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사랑의 정신이 모든 악을 무력화시키고 불멸의 능력을 준다는 놀라운 진리를 이 영화 <나디아 연대기>는 백색마녀, 아슬란, 에드먼드와 그의 남매 3명을 주인공으로 해서 적절한 긴장감과 극적 효과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기독교의 사상을 얼마만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고민했느냐에 따라 감동의 깊이가 다를 것이고 받는 영감의 크기도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비기독교인이 기독교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 및 고민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 요란한 홍보와 유명세와 비교할 때 정말 실망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컴퓨터 그래픽이 대단하다고 많이 홍보하지만 요사이 상상을 초월한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주는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스케일도 마찬가지다. 주연배우들은 봐줄 만 한가? 전혀 아니다. 연약하고 어쭙잖은 어린이 4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채운다. 일반 영화를 볼 때 쏠쏠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주는 남자배우 혹은 여자배우의 섹시한 몸매나 멋진 액션은 꿈도 꾸지 마라. 어린이가 주연이니 격투장면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을 기대하면서 봐선 절대로 감동받을 수도 재미를 느낄 수도 없는 영화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전혀 다른 곳에 있고 일반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른 열쇠로 접근해야지만 제대로 이해되고 감동 먹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편의 거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C. S. 루이스의 귀중하고 주옥같은 사상과 메시지들을 갖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반드시 기독교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무엇인지, 그러한 주제들이 얼마나 난해하고 복잡 미묘한 주제들인지, 하지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나름대로 고민해보고 C. S. 루이스라는 원작가가 그런 주제들에 대해 어떤 이해와 견해를 가지고서 어떤 식으로 표현을 했는지, 그 주제들에 대한 기독교의 해답은 무엇인지, 그 해답들은 정말 맞는지, 진리라고 할 수 있는지,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곳곳에서 드러나는 C. S. 루이스의 기독교 사상에 대한 이해를 발견하면서 공감내지는 감동 혹은 의문을 느끼면서 보아야 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를 본 뒤에 그런 주제에 대해서 고민해도 상관은 없다. 단지 영화를 이해하는 접근 방법이나 태도가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C. S. 루이스의 견해를 찾아내기 위해서 배우들의 대사들에만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물론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백색마녀가 '반인반수' 톰누스에게 '네가 여기 있는 건 바로 저 꼬맹이가 너를 밀고했기 때문이지' 하는 대사에는 악이라는 존재가 어떤 식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지에 대한 루이스의 견해가 그대로 드러난다. 악은 항상 서로 간에 반목과 증오를 일으킴으로써 자신의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악의 행동 방식에 대한 루이스의 견해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으면 된다).
 왕이 되고 싶어 백색마녀에게 갔으나 완전히 속고 만 에드먼드. 악은 늘 화려하지만 거짓말을 그 본성으로 한다.
ⓒ 월트디즈니

그리고 피터가 늑대와 싸울 때 오리우스가 도와주려 하자 아슬란이 했던 대사 '무기는 거두어라. 이건 피터의 싸움이다'는 고난과 위기를 통해 인간을 훈련시키는 신의 지혜에 대한 루이스의 이해가 묻어나는 대사다. 하지만 대사 이외에도 기본 설정 자체 그리고 형상화된 추상적 개념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 루이스의 주장과 이해를 들을 수 있다. 아슬란 편의 군대 대장 오리우스(피터와 함께 아슬란의 군대를 이끌었던 반인반수의 장군)을 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사에 대한 루이스의 이해를 발견할 수 있다. 강함과 용맹함과 충성 그리고 순종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미지로 보여주기 위해 탄생된 것처럼 오리우스의 특성은 명확했다. 루이스는 신이 죄에 유혹당하고 어려운 환난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해 보내시는 천사가 바로 이런 강인하면서도 철저히 정의로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의 개념을 형상화한 캐릭터 오리우스. 정말 믿음직스럽다.
ⓒ 월트디즈니

그리고 톰누스가 처음으로 인간을 만났을 때 놀라서 말을 더듬으며 '네가 바로 그 이브의 딸이란 말이니?'라고 묻던 장면, 비버들이 아이 네 명을 만나면서 그 아이들이 바로 아슬란과 함께 얼음의 나라를 해방시킬 위대한 왕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기독교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얼마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며, 현실 속에선 아무 능력도 지혜도 없어 보이는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이 우주 속에서 하나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경이적인 존재들로 간주되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슬란과 함께 나니아를 해방시키는 주인공으로 <글래디에이터>나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같은 근육질 강한 이미지의 영웅적 남성을 택하지 않고 연약하고 용기 없는, 유치해 보이는 어린이들을 선택한 것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깊은 실존적 회의를 가졌던 루이스의 이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비교해보면 모두 쉽게 유혹 받고 쉽게 겁먹으며 쉽게 악해지는 불안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인간이 그러한 존재인가라는 것은 또 하나의 끝없는 토론의 주제일 수 있겠지만 우린 지금 루이스의 사상을 엿보고 있으므로 그러한 논쟁보다는, 루이스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상가이며 그런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 해답이 정답이라고 믿고 왜 기독교가 정답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이 연약한 어린이들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견해에 대해 과연 당신은 동의할 수 있는가?
ⓒ 월트디즈니

<나니아 연대기>는 어려운 영화이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많은 사전 공부와 고민. 사색을 통해 이 우주와 인생, 그리고 인간과 신, 선과 악,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행적 및 그의 사상이라는 그 거대한 물음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일수록 느껴지는 것이 많은 영화다. 그런 사전준비 없이- 책은 못 읽더라도 최소한의 태도나 마음가짐의 준비도 없이 - 쉽고 편하게 잠깐 즐길 수 있는 볼거리 많은 오락 영화로 이 영화를 선택하고 나서 재미없다고 투덜댄다면 그야말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마치 위대한 문호의 심오한 사상서를 읽으면서 브래드 피트나 안젤리나 졸리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와서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영화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형이상학적 액션으로 가득 찬 영화다.
 왜곡된 욕망을 가진 인간의 전형 에드먼드. 그러나 신은 이런 인간을 위해 대신 죽음을 당한다.
ⓒ 월트디즈니
한 가지 더 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 소중한 C. S. 루이스의 사상 중 하나는 바로 '신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터키과자를 먹기 위해 형제를 파는 추악한 탐욕을 가진 인간이지만 (그 탐욕에 대해선 톨킨이 절대반지를 통해 잘 표현했다) 그러한 인간을 아슬란은 너무도 사랑했다. 그렇게 인간 하나 하나를 사랑했기에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백색마녀에게 속아서 평생토록 고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대신 모욕당하고 대신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기를 선택했다. 그만큼 한 명 한 명의 인간은 신에게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이 C.S. 루이스의 신념이자 기독교의 사상이다. 나니아의 세계는 옷장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로 들어갈 때 현실 속의 시계는 멈춰버린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러한 나니아의 세계는 존재할까? 우리가 누군가를 증오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나만의 욕심과 편안함을 위해 어떤 도덕적인 교훈들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가 자신만큼 잘 난 사람은 없고 나는 당연히 최고이며 다른 모든 사람은 나보다 못하다는 교만과 자만에 빠지는 순간, 일이 잘못된 책임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에게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순간, 나니아의 세계에 사는 백색마녀는 이미 당신을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작업에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과연 이런 나니아의 세계 같은 영적 세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할까라는 고민을 갖고 사색을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니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고 곧 백색마녀와 아슬란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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