예 그리 급한지 '쭉쭉', '쪽쪽' 거리며 안타까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아주 흔한 때였지요. 저요? 저는 절대 안 그랬습니다(웃음).

결혼 전, 아내와의 짧은 연애 기간(1993년 7월 말에 만나 11월 초에 결혼하기까지) 동안 단 두 편의 영화 <피아노>와 <시티 오브 조이>를 봤지요. <시티 오브 조이>를 보던 날 고생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도저히 표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턱없이 비싼 암표를 구해 극장에 들어갔는데 이런, 자리가 너무 떨어져 있는 겁니다. 저는 A열 맨 왼쪽, 아내는 D열 맨 오른쪽이라 이산가족이 될 판이었지요.

생각다 못해 가운데 계단에 손수건을 깔고 둘이 앉아, 남들이야 이상하게 보든 말든, 손 꼭 잡고 영화를 봤습니다. 제 오른쪽 어깨에 기댔던 아내의 향기로운 머리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남아 있답니다. 그날 영화보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다짐하기를, 결혼 후에도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극장에 데리고 가마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산 까닭은 순전히 저 개인의 미욱함 때문이겠지요.

요즈막에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연인석'이 따로 있더군요. 가운데 팔걸이가 없으니 맘껏 기대고 끌어안은 채 오롯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겠더라고요. 모든 좌석이 다 넓고요. 컵 걸이가 있어 마시던 음료수 깡통 내려놨다가 구르는 바람에 당황할 일도 없습니다. 앞뒤 좌석배치도 엇갈리게 해놔 저처럼 머리 큰 '대두'가 앞에 앉아 있어도 화면 가릴 일 없더군요. 아내랑 약속했습니다. 조만간 연인석을 예약해 젊은 쌍들 앞에서 시위 한 번 하자고요.

<왕의 남자> 보던 날 말인데요. 예전처럼 변하지 않은 풍속도가 있다면, 연인들의 몰래 사랑 나누기인 듯싶습니다. 어찌나 뒤에서 옆에서 '쪽쪽'거리던지 휴, 민망해서 아내와 함께 멀리 빈 자리 아무데나 찾아가 둘이만 따로 앉았지 뭡니까? 아내와 마주 보며 '씩' 웃었습니다. 기분 나쁘지는 않고 오히려 보기 좋더이다. 다만, 중년쌍은 우리 밖에 없어서 그들 언저리에 앉아있기 미안할 뿐이었지요.

이번 설, 아내와 단 둘이 영화감상 어때요?

어쨌거나 민족 최대 명절 설입니다. 벌써 고향에 가 계신 분들도 있을 테고, 지금 한창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요강이라도 준비할 걸…' 하며 차 빠지기만 애태워 기다리는 분들도 있겠지요. 힘들어도 보람 있는 귀향길이요, 고향 부모님 만나 뵙는 기쁨만으로 고생이 아깝지 않은 명절입니다. 그만, 제가 이 흥감한 명절에 어줍은 붓 놀리는 까닭을 이제는 말씀 올려야겠군요. 자꾸 에돌리지 않겠습니다.

고향 근처, 혹은 명절에 계신 곳 언저리 어떤 극장에서 무슨 영화하는지 인터넷 검색 한 번 해보시지요. 요즘 우리 영화, 참 볼 만하지 않습니까? 명절날 저녁 표 두 장 끊어놨다가, 아내 어깨가 녹신하도록 주무른 다음에 "여보, 오늘 힘들었지? 우리 잠깐 나갈까?" 하며 단 둘이 외출해보세요. 대개 아내들은 다 귀찮다고, 온몸이 욱신거린다고, 꼼짝도 하기 싫다고, 손사래 치겠지요. 하지만 결국 못 이기는 척 따라오실 걸요?

▲ 극장에 가도 볼 영화가 없다고요? <왕의 남자>는 오래간만에 장년층도 볼 수 있는 영화라네요. 사진을 보세요. 서울 피카디리 극장을 찾은 한 중년의 부부. 멋지지 않습니까?

ⓒ 이정근

툭 터놓고 하나 물읍시다. 아내랑 단 둘이 영화 보신 게 언제지요? 기억은 나세요?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 저와 비슷한 중년이고, 아내와 영화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생각해보세요. 연애할 때, 아내와 팝콘 나눠먹으며 손등이라도 부딪힐라치면 손가락이 '찌릿찌릿',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던 그때를 말입니다. 서로 한 가정 꾸리기 바빠 잊고 있었던 연애시절 알싸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시라는 간곡한 부탁이지요. 이 명절에요.

왕의 마음을 흔든 남자, 공길은 누구?
<왕의 남자> 이 정도는 알고 봅시다

젊은 배우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 여자보다 예쁘다고 인터넷 검색창이 난리도 아니었지요?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연산군일기>에 나와 있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아래 옮긴 부분이 전부입니다. 사실 공길이 여장남자였는지, 연산과 어쨌는지 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皐陶)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나 고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하고, 또 <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 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렇듯, 단 몇 줄 기록으로 이런 작품이(물론 연극을 통해 먼저) 나올 수 있다는 사실과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짧은 기록을 통해서나마 공길을 추리하건대, 꽤 유식(?)하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소설이나 희곡의 가장 큰 특성이 '허구성'이지만 '진실성'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꾸며낸 얘기를 통해 인간의 진실을 탐구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작업이며 몰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 이동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냐?

심야영화 본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군요. 아내와 이런저런, <왕의 남자>를 통해 조명해볼 수 있는 역사 얘기 나누며 새벽길을 달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자신도 일하랴 아프신 어머니 돌봐드리랴, 정신없었을 아내 얼굴에 모처럼 핀 홍조를 보니 저도 좋더군요. 주차하느라 시선이 밖에 쏠린 아내 옆모습을 보며 제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장생'이 '공길'과 한양 가는 길, 어느 언덕에서 장님 흉내 내며 주고받던 대화를 패러디했지요.

"나 여기 있는데, 당신 거기 있지?"
"뭐야? 싱겁게…. 이이는 무슨, 애들처럼 영화 흉내를…."

아내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듣지도 않고 서둘러 내립니다. 아프신 어머니가 걱정할지도 모르니 빨리 들어가자고 성화입니다. 꼭 하고 싶은 말, 할 기회를 놓친 저는 차에서 내리며 입 속에서 우물거립니다.

"바보 같은 여편네. 당신과 나, 서로에게 목숨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었는데…."

▲ 인생의 노를 함께 젓고 있는 아내에게 잠시나마 극장의 추억을 돌려주자고요. 사진은 신혼여행 당시 우리 부부의 모습.

ⓒ 이동환

2006-01-27 14:07ⓒ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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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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